2023.09.20 12:52
You Can Count on Me, 2000
케네스 로너건 감독작. 오래 전부터 궁금했는데 웨이브에 있어서 봤습니다.
영화를 안 보신 분은 다가오는 부분이 없을 글입니다. 객관성 같은 건 없이, 의식의 흐름대로 그냥 씁니다.
새미(로라 리니)와 테리(마크 러팔로)는 어릴 때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은 남매입니다. 새미는 고향에 머물며 8세 아들 루디를 키우며 살고 있고 테리는 여기저기 가고 싶은 곳을 떠돌며 살고 있어요. 그러다 이런저런 이유로 테리가 고향집에서 새미 모자와 당분간 함께 지내게 됩니다. 정주민과 떠돌이를 대표하는 것처럼 보이는 남매가 함께 지내며 생기는 일들을 보여 줍니다. 저는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새미가 좀 싫었습니다. 아니 다르게 말하면 이렇게 새미를 표현한 감독에 대한 의심의 마음이 들었다고나 할까요.
새미는 테리의 분방함이 못마땅한 것이겠죠... 하지만 어느 지점부터 자신과 다르다는 것인가, 어느 정도 선에서 견딜 수 없는 것인가...... 이런 것이 너무 새미의 자의적 판단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미는 자신의 상관과 자고 난 다음 신부를 찾아갑니다. 저는 자기 죄 때문인지 알았는데 테리를 상담하게 합니다. 자신이 보기에 테리는 내일이 없는, 목표 없는 인생을 산다고 생각하고요. 저는 새미를 보며 고인물에서 썩는 줄은 모르고 자기 통제를 벗어나는 것에 대한 거부감만 예민한 것 같다고 느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바흐의 음악이 흐르는 영화의 분위기와는 다른 과격한 감상이 되겠지만요. 솔직히 저는 새미가 이기적이고 편협하고 자기편의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직장에서도 그렇습니다. 일과 중에 아이를 태우러 가기 위해 정기적으로 자리를 비우는 것이 당연히 양해되는 일은 아닙니다. 상관과의 관계도 그렇게 쉽게 맺었다 끝내고 신부에게 고백하면 해결되는 일일까요. 이런 대목들이 새미라는 캐릭터에 대한 호감은 말할 것도 없고 인물간의 균형을 상당히 해치더군요. 물론 테리는 가정을 이루고 사는 일반인이 보기에 감당하기 벅찬 불안함과 야성이 있고 사회성, 책임감 이런 것도 부족한 인물입니다. 그런데 영화의 끝으로 가면 테리가 떠나는데 보내는 새미에 비해 떠나는 테리가 성숙해 보이는 것입니다. 영화는 테리를 옹호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뭐 그렇습니다. 테리는 매우 인상적인 사람이고 영감을 줄 수 있는 사람이겠죠. 자기가 사는 곳에 불어온 신선한 한 줄기의 바람처럼. 하지만 법의 테두리 안에서 때로는 종교의 도움을 받으면서 안정적으로 사는 사람들이라면 일탈도 어느 정도는 허용이 되지만 그런 것에 끌려다니지 않고 살려는 사람들에겐 일탈이란 강력한 제재가 가해져야 하는 것이기도 함?
동생을 배웅한 후 자기 일상으로 돌아가면서 새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습니다. 동생으로부터 받은 신선한 바람이 뭔가 에너지가 된 것일까요. 테리를 자기 삶에 들여놓으면 생길 훼손과 위험 부담을 피하면서 잘 이별한 것 같아서일까요. 좋은 영화로 기억하실 분들께 죄송하게도 자꾸 심술궂게 표현이 됩니다. 저역시 테리를 감당할 자신이 없으면서도 자꾸 그렇게 되네요.
삼촌 테리를 겪은 루디는 앞으로 어떤 청소년이 될까, 궁금하기도 했어요. 삼촌 하나로 족하니 엄마를 너무 괴롭히지는 말기를.
신부가 두 번 등장하는데 꽤 인상적이었어요. 감독님이었다는 것을 영화 보고 나서 사진 검색하며 알았습니다. 어느 자리에서나 약간은 우울해 보이시는군요.
@ 이로부터 20여년 후 새미는 결국 동생을 죽이기로 결심하는데.....
2023.09.20 13:18
2023.09.20 13:29
훈훈하게 보신 분들이 많던데 저는 그렇게 보이지 않아서 조금 삐딱선을 타봤습니다.
그렇군요. 감독님이 좋은 일 하셨네요. 대리부모역할이라고 하니 가족 얘기였던 '맨체스터 바이 더 씨'가 떠오르네요.
2023.09.20 14:02
저도 좋게 본 영화입니다만. 두 주인공 캐릭터들에 대한 말씀도 이해가 가요. 그게 좀 그렇긴 하죠. '자유로운 영혼'에 대한 쉴드어린 시선은 대체로 본인들 성향이 그 쪽에 가까운 예술가, 창작자 본인들에겐 어쩔 수 없는 유혹인 것 같기도 하구요. ㅋㅋ
어쨌든 로라 린니도, 마크 러팔로도 여기서 둘 다 참 연기 좋았어요. 연출도 좋았지만 배우들 연기가 거기에 많이 힘을 보탠 영화가 아니었나 싶기도 한데... 마지막으로 본지 10년이 훌쩍 넘어서 모르겠네요. 언젠간 다시 볼지도. 하하.
2023.09.20 14:32
연기는 참 좋았죠. 마크 러팔로의 연기나 목소리가 '맨체스터 바이 더 씨'의 캐이시 애플렉과 넘 비슷해서 감독의 취향인가 생각했어요.
영화를 보고 마지막에 쓴 것처럼 로라 리니가 오자크에서 벌인 일이 생각났습니다. 세월이 인간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알 수 없어요. ㅎㅎ
초반에 잠깐 보여주는 그 부모님 교통사고가 쓸데없이 실감(?)나는 연출이라 보면서 뜨악했던 기억이 나네요. 남매가 서로 다 결점이 있고 끝까지 이해해주지 못하는 부분도 있지만 그래도 결국 애정이 느껴지는 그런 훈훈한 드라마로 기억하고 있는데 워낙 오래 전이라 다시보면 어떨지 모르겠어요. 누나 캐릭터를 얄밉게 보셨군요.
여담으로 여기서 아역으로 나온 로리 컬킨이 당시 유명했던 형 매컬리 컬킨이랑 부모님간의 소송다툼 때문에 부모역할을 해줄 어른이 없는 그런 사정이었는데 케네스 로너건 감독이랑 아내 J. 스미스 카메론이 사실상 대리부모 역할을 하면서 로리랑 키어런 컬킨을 잘 돌봐주었다고 하더라구요. 지금까지 계속 가깝게 지내는 사이이고 키어런 컬킨이랑 J. 스미스 카메론은 최근 HBO 최고 히트작인 '석세션'에 같이 출연하기도 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