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7 14:55
최근 들어 프로이트 관련 강의를 하나 듣고 있습니다. 수업을 듣는 방식으로 대면과 비대면이 있는데, 아무래도 비대면으로 하다보면 제가 집중도 잘 못할 것 같고 선생님 얼굴을 직접 봐야 그래도 맛(?)이 날 것 같아서 대면을 선택했습니다. 이건 제 개인적인 취향인데 비대면은 부득이한 경우에만 이 강의를 불완전한 형태로 선택하는 것 같아서 좀 손해보는 기분이 들더군요. 물론 굳이 현장을 찾지 않아도 수업을 들을 수 있다는 장점은 있겠습니다만.
수업 첫날에 선생님이 조금 혼란스러워하셨습니다. 현장의 강의실에 있는 저와도 아이컨택을 하고, 줌 수업을 듣는 사람들과도 카메라로 아이컨택을 해야했거든요. 차라리 대입 인강처럼 시선을 고정하실 수 있으면 좋았을텐데요. 시선을 휙휙 좌우로 왔다갔다하시느라 저도 조금 정신없긴 하더군요. 수업을 듣는데 큰 지장은 없었지만 좀 신기하긴 했습니다. 이것이 디지털 시대의 교류라는 걸까요.
한편으로는 줌으로 수업을 하는 게 꽤나 고역일것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코로나 시국 이후로 이 줌 어플을 통한 수업이나 교류가 흔해졌는데, 가르치는 사람과 가르침을 받는 사람의 쌍방 소통이 잘 안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있으면 설령 수강생이 대답을 안하더라도 선생님의 얼굴을 보고 아이컨택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줌 수업은 그런 게 전혀 없더군요. 학생분들은 전부 다 자신의 화면은 꺼놓고 마이크도 꺼놓은 상태입니다. 무음의 까만 모니터 화면을 보면서 지식을 전파하려는 선생님이 좀 안쓰러워보였습니다. 어떤 반응도 없는 그 시커먼 화면들이 좀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종종 선생님이 그렇죠? 이해 가시나요? 흥미롭지 않나요? 라고 물어도 어떤 대답도 없습니다. 그럼 선생님이 혼자 네~ 그럼 이해되신 걸로 알고 넘어갈게요~ 하면서 자문자답으로 마무리를 하시죠.
큰 스크린 위에 띄워진 검은 화면들을 저도 종종 보곤 했습니다. 현실은 그냥 수업을 듣는 개개인일뿐이겠지만... 그 너머를 제가 전혀 들어다볼 수 없는 심연의 어둠 속 존재를 상상하게 되더군요. 그 화면들이 작동을 멈춰버린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HAL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디지털 세계의 교류에 대해 좀 무섭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모니터 너머의 절대적인 장막으로 자신을 감추고, 그저 어떤 액션을 흡수할 뿐 어떤 반응도 되돌려주지 않는 이 블랙홀스러운 소통의 장이 디스토피아가 아닐까요. 이제 인간은 어둠을 향해 외치고, 어둠 속에서 이뤄졌을 반응과 이해를 상상해야하는 것입니다.... (두둥!!)
2024.03.27 15:08
2024.03.27 15:11
정말 힘드셨을 것 같아요. 그걸로 출결 체크도 하고 자기 수업에 집중안하는 사람의 얼굴을 계속 보고, 얼굴들이 수십개 떠있는 것도 고역스럽고... 무슨 현대 미술 같습니다. 생각해보니 사람 얼굴을 정면으로 볼 일이 그렇게 많이 없군요?
2024.03.27 15:37
친구와 카페 같은 곳에 마주 앉아 이야기할 때 외엔 식구들도 정면으로 보는 경우가 드문 거 같아요. 친구와의 정면 대화도 약간 퍼포먼스 성격이 있고 말이죠. 얼굴을 정면으로 본다는 것이 예사스럽지 않다는 느낌이 불현듯듭니다.ㅎㅎ 생각해 볼거리네요.ㅎㅎ
2024.03.27 15:33
가끔 말이 하기 싫어지는 것처럼 게시판에서도 글이든 댓글이든 쓰기가 싫달까 귀찮달까 심드렁해 있달까 그런 시기가 있습니다. 다들 그러시죠?
