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원 - KBS 드라마 스페셜<락락락>(2010) +<무릎팍 도사>김태원편을 보고



※작곡가 김태원에 대한 몇 편의 방송을 보고 든 생각들을 끄적여 보았고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어 게시판에 올려봅니다.

 
 
 
김태원은 요즘에야 "천재 작곡가"라는
다소 낯간지러운 찬사조차도 크게 어색하지 않은 위치의
뮤지션이 되었지만
과거 그의 40년 인생은 안쓰러울 정도로 극심한 열등감과
타인의 인정에 대한 절박한 갈망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가<라디오 스타>에 출현하여 과거의 자신을 가리켜 
"열등감의 화신"이었다고 언급했던 것을 보고
현재의 그의 도인과 같이 달관한 모습과 어울리지 않는
평가라고 생각했었는데
드라마와 무릎팍도사를 통해서 본 그의 과거는
과연 '열등감의 화신'이란 말에 어울리는 안타까운 모습이었다. 
 
 
 
명문사립초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아버지 사업이 부도가 나서
학교에서 가장 가난하고 못난 아이로 찍히고 따돌림을 당했으며
선생님에게 교실 교단부터 뺨을 맞기 시작해서
뒷편벽에 몰릴 때까지 계속 맞기도 했고
(초등학생을! 그것도 친구들 앞에서!) 
학교에 들어가기 싫어서 하루 종일 학교 건물 주위를
뱅뱅 걸으며 돌아다닌 적도 있다고 한다.
 
그 작고 가난하고 미움받고 따돌림당하던 불쌍한 아이가
친구들과 선생님의 관심과 애정을 단 한 번만이라도 받고 싶어서
기타에 매달리기 시작했고,
기타를 통해 평생 처음으로 인정과 관심을 받기 시작하자
그는 오직 그것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에게 애정을 받을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에게 기타와 음악에 발군의 재능이 있었던 것이
과연 그에게 불행이었는지 행복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어린 시절 너무나 인정받고 싶어서, 사랑받고 싶어서
기타에 절박하게 몰입했지만
그의 꿈은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어릴 때 전혀 관심과 인정을 받지 못했던 그였음에도 불구하고,
혹은 바로 "그래서였기" 때문인지,
그의 꿈은 무려 '최고'가 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부활 1집을 통해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았지만 그의 성공은
이승철에 가리웠고,
부활 2집의 어느 정도의 성공과 인정에도 불구하고
그는 더더욱 큰 성공을 하지 못하는 것에
말그대로 몸부림치고 괴로워하며 마약에 빠져든다.
 
인정받고 관심받고 싶다는 절박할 정도의 마음에
거기에 그가 가졌던 섬세하고 깊이 있는 반짝이는 음악적 감수성과
재능이 더해져
그 재능을 크게 꽃피워서
최고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에게 너무나도 쉽지 않은 길이었다.
 
 
 
보통은 최고가 될 재능을 가지지 못한 것 같으면
최고가 되는 것을 포기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최고가 될 가능성도 희박하지만
그것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즉 최고가 아닌데 최고의 기준에 비추어
자신을 계속 학대하는 것이
도저히 견뎌낼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면 최고는 절대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김태원은 바보였는지 만용이었는지
최고가 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객관적으로 그가 그렇게 될 수 있는 재능을
갖지 못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과거부터 스스로를 "삼류기타"라고 부르는데 익숙해왔다)
 
미련한 김태원은,
도대체 왜 그랬는지,
마약을 하고
폐인이 되고
보컬 김재기를 자신이 죽였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심지어 가족까지 가난의 고통에 빠뜨리면서도
최고가 되겠다는 음악적 자존심을 절대 꺾지 않았다.
스무살 무렵 밤무대 세션을 잠시 뛰었던 이후로
단 한 번도 밤무대에 서지 않았다고 하는데
(이것 때문에 밤무대로 돈을 벌고 싶었던 이승철과
갈등이 많았다고 한다)
그것이 바로 그가 최고가 되겠다는 자존심을
한 번도 꺾지 않았다는 증거가 된다고 본다.
말하자면 자신을 팔아 돈을 버는데 한 눈을 팔지 않고
자기가 추구하는 음악만을 외길로 걸어갔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결국 스스로가 자신을 밀어넣은
그 기나긴 자기학대와 고통의 세월을 거쳐
현재 누구나 인정하는 최고의 작곡가가 된다.
(그는 2002년 '네버엔딩스토리'로
그해의 거의 모든 음악시상식의 작사상과 작곡상을 휩쓸며
그의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고
그외의 다른 경력들을 종합해봐도
이제 최고라는 평가가 합당한 뮤지션이 되었다고 본다)
 
그렇게 최고가 되기까지
그가 겪었을 몸부림과 눈물의 세월이 너무 잘 그려지기에
그의 영광을 생각하면 한편으로 눈물이 난다.
 
