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낭

2014.06.29 01:13

에아렌딜 조회 수:3830

언제나 그렇지만 개인적인 사견, 편견 등이 함유되어 있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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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백수가 되고 나서, 학교도 그 어디에도 소속된 곳이 없고 나서 한 가지 변화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직업에 유심히 관심을 두게 되었다는 것이죠.

저 사람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사는 사람일까, 하는 관심이 생겨납니다.

나 말고는 모두 어딘가 돌아갈 곳이 있고 어딘가에 속해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럴지도 모릅니다.

할 수 있다면 듀게님들에게도 뭐 하고 사시는 분이세요 하고 물어보고 싶습니다.


사실 이건 좋은 일이 아니겠지요. 

남 일을 깊게 알고 싶어하면 예의에 어긋나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전 가끔씩 그런 예의에 벗어나는 일을 해보고 싶습니다. 어쩌면 자주...?

길 가는 사람을 붙잡고 안녕하세요. 뭐 하시는 분이세요? 라고 해 보고 싶습니다.

이상한 충동이지요.

이런 짓을 하면 당장 이상한 시선이 돌아올 것임을 다행히 알고는 있어서 하지는 않지만..

가끔은 도를 믿으십니까처럼 모르는 사람에게 선뜻 말을 걸어보고 싶어지는 것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추억의 개그)


이런 궁금증들이 어떤 분들에겐 그렇지 않겠지만 저에겐 그냥 자연스러운 질문입니다.

어렸을 때 왜 햇님은 둥글어? 하고 생각했던 것처럼, 지금 저 사람은 뭐 하고 사는 사람이야? 하고 궁금해하는 것.

그 기저에 내가 갖지 못한 소속감에 대한 열등감이 깔려있고 그 사실을 나 역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 차이로군요.

예의라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고 그 예의가 없었으면 미쳐버렸을지도 모르는 저이지만, 가끔은 예의라는 것을 뻥 차버리고 예의에 어긋나는 짓을 해 보고 싶습니다.

무엇 하고 사세요?

한 번은 넷상에서 직업에 대해 물었더니 굉장히 불쾌하게 반응하시던 분을 보고 흠칫했습니다. 기분나쁠 수도 있겠구나 하는 것을 그제야 알았죠...


이상한 충동은 가끔씩, 하지만 끊이지 않고 생겨납니다.

어쩌다 탄 버스에서 굉장히 예쁜 머리장식을 하고 있는 여성분을 보고 아, 어디서 샀는지 물어보고 싶다. 하지만 실례겠지. 하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 외에도 예쁜 머리모양을 하고 있다든가, 근사하고 특이한 장신구를 달고 있다든가 하는 사람을 보면 붙잡고 솔직하게 물어보고 싶습니다. 

이런 질문이 금지된(?) 것은 왜일까요?

예의 때문일까요? 

예의 때문이 아니라면 순수하게 물어보고 싶은 것을 물어보는 건 왜 안되는 걸까요.


... 왠지 얘기가 기승전궁금증이 되었네요.



1.5

나는 무엇이 될까,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누군가는 유치원 때부터 하는 생각을... 저는 이제서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어떤 광고에서였나, 여기에 당신 자리 하나가 없겠습니까 이러더라는데.

자기 자리를 찾을 수 있을 때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고 얼마나 더 돌아가야 하는 걸까요.

그리고 과연 자기 자리라는 게 존재하긴 할까요.

지금은 밤의 사막에 온 기분입니다.

길의 방향도 거리도 몰라도 하늘의 별자리를 보며 막연하나마 방향도 거리도 알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죠.

별자리가 지도는 아니어도 불안한 희망을 주는 느낌이랄지요.




2.

아무튼 바쁜 일상이 돌아왔다- 라곤 하지만 무직자의 일상이 별 거 있겠습니까.

어쨌든 자격증 공부나 시작해야겠다고 마음은 먹었습니다.

어느 쪽이든 방향이 정해지니까 그나마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지네요.