이 글에서 특히 요 부분을 보고 → [그래서 디지털 세계의 교류에 대해 좀 무섭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모니터 너머의 절대적인 장막으로 자신을 감추고, 그저 어떤 액션을 흡수할 뿐 어떤 반응도 되돌려주지 않는 이 블랙홀스러운 소통의 장이 디스토피아가 아닐까요. 이제 인간은 어둠을 향해 외치고, 어둠 속에서 이뤄졌을 반응과 이해를 상상해야하는 것입니다.... (두둥!!)] 말없이 글만 보고 빠져나가는 너(나)!! 를 일깨웠습니다. 약간 변명거리는 있지만요.
2024.03.27 15:54
아니? 이런 메타적인 해석을? ㅋㅋㅋ 압박할 의도가 아니었습니다만 이미 받아버리셨으니 허허!!
커뮤니티는 직접 글과 댓글을 쓰기 전에는 '실재한다'는 상태의 표시가 없어서 줌 수업보다는 덜 공포스럽긴 합니다 ㅋ 어찌되었든 남겨주신 반응에 감사...
2024.03.28 10:45
zoom으로 회의를 하거나 세미나를 하면 두배로 힘들어서 뻗어버리기 일수입니다. 화면을 끄자 마자 큰 한숨이 나요. 그리고는 소파에 뻗어버리게 됩니다. 휴우..
2024.03.28 10:51
아이구야... 디지털 세계의 대면이란 뭔가 더 에너지를 쓰게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2024.03.28 20:35
줌(혹은 구글 미트) 다양한 방식으로 꽤 많이 썼는데 저는 괜찮았어요. 수업도 학부 수업이라면 또 달랐을지 몰라도 대학원 수업은 각자 내용 화면 보면서 한번씩 교수나 다른 사람들을 쳐다보는 식으로 이루어지는데 실제 수업도 그렇다보니 한자리에 모여서 같이 뭔가 한다는 공간감은 충분히 있었던 기억이 있고요. 간단하게 회의 할 때도 좋았고, 심지어 코로나로 격리가 한창이던 때는 친구들끼리 모여서 술 마시는 데 쓴 적도 있고. 지금도 줌으로 모이는 작은 규모의 학회가 있는데 어차피 메인은 발표 화면이 되고 사람들은 옆에 작게 뜨기 때문에 가끔 화면 꺼놓는 분들 있어도 거슬릴 정도는 아니라는 느낌(저도 꺼놓고 들을 때도 많고). 아마 함께 하는 사람들이 얼만큼 적극적으로 참여하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많이 달라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해외에 있는 분들이 함께 할 수 있다는 것도 꽤 큰 장점이 되더라고요.
2024.03.29 10:18
오 그러시군요. 제가 봤던 환경과는 달랐던 게 댓글에서 느껴집니다. 서로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고, 또 줌 화면을 통해 봐야하는 컨텐츠가 분명히 있다면 충분히 괜찮은 수단같아요.
한참 코로나 시절, 대학 교수인 분이 비대면 수업을 ZOOM으로 하는데 정말 힘들었다고 하더군요. 말씀하시다시피 상대 화면을 그냥 꺼놓기도 하고, 반대편에서 생활 소음이 나는데 꺼달라해도 잘 안 되고 그랬었나보더라구요. 상상도 하기 싫다고. ZOOM은 화면 켜놓으면 켜놓는대로, 꺼놓으면 꺼놓는대로 피로감이 장난 아닌듯 합니다. ( 켜 놨을 때는 서로 '정면 얼굴'을 끝까지 마주봐야 하니까 너무 힘듦. 실생활에서 우리는 공간적 한계로 대부분 한 사람만 마주보고 다른 사람들은 약간 각을 틀어서 봐서 시야 분산에 약간 마음이 편해지는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