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일이 여성작가를 무시하는 트윗을 올렸다는 논쟁 전, 김영하가 제자의 슬픈 죽음을 논쟁에 이용했다는 글을 쓰고 비판받기 전까지입니다.

아래는 그 지점까지 제 관점에서 정리한 것이고 부차적이라고 생각한 것들은 뺐습니다. 잘못된 것이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이야기해 보고 싶은 게 많은데 어렵네요.




김영하 : (신춘문예 결과 발표일 탈락자들에게라는 맥락에서 말합니다.) 작가란 누군가의 인정을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작가라고 여기는 정체성이자 태도이다. 나도 등단이라는 입문 절차 이전부터 나는 작가라고 믿었다. 길드의 인정에 목매 스스로 비하하지 않고 나는 작가라고 말할 수 있는 작가군의 출현을 기다린다.

 

조영일 : 직업은 그것으로 돈을 벌 수 있어야 한다(태도 측면을 말하는 겁니다, 취미면 안된다는 거죠). 외부의 인정(문단, 독자) 없이 작가로서 자기 긍정을 지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혹시 그게 가능한 정신상태가 있다면 나르시시즘이라고 부른다. 작가 지망생들은 노력해보고 안되면 '좋은 독자 '로 돌아가야지 내면에 침잠해 골방 예술가 작가가 되어서는 안된다. 인정을 부정할 수도 무시할 수도 없으니, 자신들만의 길드를 만들어라.

 

김영하 : 당신은 작가를 먹고사는 문제로 보고 나는 자기 정체성 문제로 본다. 나도 당신도 절대 다수의 작가는 글을 써서 먹고 살 수 없고, 자연히 투 잡 뛰며 궁핍하게 사는 걸 안다. 그래서 문학의 즐거움을 아는 사람이 작가여야 하고 그걸 알고 추구하면 이미 작가이다. 작가는 철저하게 혼자 글을 쓸 수 있고 그 안에서 즐겁게 살 가능성을 발견하면  (영화 등과 다르게) 우직하게 밀어붙일 수 있는 직업이다. 현실을 냉정하게 보는 건 평론가나 사무원의 일이다. (은근히 작가≠평론가=사무원이라고 전제) 길드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전에 작가는 미친 자아를 갖고 밀어붙여 스스로를 작가로 만들어야 한다.

 

조영일 : 자기만족적인 글쓰기는 취미이고, 세상과 소통하여 그를 통해 밥벌이를 도모해야 작가이다. 나도 창작욕이 작가의 한 축이라는 걸 부정하지 않는다. 당신이 인정받아 성취하려는 욕구를 무시하는 것을 지적하는 거다. 인정과 동떨어져 혼자 할 수 있는 예술은 없다. 프루스트의 예를 드는데, 그가 그렇게 작가가 될 수 있었던 건 유복한 가정이어서이다. 그게 작가의 일반적인 롤모델일 수는 없다.

 

당신같은 예술관이 주류인 문단은 문제가 있다. 예술성은 작가의 내면에 잠들어있는 천재성이 아니라, 사회와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이다. 한국 소설가들은 현실과 소통하는 문학에 실패한 이후 초월적인 예술성을 과장하여 천착하는데, 이게 구닥다리 독일 식의 낭만주의 예술관이다.

 

세상은 선택이다. 꼭 문학 아니어도 인생은 계속 되니, 문청들은 노력해도 안되면 평생 '남은 몰라줘도 나는 작가'라는 환상에 젖지 말고 다른 일 하고 좋은 독자로 남아라.

 

김영하 : 한국 문학의 수준이 떨어진다는 데 동의하지만, (여기서 김영하는 일종의 '작가들의 역량'이 떨어진다고 봄, 나중에 조영일은 한국의 역사적 토양 문제라고 봄) '작가 되기'에 국한하여 보자. 나 구닥다리 문학관의 소설가 맞다. 예술가는 그런 태도를 현실 속에서 어떻게 유지하느냐를 고민한다. 한국 문한판이 먹고 살기 어려운 건 '스타의 경제학'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성공한 소수의 스타가 많은 보상 (물질적, 사회적)을 갖고, 진입 장벽이 낮은 시장은 필연적으로 지원자들이 과잉공급된다. 이 구조를 변경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 건 작가 혹은 작가 지망생 개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당분간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건 '우리 자신' 뿐이다. 예술을 놀이로 여기는 '미친 자아'를 만나라.

 

조영일 : 낭만주의자라는 카밍아웃은 솔직하지만, 좋은 소설가는 좋은 비평가라는 근대적 사고에서 비판받는 지점이다. 모든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논리적으로 옹호할 수 있어야 한다. (소통에 성공해야 한다는 겁니다.) '너는 비평해라 나는 언젠가 내 소설 알아줄 사람이 올거다'라는 식의 낭만주의는 틀렸다.

 

(다음이 어려운데, 거칠게 말해 이렇습니다.) 근대 문학은 근대 문학적 토양이 필요하다. 한국은 토양이 없다. 그래서 한국 문학 수준이 떨어진다. 그런데 김영하는 그걸 모르고 소설가 개인들의 의지나 역량 부족으로 생각한다. 원래 근대 문학의 토양의 한계와 소설가의 좌절 사이에서 '미친 자아'가 나오는 것이다. 즉 미친 자아는 예술가의 보편적인 필요조건이 아니라 (천재 작가가 아닌)평범한 사람들이 외부 조건에 좌절하여 만들어내 스스로를 위무하는 개념이다. 훌륭한 소설가는 미친 자아가 아니라 냉정한 비평가적 시선이 만들어낸다.

 

사람은 세상이 바뀌는 딱 그만큼만 스스로를 바꿀 수 있다. 그래서 예술가는 세상을 바꾸는 일에 힘써야 하고, 그런 의미에서 혁명가이다. 웰메이드는 장인이 하는 거고, 예술가 문학가는 세상의 편견이나 불합리한 사회제도를 바꿔나가며 예술성을 획득한다.



이 다음은 듀게에도 링크되었던 김영하의 "영민했던 어느 제자의 죽음에 부쳐" 입니다. 거기서부터는 또 다른 얘기가 많이 끼어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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