그 방향이 좋은 쪽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실 자격증 공부를 해서 시험을 쳐도 합격될지는 모르겠고, 운좋게 합격된다고 해도 그게 도움이 될지는 잘 모르겠고, 도움이 된다손 쳐도 그게 얼마나 도움될지는 모르겠고...

이런 불안의 연사에 빠질 때마다 그냥 생각을 지우려 애씁니다.

지금의 전 우울하지 않아서 그런지 불안한 생각을 해도 크게 침울해지진 않아요. 부디 이 상태가 오래 가길 바랄 뿐입니다.

비용에 대한 불안도 미래에 대한 불안도 공부적응에 대한 불안도 지금은 다 뻥 걷어차버린 상태입니다. 

언제 다시 돌아올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실도 딱히 불안하지는 않습니다. 지금은.

가장 큰 불안거리는 언제 다시 불안하고 우울함이 덮쳐올지 모른다는 점밖에는 없습니다.

몸이 고단하고 힘들어지고 정신적으로 어디 기댈 데도 없을 때 어느 날 갑자기 나도 모르게 우울함이 덮쳐오곤 했었죠.

체력이 낮아서 그런가, 정신적 스트레스 내성이 낮아서 그런가 쉽게 지치고 쉽게 포기하게 되는 것 같아요.

어쨌든 지금은 정신적으로 드물게 건강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드니 이 상태가 부디 오래오래 지속되기만 바랄 뿐입니다.


정신적 내구도는 어떻게 하면 올릴 수 있을까요.

잔인한오후 님의 글을 읽으며 우리 모두는 고독을 어떻게 견디고 감정의 찌꺼기들을 어떻게 쏟아내는가 생각했습니다.

미처 쏟아내지 못한 그 진득진득한 감정의 잔재들은 다 어디로 가고 있을까요.

점점 고독해지는 세상, 고독해지는 사람들. 

언젠가는 고독한 사람들의 공동체가 생겨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고독하기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기대려 하고 그러다 또 부작용이 생기기도 할 것이고...


병원에 있을 때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쾌활할 때도 있고 침울해 보일 때도 있던 그.

왠지 방황하면서도 어디에도 기대려고는 하지 않는 것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제 오빠도 절대 제게 힘들다거나 괴로워서 기대려 하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이미 괴로워하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남자들은, 사람은 어떻게 스트레스를 해소하냐고 이야기했더니 누군가가 술과 담배로 해소한다고 하더군요.

그럼 술도 담배도 하지 않는 사람은 어찌 살아가야 하는 걸까요.

제 경우는 먹는 것이었는데 요즘은 약의 효과인지 식욕도 많이 줄어서 뭘로 자신을 달래야 좋을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독서나 음악감상이라는 배출구도 있을 수 있겠지만 제 경우엔 독서나 음악감상은 감정의 배출구라기보단 자신에게 뭔가를 더하는 과정이라는 느낌입니다.

모든 것에는 양면성이 있으니 배출하면서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감정의 총량은 어찌 되는 것인가 모르겠습니다.


우리 모두는 무언가를 지고 가야 하고 지고 갈 수 있는 양에는 한도가 있을 터인데.

그 양은 기쁨이나 슬픔을 모두 포함해서 일정한 양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이상 짊어지려 하면 짐보따리가 터져 버려서 길 한복판에서 주저앉아야 하는 게 아닐까요. 

짐보따리를 다시 꾸릴 때까지.



3.

빈둥대다 보니 시간이 참 잘도 갑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되는군요.

이제라도 자야겠습니다.

아, 설거지를 안 해둔 게 생각났는데 해야할지 고민을 좀 해봐야겠군요. (별 사소한 걸로도 고민을 합니다)


벌써 자정이 지났지만...

좋은 밤 되세요.



추신.

뜬금없지만 오늘 불후의 명곡에서 들은 정인의 애수의 소야곡이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추신 2.

읽어주신 여러분, 격려해주신 분들. 응원해주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감사하단 한 마디로 끝내버리는 것 같아 못내 아쉽지만, 그래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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