또 그가 최고가 되고 싶었던 이유가
자신의 뛰어남을 증명하고 싶다거나 하는 것에서가 아니라
어린 시절 너무나도 받고 싶었지만 받을 수가 없었던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어서였기 때문이라는
그 절박하고 안쓰러운 고백이
더더욱 그의 과거를 응원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그런 점에서<락락락>에서 김태원 역의 배우의 캐스팅은
심하게 잘못되었다고 본다.
김태원이 과거에 그렇게 미남이었다면
그건 김태원의 본질과 심하게 배치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금 그렇게 여유롭고 초월하고 달관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이
그렇게 절박하고 고통받고 악을 써서 소리지르고
발버둥치고 몸부림치며 살아온 과거가 있었다는 것이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그는 처음부터 저렇게 달관했던 사람이 아니라
그 기나긴 고통과 눈물을 다 씹어서 삼켜내고
저런 여유와 삶의 깊이와 따뜻한 마음을 가지게 된 사람이다.
 
바로 그런 사람이기에,
고통받고 소외된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너무나도 잘 알고 따뜻하게 위로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이다.
 
또 그는 과거의 가난과 소외를 극복해낸 후
자기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과거를 싹 잊어버리는
어떤 사람들과도 다르다. (ex... MB?)
그가 소외된 누군가를 보게 될 때
마음 속에 바로 이 생각이 떠오른다고 한다.
"너는 오래 전의 나다"
그래서 그는 그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만약 20년전, 30년전의 고통받는 자신을
눈앞에 발견하게 된다면 그것을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그는 지금은 온갖 예능프로에 나와서 웃기는 분장을 하고
스스로를 희화화하는 것을 서슴치 않는데,
그것이 또 심각한 자폐증을 앓고 있는
둘째 아이를 위해서 결정한 일이라고 하니 (아마 돈 때문일 거다)
그 부정(父情)에 또 눈물이 난다.
물론 그렇게 자존심을 버릴 수 있었던 것도
최고가 되겠다는 꿈을 이뤄본 후이므로
더 여유있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이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꿈을 이루었음에도 가족을 계속 내버려 두었다면
그건 좀 개XX였을 거고...)
 
 
 
 
어른과 위인이 부족한 시대라고 생각해왔다.
돈과 힘과 지위를 가진 사람은 많다.
그러나 돈과 힘과 지위에 어울리는 인품과 인격을 가진 사람은
적다. (혹은 없다)
과거에 고생을 하고 극복해낸 사람도 많다.
그러나 그 고생을 극복하는 것을 통해
그에 걸맞는 삶의 깊이와 성숙한 어른의 모습을 갖게 된 사람도
적다.
그러나 김태원은,
그가 극복해낸 고통에 걸맞는,
혹은 그보다도 훨씬 넘치는 삶의 깊이와 따뜻한 마음을 가진
본받고 존경할만한 우리 시대의 어른이자 위인으로 평가받기에
합당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기회를 통해 그는
내가 많이 좋아하던 예능인에서
많이 존경하는 어른으로 바뀌었다.
꼭 한 번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다.
 
 
(fin)
 
 
 
 
 
P.S.
 
김태원의 인생은
한국에도 올리버 스톤이나 알렉스 콕스 같은 감독이 있었다면
<도어즈>(1991), <시드와 낸시>(1986) 같은
근사한 록커 영화가 나올 수도 있었을 정도의
강력한 드라마를 가진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현재 나온 드라마의 퀄리티에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그래도 우리 환경수준에서
이 정도의 드라마라도 기획하고 만들어내었으니
충분히 애썼다고 생각한다.
이원익 PD 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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