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28 22:34
- 2022년작입니다. 런닝타임은 1시간 38분. 스포일러 없구요.
(요즘엔 선댄스에서 상 받은 인디(급) 호러들은 싹 다 아마존, 디즈니, 넷플릭스가 쓸어가는 듯.)
- '아이샤'라는 젊은 흑인 여성이 주인공입니다. 세네갈 출신이고, 미국에서 보모 일을 하면서 돈을 모아 자신의 아들을 미국으로 데려오려 해요. 지금은 사촌 동생이 세네갈에서 애를 돌봐주고 있죠. 내친 김에 많이 모아서 고마운 사촌도 함께 미국에 데려오겠다는 웅대한 포부!
당연히 이야기가 시작되면 새로운 집에 일자리를 구해 새 부모, 새 아이를 만나게 되겠죠. 으리으리하기 그지 없는 부자집이고. 같은 건물에 사는 다른 사람들도 다 아프리카계 흑인 여성들을 보모로 쓰네요. 그리고... 대충 예상할 수 있는 일들이 줄줄이 벌어집니다. 인종 차별, 문화적 충돌, 사회적 약자 + 여성으로서 겪게 되는 갖가지 대접들. 그리고 불길하기 그지 없는 초자연 현상들도요.
(어익후 반갑습니다! 오랜만이에요 미셸 모나한씨.)
- 그냥 봤어요. 보면서 감독의 정체(?)가 대충 짐작이 갔고 다 보고 나서 검색해보니 맞네요. 극중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서아프리칸 아메리칸' 핏줄을 가진 사람이고 여성입니다. (하지만 고향은 미쿡이라능!) 본인이 직접 이야기를 쓰고 연출했어요.
왜 이런 짐작을 했냐면, 영화가 그 '서아프리카 출신' 이라는 정체성을 굉장히 강하게 드러내며 이야기에 계속해서 녹여내기 때문입니다. 물론 제가 서아프리카 사람들에 대해서 뭘 알겠습니까만. 흔한 미국 영화들과는 뭔가 다른 감성과 이미지를 계속해서 펼쳐놓는 가운데 주인공 아이샤가 미국인들 문화에 어울리지 못하고 자기네 전통에서 안정을 찾는 식의 장면이 계속해서 나오거든요. 솔직히 아예 그 쪽에서 이민 온 사람일 거라 생각했는데 살짝 속았습니다만. ㅋㅋ
(이렇게 귀여운 아이와 정을 쌓으며 서로를 위로해주는 행복한 영화... 라면 제가 안 봤겠죠. ㅋㅋㅋ)
- 블룸하우스 제작 영화입니다만. 이 회사에서 주로 내놓는 화끈(?)하고 단도직입, 자극적인 이야기를 기대하면 매우 큰 실망을 느낄 가능성이 큽니다. ㅋㅋ 글 제목을 봤으니 아시겠지만 살짝 '이거 호러 맞기는 함?' 이라는 느낌의 영화에요. 가아끔씩 의무 방어전 느낌으로 호러 장면들이 들어가긴 합니다만 매번 그냥 '불길한 느낌!' 정도로 살짝만 보여주면서 클라이막스까지 그냥 가요. 게다가 그러는 동안에 드라마라고 해서 뭔가 막 긴장감 넘치고 대단한 게 들어가는 게 아니거든요. 그냥 딱 잘라 말해서 참 느린 영홥니다. 심지어 좀 심심하구요.
예를 들어, 이야기의 도입부를 보면 당연히 애가 이상하거나 부모가 싸이코거나 그 집에 엄청난 비밀이 있거나 해야 하잖아요? 그런 거 없습니다. 그냥 평범하게 모자라고 평범하게 나쁜 부모와 평범한 아이에요. 근데 이런 집에서 주인공이 보모 일을 하면서 아이 + 부모와 이런저런 충돌과 갈등을 겪는 걸 그냥 디테일하게 쭉 보여줘요. 애 엄마는 잘 나가는 커리어 우먼이라 애를 돌보지 않아요, 애 아빠는 그냥 게을러빠진 불한당에 바람둥이라서 보탬이 안 돼요, 애는 그냥 애라서 키우기 힘들어요. 그리고 의식적으로 안 그러려고 노력하지만 은연중에 자신들이 고용주이자 우월한 인종(?)이라 생각한다는 걸 티를 내구요. 그러니 당연히 주인공은 매사가 신경 쓰이고 피곤하고 힘들겠죠. 그게 답니다.
