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한계?

2019.12.05 06:32

어디로갈까 조회 수:690

1. 몸의 한계는 대체로 명확합니다. 몸에는 '~ 인 듯하다.'는 상태가 별로 없어요. 정신은 다르죠. 정신의 한계는 유동적이고 매순간 불확실하며 참인지 거짓인지 알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몸에게 배워야 해요.  몸은 정신보다 아는 것이 많지 않지만, 아는 한도 안에서는 분명히 알거든요.

2. 마트에 가면 샴푸 하나를 사는 경우에도 수십 종류를 사열해야만 합니다. 한 두 종류만 있다면 '이것이냐 저것이냐' 정도의 갈등만 거치고 물건을 살 수 있을 테죠. 그러나 요즘의 시장이란 '이것, 저것, 다른 저것' 하는 식으로 줄줄이 고민을 하게 만들어요. 그러니까 어떤 기준을 갖고 고려할 대상 자체를 제한하지 않으면 '마트에서 길을 잃'게 됩니다.

글이나 이미지를 찾을 때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우선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하고, 그에 걸맞는 것들 외에는 거리를 두거나 시선을 주지 않는 식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죠.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유한하기 때문입니다. 
순간순간 원점으로 돌아가려는 고려가 없으면 동그라미를 그릴 수 없어요.  한 번 접고 각을 꺾지 않고서는 딱지 한 장 접을 수도 없습니다. 그야말로 세상은 방만한 장터이니까 그때그때 접지 않으면 목적지에 이르기 어렵습니다. (접자. 저는 오늘도 새벽부터 하나 접었.... - -)
자, 그런데 문제는 '최상의 선택'이라는 신화가 있다는 거예요.  누구나 이른바 최상의 선택을 하고 싶어합니다.  '내'가 가진 것으로도, 혹은 가질 수 있는 것으로도 '이미 모두 이루었다'는 것을 사람들은 믿지 않아요.

3. 누구의 삶이든, 삶은 그 자신의 문제에 대한 해결에 불과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자기 삶의 양상과 그 안에서의 태도를 결정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어야 한다는 뜻이에요.  사람들은 타인의 삶의 모습이나 주장을 대할 때, 그의 이력을 가늠해 보곤 합니다.. 자신의 경우에, 혹은 일반적인 경우에 비추어보는 것이죠. 그러나 누구의 삶에든 타인이 알아 볼 수 없는 그만의 고유영역이 있습니다. 성자 앞에서라도 끝까지 고집해야 할 '성스러운 악덕'이 있을 수 있는 겁니다. 

4. 한 사람의 개성은 그의 한계와 단점으로도 판단되곤합니다. 한 사람의 한계를 알면 관계맺기에 도움이 되죠. 그의 한계 이상을 요구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고, 그의 한계와 어떻게 타협해볼 것인가를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 경우엔 그의 장/단점, 과잉이나 결핍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아요. 상대의 과잉 혹은 결핍의 형태와 제 마음의 형태가 맞물릴 수 있느냐가 더 실제적인 관건입니다. 이건 문학에서 사용하는 '내적 담화inner speech'라는 개념과 상관이 있는 문제인 것 같아요.  밖으로 소리나지는 않지만 그러나 귀로 들리는 생각 같은 것.
아무튼 오늘도 저는 누군가를, 무엇인가를 바라봅니다. 하나의 다리를 놓기 위해서. 언젠가 그 다리 위에서 서로의 모든 결핍을 용서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5. 어제 보스가  "당신은 책/영화/음악을 참 많이 읽고 보고 들은 것 같다. 어떻게 그 나이에 그 양이 가능하지?" 라고 갸웃하시길래, "연애와 결혼만 안 하면 의외로 인간의 하루- 24시간은 길고 많은 시간입니다."라고 답했어요.
그랬더니 '언제  우리, 자신의 한계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 시간을 꼭 가져봅시다~'라며 크게 웃으신 게 앙금으로 남아 있... - -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8742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7299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7475
110671 "검사님, 검사님. 저희 판단이 틀릴 수 있어요. 검사님은 검사님 판단이 틀릴 수 있다는 생각해 본 적 없습니까?" [8] 도야지 2019.12.11 1501
110670 오늘의 편지지 셋트 (스압) [3] 스누피커피 2019.12.11 322
110669 스포일러] 곽재식 작가의 ‘판단’, ‘결혼이야기’ 등 [10] 겨자 2019.12.11 1077
110668 공기청정기 청소를 어떻게 하세요? [9] 산호초2010 2019.12.11 946
110667 음식을 대하는 나의 자세 [17] 어디로갈까 2019.12.11 1175
110666 무죄 추정의 원칙 [29] Sonny 2019.12.10 2046
110665 표창장 위조 재판에 대한 법리적 질문 [7] 양자고양이 2019.12.10 1012
110664 아이리시맨, 빵과 와인 [8] 어제부터익명 2019.12.10 1837
110663 <나이브즈 아웃> 보길 잘 했습니다. [10] Journey 2019.12.10 1035
110662 세상에서 가장 안 유명한(?) 트릴로지 영화를 소개합니다. [11] LadyBird 2019.12.10 1213
110661 택시, 타다, 혁신 Joseph 2019.12.10 478
110660 다시 또 백수가 되었습니다. [10] 아리무동동 2019.12.10 1210
110659 "똑같은 정경심 공소장" 檢 반발에.. 재판부 "계속 말하면 퇴정" [3] 도야지 2019.12.10 960
110658 [스타트렉] René Auberjonois 명복을 빕니다 [2] 노리 2019.12.10 342
110657 엇 사진 파일 업로드 사이트 postimages.org 가 연결이 안됩니다 [2] 스누피커피 2019.12.10 339
110656 아이리시맨 짧은 감상 & 씨름의 희열 2회 [9] 보들이 2019.12.10 1525
110655 고스트 버스터즈 : 애프터 라이프 예고편이 나왔는데요 [7] 부기우기 2019.12.09 733
110654 원더 우먼 1984 예고편이 나왔었네요 [7] 부기우기 2019.12.09 773
110653 [EBS2 지식의 기쁨] 숨은 코드 찾기 - 도상학 [1] underground 2019.12.09 778
110652 (기사링크) 원칙깨진 일본, 실익 챙긴 한국, 힘 과시한 미국 [1] 가라 2019.12.09 79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