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다음에서 단지라는 작가가 '방탕일기'를 연재합니다. 이 사람은 웹툰 '단지'를 레진에 연재했던 사람인데, 이제 머리카락 색을 빨강에서 회색으로 바꾸고 홍대앞에서 자기가 지내는 이야기를 그립니다. 이 사람은 서른 네살에 자기 뜻대로 살기로 하고 말 그대로 뜻, 위시 리스트를 지워나갑니다. 첫번째는 클럽 가기, 두번째는 원나잇 스탠드, 세번째는 여행지에서 한달간 살아보기예요. 이걸 갖고 방탕일기라고 하다니, 성장기에 상당히 빡센 교육을 받았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클럽에 가기 전에는 혼자 안가고 동성친구와 짝을 지어 갑니다. 이건 서로 쉐프런 (chaperone)이 되주는 거잖아요. 정해진 음료를 마시고, 피임 챙기면서 원나잇 스탠드 하고, 심지어 얼마 못가 그만 두고. 틈틈히 재테크 하고, 부산에 한 달 살기 계획. 성실해요. 방탕 조차도. 규격에 갇혀 있고, 관계에 묶여 있고. 


2. '잭 라이언' 시즌 2가 아마존에 떴습니다. 오프닝이 '나이트 매니저'와 비슷해요. 톰 히들스턴을 주연으로 한 '나이트 매니저'의 오프닝은, 화려한 샹들리에와 폭탄 터지는 모양이 다르지 않음을 보여줬죠. 마찬가지로 '잭 라이언' 2부 오프닝은 미국인들이 즐겨 갖고 노는 야구공과 수류탄을 반반씩 보여줍니다. 토요일이면 캐치볼을 할 것 같은 존 크라신스키가, 바로 그 심두박근으로 수류탄을 던질 수도 있음을 보여주죠. 미니시리즈는 베네수엘라를 중심으로 하는데 이야기 자체는 글로벌해요. 스페인어 익힐 겸 짬짬히 볼 만 합니다. 


3. '우리는 모두 봉준호의 디스토피아에 살고 있다'고 뉴욕타임즈의 A.O.Scott이 썼습니다. 연말이 다가오니까 이 작품이 오스카를 탈 건가 말 건가를 두고 미국 내에서 관심이 쏠리나봐요. 요즘 미국에서는 수평적 수직적 불평등 (vertical and horizontal inequality: 세대간 부의 불평등과 세대 안의 부의 불평등)이 이슈인데, 이 작품이 아주 시기 적절하게 나와준 거죠. 운이 좋다고도 할 수 있고, 본인이 시대의 흐름을 선도해나간다고도 할 수 있겠어요. 예전에 김지운 감독의 '라스트 스탠드'는 꽤 괜찮은 작품이었는데도 직전에 미국 내 총기문제가 터져서 별로 좋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소리를 들었거든요. 


'설국열차'가 나온 게 2013년이었죠. '설국열차' 나온 직후에 서울에 갔다가, 지하철을 보고, 서울은 지하철 없으면 돌아가질 않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 도시는 역사가 오래 되서 어디를 건드려도 조심히 건드려야해요. 차를 위한 도시도 아니고 보행자를 위한 도시도 아니고, 얽히고 설킨 도시인데 어찌 됐든 간에 지하철은 있어야 돼요. 그렇지 않으면 도시 기능을 할 수 없거든요. 차로 밀어붙이자니 주차공간이 없고, 강북의 경우는 도로도 협소하죠. 지하철 시설이 훅훅 감가상각 되어가는 게 현저히 보이더군요. 이만한 규모의 도시에서 이렇게 저렴한 가격으로 이동 (mobility)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가능한가. 뭘로 이 가격을 떠받치는가 생각했죠. 


2016년에 구의역 스크린 도어가 고장나서 이를 수리하던 외주업체 직원 1997년생 김 아무개씨가 열차에 치여 사망했을 때, 저는 그 가격이 가능한 이유가 이거였구나 하고 이해했죠. 사람 갈아넣어서 만드는 가격, 정확히는 젊은 외주업체 사람의 목숨값으로 낮춘 가격이구나 하고. '설국열차'의 딜레마는, 남아있는 세계가 달려가려면 누군가 열차밑으로 들어가서 엔진을 정비해야한다는 거였지요. 옥타비아 스펜서가 분장한 타냐의 아들, 팀이 차출된 게 혁명의 이유였고요. 1997년생 김 아무개씨 사망 사건이 난 현장에 많은 사람들이 스크린도어에 포스트잇을 붙였는데, 그 장면을 시사인에서 사진으로 찍어 싣기도 했죠. 그때부터 서울에서 지하철을 탈 때면, 김아무개씨는 서울의 엔진을 돌리러 꼬리칸에서 차출된 팀이었는가 하는 생각을 간혹 했죠. 팀과 달리 김아무개씨는 살아남지 못했구요. 당시 박원순 서울시장이 김씨에게 명예기관사 자격을 부여하겠다고 제안한 건 상당한 블랙코미디지요.  


이 게시판에 올라왔던 조 민씨 인터뷰에 달린 "조국 장관의 부인과 딸의 다짐이 무서운" 거라느니 "대단한 자존감"이라느니 하는 평가를 보면서 저는 2016년에 시간이 멈춘 김아무개씨를 생각했죠. 이 다짐 어디가 무서운가. 당신이 생계를 잇기 위해 컵라면 들고 스크린도어를 고치러 나가는 꼬리칸의 사람이라면, "시험은 다시 치면 되고, 서른에 의사가 못 되면 마흔에 되면 된다"는 이야기는 아마 못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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