(아니 왜 지들 파티한다고 드레스 코드를 맞추라고 난리여.)
- 심지어 그런 차별이나 부당한 대우가 그렇게 강렬하게 튀어나오는 것도 아니에요. 예를 들어 급료를, 특히 초과 수당을 제대로 주지 않으면서 계속 빡세게 부려 먹습니다. 집에다 내니캠을 설치해 놓고 혹시 뭔 일 없을까 감시를 하죠. 근데 뭐 내니캠이야 그 동네에선 거의 보편화된 아이템인 모양이고, 이들이 수당을 제대로 안 주는 건 그냥 좀 게으르고 무신경한 사람들이라 그래요. 떼어 먹고 무급으로 굴릴 생각을 하는 악당들은 아닙니다. 근데 이게 주인공의 절박한 처지와 맞물리면서 극한의 스트레스를 안겨주는 거죠. 그리고 그로 인해 점점 멘탈이 무너져 내리는 주인공의 모습을 안나 디옵(대표작으로는 '어스', '타이탄스' 등이 있네요)이 굉장히 좋은 연기로 절묘하게 표현해주기 때문에 이 별 일 없이 평범하게 짜증나고 피곤한 보모 생활 묘사가 꽤 긴장감 있게 묘사됩니다.
(사실 가장 무서운 건 이 집 냉장고입니다. 우리 어머니께서 보셨음 통곡을 하셨을... ㅋㅋㅋㅋㅋㅋ)
- 그리고 거기에 맞물리는 초현실 요소는 아프리카 토속 전설들에서 가져옵니다. 거미 정령 '아난시'라든가, 아프리카식 인어 전설 같은 게 언급되면서 주인공의 환상인지 실제인지 알 수 없는 호러 체험들을 독특하게 꾸며주는데. 이게 나름 꽤 괜찮습니다. 솔직히 전혀 무섭지는 않지만 ㅋㅋㅋ 그냥 분위기가 독특하고 시각적으로 개성있게 잘 표현을 해줘서 '뭔진 모르겠지만 이게 아프리카 느낌인가벼'라는 기분이 들게 해요.
다만 이런 호러 요소는 사실... 토핑입니다. 이 영화는 결국 마지막까지 본격 호러로는 안 가요. 마지막에 주인공이 겪게 되는 비극적 사건도 망할 고용주들이나 이런 아프리카 전설의 존재들과는 별개로 오거든요. 결국 끝까지 안 무서운 영화 되겠습니다. 엄(...)
(이런 장면을 보고 끼야아아악 무서워!! 하고 놀라실 분이 아니라면 누구나 전혀 안 무섭게 보실 영화에요.)
- 근데 그래서 재미가 없냐! 라고 하면 그게 참 애매하네요. 딱 잘라서 말하기가 힘들어요.
화끈한 호러를 원한다면 물론 봐선 안 될 영화입니다만. 주인공의 보모 생활은 전혀 호러도 스릴러도 아니지만 묘사가 아주 디테일하면서 꽤 압박스럽기 때문에 충분한 긴장감이 생기구요. 앞서 말한 아프리카 전설들은 감독의 개성적인 시각 스타일과 맞물려서 꽤 그럴싸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또 몇몇 장면들은 정말로 맘 졸이게 만들기도 하구요. 그리고 또 다시 말하지만 주인공 배우 연기가 참 좋고, 캐릭터도 나름 세밀하게 잘 다듬어져 있어서 말이죠.
(사실 가끔은 아 뭘 이렇게까지... 싶을 정도로 이야기가 곁가지로 새기도 합니다. 저 남자 친구 이야기도 사실 꼭 필욘 없었구요.)
- 그러니까 뭐. 사실 호러팬들보단 여성 & 인종차별 이슈에 대해 진지하게 언급하는 장르물들 팬들에게 가장 잘 먹힐 영화라 하겠습니다.
