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가 가득.











1.
플롯이 단순한 주제에 설정만 복잡하고 설명이 없긴 한데 생각보다 바보같지는 않았고,
1편을 제대로 본 적 없이 유튜브에서만 띄엄띄엄본 저도 나름 적응할 정도였고,
몇몇 요소들은 원작을 안봤어도 대충 이런 의미겠구나 짐작이 가고… (예를 들어 "유저 만세!"같은 거.)

3D효과 좋던데요. 
현실 세계는 2D에 프로그램 세계만 3D라고 하길래 너무 뻔하고 성의없는 설정이라 생각했는데…
와우, 제가 잘못 생각했어요. 탁월한 선택.

본래 3D영화들의 문제점이 - 특히 거대한 롱샷에서 - 공간감을 넓히려다가 화면이 조잡한 인공으로 보인다는 건데,
네온이 번쩍번쩍한 프로그램 속 세계를 넓직넓직한 3D로 찍어버리니까 이런 단점이 오히려 장점이 되었어요.
정말 프로그램 안에 들어와 있다는 느낌.

영화 시작 플린 집안 소개하는 장면은 3D라 좋았지만,
영화 내내 도심을 그렇게 비추었다면 현실감이 확 떨어져버렸겠죠.
아예 2D로 가는 것보다 공간감을 의도적으로 약하게 만든 "살짝 3D"였다면 어떨까 싶기도 하지만…
마지막 도심 풍경같은 게 3D였다면 감흥이 확 떨어졌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2.
퇴장한 캐릭터들은 다들 적당히 핑계만 대주면 속편에 다시 나올 수 있겠더군요.
전 솔직히 속편에 우르르 다 다시 나와주길 바랍니다만.
특히 제프 브리지스 1인 2역이 너무 재미있어서 다음편부터 안나온다면 화날거 같아요.
근데 아빠 플린과 CLU가 합쳐져버렸으니 다시 나온다면 지금보다 재미없을 거 같기도 하구…
회춘한 인공 악당과 명상 취미에 빠지신 수퍼 노친네가 대결을 해야 제맛일텐데 말이죠.
특히 아빠 플린은 "멋있어진 위대한 레보스키"같아서 좀 웃겼다는.
뻑하면 명상하는 게 쿵푸팬더의 더스틴 호프먼도 생각났죠.


3.
바이크가 직각이 아니란 건 저도 불만.
사실 직각이 아닌 곡선 운동 위주라는 건 나쁘지 않았어요.
근데 움직임이 부드러워지면서 빛의 궤적이 만들어지고 부딪히는 타격감이 확 줄어버렸죠.
직각과 곡선을 적당히 섞을 수도 있었을텐데…
영화 초반에 바이트 규칙에 대해 기껏 복선을 깔아주고도 그걸 확 살려내진 못한 듯.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아빠 플린은 트론 세계의 모험을 겪고 나서
그 팩맨 닮은 바이크 게임으로 떼돈을 번 건가요?
뭔가 말이 되는 거 같으면서도 웃긴 설정.


4.
아들 플린이 아빠 플린한테 와이파이 얘기하니까
"윽, 그거 내가 80년대에 생각했던 건데"라고 하는 부분에서 묘하게 수긍이 갔습니다.
컴퓨터 세계속을 왔다갔다할 수 있는 기술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한테 
와이파이 정도야 뭐 "굳이 내가 안만들어도 장땡"인 장난감이겠죠.
(그러고보니 궁금하군요. 1편에선 이 전송장치를 프로그램 자체가 만들었나요? 
인간보다 훨씬 유능한 프로그램이네. 네트워크망만 깔렸으면 그 기술로 이미 세계를 정복했을 듯.)



5.
영화 내내 프로그램들이 현실 세계로 빠져나가면 큰 일이 벌어진다고 하고,
쿠오라가 밖에 나오자 샘이 하는 대사도 함께 세상을 바꾸자는 거였죠.
근데 여기서 의문이 들었습니다. 프로그램들이 현실세계로 나오면 그냥 인간이랑 똑같은 거 아닌가?
오히려 현실 세계 돌아가는 건 잘 모를테니 80년대에서 온 립밴윙클들이 떼거지로 몰려다니는 거 같을텐데
프로그램 군단이 우르르 몰려나가봐야 단체로 슬랩스틱 코미디 찍는 게 아닐까 싶기도 했거든요.

상황1.
"클루님! 유저들이 이상한 기계들을 들고 다닙니다!"

"그건 스마트폰이라는 거야 멍청아! 그들도 우리 동지들이다! 모두 해방시켜라!"

그리고 현실 세계로 우르르 몰려나온 iOS들은 잡스신을 경배하여
결국 스티브 잡스는 손 하나 까딱 안하고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_-;



어쩌면 그리드 안에서 이것저것 만지기만해도 조종가능하던 아빠 플린이 그랬던 것처럼
프로그램들이 밖으로 빠져나오면 컴퓨터를 만지기만 해도 조종 가능한 걸까요.