그런 이슈들에 대해 짚는 부분이 예상보다 예리하고 깊은 느낌이거든요. 적어도 감독이 진심을 짜내서 만든 이야기라는 건 확실하게 느껴집니다.
다만 호러 주제에 하나도 안 무섭다는 게 문제이긴 한데. 그래도 그 호러 '분위기' 자체는 꽤 개성 있고 괜찮은 편이고. 몇몇 장면들은 시각적으로 독특하게 아름답습니다. 그러니 호러 쪽으로도 건질 게 없는 건 아니구요.
그래서 결론은... 이미 아마존 프라임 회원이시고 제 이 괴상한 글을 읽고도 호기심이 생기신다면 보세요. 어차피 90분 남짓인데 보고 실망하신들 무슨 큰 일이라도 나겠습니까. ㅋㅋㅋ 결론적으로 저는 괜찮게 봤어요. 블룸하우스보단 A24쪽 취향 영화 아닌가 싶지만, 뭐 그걸 누가 정해 놓는 건 아니니까요.
(생각해보면 조단 필의 전성시대 + 블랙 팬서의 히트 이후로 좋은 흑인 배우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 같기도 하네요.)
+ 보고 나서 리뷰들을 찾아보니 역시나. 비평가들은 꽤 호평하는 편이고 (주로 숨막히는 유모 생활 묘사 + 독특한 시각적 스타일을 칭찬합니다) 일반 관객들 평은 상당히 나빠요. 근데 솔직히 이건 보고 나서 재미 없다고 욕 해도 할 말 없는 영화이긴 하구요. 소위 '하이컨셉' 호러 혐오자분들은 보지 마세요. ㅋㅋㅋ
++ 극중에서 주인공이 자기가 보는 어린애와 관계 맺는 모습의 묘사가 되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주인공이 참 좋은, 유능한 보모이긴 한데 그렇다고해서 그 아이를 막 사랑하고 자기가 (보탬 안 되는) 부모보다 더 아끼고 뭐 그런 식으로 가지 않아요. 프로페셔널이라고나 할까요. 이런 이야기가 나오면 거의 반사적으로 주인공이 남의 집 아이와 친부모 이상의 애정으로 엮이는 식의 전개가 보통이어서 그런지 신선하기도 하고. 또 현실적이라는 느낌도 들었네요.
2022.12.29 00:05
2022.12.29 09:36
뭐가 좀 많이 생겼네? 하고 신나서 보기 시작하면 이삼일 안에 바닥나는 게 또 아마존 프라임 특징이죠. ㅋㅋ
신규 컨텐츠는 미친 듯이 올라오는데 그 중 대부분이 인도 쪽 컨텐츠이고 그들 중 또 대부분은 한글 자막 지원을 안 하더라구요. 인도 쪽이 시장이 크긴 하지만 유난히 아마존 프라임에만 인도 컨텐츠가 격하게 많아서 가끔 이유가 궁금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올려 놓을 거면 자막이라도 좀...;
2022.12.29 00:37
그 '하이컨셉' 호러물도 어쨌든 기존 슬래셔물하고 다른 작법을 쓸 뿐이지 어쨌든 무섭게 하는 것에는 성공하는데(아리 애스터 이 양반 영화도 끝내주게 무섭잖아요.) 이건 솔직히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장면도 그냥 주인공만 심리적으로 압박받고 무섭지 관객 입장에서는 더럽게 안무섭더라고요 ㅋㅋㅋ IMDb 등에서 혹평 유저리뷰들을 봐도 이게 무슨 호러냐?는 것들이 대부분인데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런데 저도 괜찮게 봤다는 것이 함정 ㅋ 어차피 저는 무슨 장르라고 꼭 이래야한다 이런 기대를 안하고 그냥 웰메이드라면 만족이라서 특유의 분위기를 즐기면서 봤습니다. 주인공 맡으신 배우분이 너무 절절하게 공감이입되게 잘하셔서 더 그랬고요. 그 부자 백인부부는 무슨 대놓고 인종차별하는 단순한 캐리커쳐가 아니어서 좋았던 것 같아요. 특히 남편은 그런 사진들 찍고 관련 이슈들 신경쓰는 예술가로 이미지 메이킹하면서 친구들이랑 BLM 대화할 때 얄팍한 허당 리버럴스러운 면을 드러낸다던가 말이죠. 아내 캐릭터는 뭐 때문에 저렇게 좀 정신없게 행동하는지 나름 미묘하게 잘 깔아놨던 것 같은데 후반부에 자기 처지와 관련되서 감독이 하고 싶은 메시지를 너무 대사로 대놓고 말하는 부분은 조금 그랬네요. 중요한 이야기이긴 한데 이젠 조금 세련되게 하지 않으면 까이는 먹잇감을 제공하는 셈이라서...
미셸 모나한은 저도 참 반가웠네요. 2000년대 중후반 액션물 남주 옆에 약간 장식같이 파트너로 붙여주는 여주역할 전문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어느샌가 자주 안보이시더라는....
아 그리고 막판에 어떤 진상이 드러나면서 그렇게 끝나는가 싶더니 또 엔딩 직전에 확 급커브(?)를 또 하더라고요. 주인공이 그런 결말을 맞은 것 자체에는 불만이 없는데 이것도 좀 감독이 아직 신인이라서 그런지 매끈하게 마무리하지 못했다는 느낌입니다.
2022.12.29 09:52
맞아요 하이 컨셉이든 로우(ㅋㅋ) 컨셉이든 일단 무서우면 되는데 이 영화는 정말 지나칠 정도로 안 무서워서 문제죠. ㅋㅋㅋ 근데 놀랍게도(?) 이 감독님은 호러에 애정이 있으신지 이미 찍었던 단편 같은 것도 그렇고 차기작도 그렇고 쭉 호러로 가시더라구요. 기왕 그렇게 가시는 거 차기작은 좀 무서웠음 좋겠습니다. 하하.
와이프 캐릭터가 재밌었죠. 본인도 어떤 맥락에선 피해자인데, 그 스플래시 데미지를 남에게 전파하면서도 본인이 힘드니 남 생각을 못하고 뻔뻔하게 굴게 되는. 요즘 뭐 좌파적인 것처럼 떠들면서 실상은 좀 거시기한 캐릭터들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보긴 하는데 이 미셸 모나한 캐릭터는 약간 더 디테일이 섬세하단 느낌이었어요. 그걸 또 그냥 참지 않고 따질 건 다 따지고 드는 (그러고 스스로 고통받지만) 주인공의 캐릭터도 좋았구요.
마지막 급커브는 정말 좀 그랬죠. 전 환상일 줄 알았습니다. ㅋㅋㅋㅋㅋ 말씀대로 울퉁불퉁한 구석이 있긴 하지만 특유의 이미지나 분위기들이 개성 있고 맘에 들어서 차기작도 기대해 보려구요.
2022.12.29 12:54
호러스러운 연출이 나오는 시퀀스들의 아이디어는 대부분 괜찮았다고 생각했어요. 비주얼로 표현하는 것도 그렇고 되게 으스스하고 그런 무드는 잘 나오는데 결과적으로 무섭지가 않은 것이 ㅎㅎ
그런 시퀀스들 말고도 그냥 밝은 대낮이나 도시의 모습을 담은 촬영도 상당히 퀄리티가 높았고 포텐이 있으신 감독님인 것 같아요.
2022.12.30 12:45
맞아요. 개인적으론 막판 공항 장면에서 주인공의 망연자실함을 잡아내는 연출이 되게 인상적이었어요. 걍 안 호러 해도 잘 만드실 분 같은데... 어쨌든 기왕 호러 하신다니 다음엔 무섭게 해주시는 걸로!! ㅋㅋ
2022.12.29 06:50
2022.12.29 09:53
맞아요. 그냥 여성, 흑인 말고도 나름 다양한 층위를 겹쳐 놓았더라구요. 결국 여성, 흑인 중심으로 귀결되는 이야기이고, 그게 영화의 재미를 보장하진 못하긴 합니다만.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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