상황2.
"쿠오라. 내 안드로이드폰이 또 말썽이야."

"걱정마 샘. 내가 만지기만하면 이렇게 최적화가 되어서 아이폰을 능가하게 되지."

그렇게 쿠오라는 전세계 안드로이드폰 유저들을 사로잡아
스티브 잡스가 지배하지 않은 세계 반쪽을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_-;;;


뭐 어느쪽이든 이들이 말하던 세계 혁신과는 좀 다른 거 같은데...
차라리 가상 현실에서 캐드로 쭉쭉 그려낸 게 현실 세계로 뿅 튀어나올 수 있다는 게
ISO의 존재보다 더 신기하고 놀라울 거 같은데 말이죠.
유저 디스크를 가지면 현실 세계로 온다는 건
인체 구축하는 정보(DNA같은 거?)만 복사해서 넣어주면 
클릭 한 번으로 인조인간을 우글우글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거잖아요.
거꾸로 가상 세계를 만들어서 인류가 그 속으로 이주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크리스탈로 집안 인테리어 꾸밀 생각만 하지말고 이런 걸 좀 고민해봐요 이 케빈 영감님아.


6.
쿠오라가 대사로는 유기견 운운하면서 복종적이고 의존적일 거 처럼 굴지만
실제 행동하는 것도 그렇고 꽤나 쿨하고 독립적이지 않나요.
제5원소의 밀라 요보비치에서 의존적인 면을 싹 빼고 좀 더 친근하게 만든 거 같기도 하고.
정말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는 제5원소가 많이 생각났어요.
이제부터 교통지옥과 물가와 프로그램전사보다 더 짜증나는 인간들 때문에 고생할 쿠오라님께 묵념.



7.
유로스미스 노래야 정우성의 비트 시절부터 질리게 들었으니 되었고,
영화 보고 기억에 남는 Journey의 Separate Ways (Worlds Apart)

거지같은 vevo가 한국은 차단했기에 데일리 모션으로 임베드 겁니다.
(대체 얘들의 국가 차단 기준은 뭐가 뭔지 모르겠음.
같은 아티스트라도 곡마다 달라요. 뭐하자는 거야?)


Journey - Separate Ways
Uploaded by analogue. - Watch more comedy videos and sitcoms.


근데 글리에서도 줄기차게 Journey를 띄워주더니 트론 레거시까지.
미국 전역에 Journey 팬클럽 출신들이 암약하고 있는 걸까요.


8.
아빠 플린의 거처 안에 책이 꽤 많았는데,
그걸 다 머릿속에 기억했다가 타이핑쳤을 리는 없고,
트론에 나오는 그리드 세계가 다른 사이버 공간과 연결되지는 않은 듯 싶으니
아마도 그 책들은 아빠 플린이 이런 저런 이유로 스캔해서 그리드 안에 가지고 있던 것들이겠죠?
현실 세계보다 시간이 느리게 간다더니 프로그램들 부려먹고 남는 시간에 우아하게 독서라도 한 건가.
클루가 성질뻗쳐서 반항할만도 하군요. 
생각해보니 케빈 플린 거처의 그 우아한 인테리어들하며 여러 의미로 굉장한 사람…

아니면 혹시 그리드 만들면서 남는 시간에 전자책 서비스라도 구상했던 걸까요?
흠, 그렇다면 트론 3편은 "트론vs킨들vs아이패드"로 결정.
조역으로 누크 컬러 모델이 등장해서 디스크배틀대신 패드배틀 벌이면 딱이겠군요.
하지만 갤럭시탭이 등장하지 않았다는 것 때문에 이 영화는 난데없는 애국심논란에 휩싸이게 되는데…


9.
"중퇴했어요"라는 대사에서
아빠 플린의 한없는 절망(?)이 느껴지더군요.
그래봐야 이게 다 자네 탓일세 이 사람아.
그래도 재산은 빵빵하게 물려주지 않았는가.
게다가 영화 마지막엔 여친까지... 
생각해보니 올해 영화 속 최고의 아빠네요.



10.
킬리안 머피가 반갑기는 했는데 뜬금없었습니다.
진짜 속편을 염두에 두고 캐스팅한 건가?
극중 이 배역의 아버지가 전편에선 중요한 역할이라면서요?

주인공은 에라곤에 나온 배우였다는데 전 에라곤 안봐서 모르겠고…
검색해보니 다음 작품이 무려 코폴라 제작에 월터 살레스 감독 영화.

전혀 상관없는 얘기지만 전 항상 월터 살레스가 후덕하게 생긴 호호할아버지 감독일줄 알았는데
위키에 올라온 사진을 보니 이게 왠 미중년?
http://en.wikipedia.org/wiki/Walter_Salles
차라리 트론에 나온 제프 브리지스가 제가 생각하던 월터 살레스처럼 생겼다는.
그래서 저는 이렇게 월터 살레스 감독에게 실망(응?)했다는 말로 트론 잡담은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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