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15 00:38
포스터의 카피 문구부터 아주 강렬하죠? 같은 속옷을 입는다니 제목만 보면 '뭐지? 동성애 여자커플 얘기인가?'하고 오해할 가능성도 있는데 모녀의 이야기입니다. 정말 그냥 영화 전체가 모녀의 이야기이구요. 인상적인 조연 캐릭터들이 두어명 정도 등장하지만 결국은 다 이 주인공 모녀의 관계를 얘기하는 것에 필요한 부품들에 가깝습니다.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어서 대체 어떤 사연이 있는 모녀인지는 딱히 설명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냥 도입부부터 아주 확실하게 보여주거든요. 지금 감상으로 얘기할 수 있는 건 그동안 영화사에서 부모와 자식의 갈등을 다룬 훌륭한 작품들은 시대와 트렌드를 가리지 않고 꾸준히 나왔었죠. 가부장적인 아버지와의 트러블이 가장 전형적이고 여성서사들이 더 많아지고 주목받게 된 최근 몇년 간에는 모녀의 얘기를 하는 영화들도 자연스럽게 늘어났습니다. 제가 너무나 좋아하는 <레이디 버드>도 그랬고 국내에서는 <벌새>라는 훌륭한 작품에서 잘 다룬 적이 있습니다. 작년만 해도 <로스트 도터>나 <쁘띠 마망> 등이 있었구요.
그런데 이 한국의 독립영화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는 위에 예로 든 작품들에서 부모와 자식간의 갈등들이 상대적으로 너무나도 귀여운 애들 장난에 지나지 않게 느껴질 정도로 어마무시하고 끔찍한 수준입니다. 가끔 쓰는 표현으로 타인은 지옥이지만 가족은 감옥이다라는 말이 생각날 정도로 지긋지긋하게 그려냈습니다. 정극장르의 독립영화치고 상당히 긴 2시간 20분의 러닝타임인데 엄청 천천히 감정 쌓아가는 그런 타입도 아니구요. 엄청난 텐션의 에너지들이 부딪히는 수많은 씬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다 보고나서 영화에 기가 빨린 것 같아서 찬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셨네요. 어휴...
즐겁거나 훈훈하고 편하게 볼 작품은 절대 아니고요. 다소 극단적인 관계설정이지만 충분히 현실적으로 볼 수도 있는 이 두 모녀를 보며 가족, 혈연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그리고 모성애 신화라는 것을 아주 날것으로 피 흩날려가며 파헤쳐보고 싶은 분들에게 조심히 추천해드립니다. 육체적 폭력씬이 간혹 나오며 언어적 폭력 수위도 상당히 높습니다. 쌍욕 이런 건 거의 없는데 말로 사람을 상처입히는 종류의 언어폭력입니다. 미리 주의를 요합니다.
올해 한국영화 여우주연상은 탕웨이가 죄다 휩쓸어야한다고 생각했지만 이 작품을 보고나니 이 두 분에게 공동여우주연상 드리고 싶네요.
2022.12.15 01:17
2022.12.15 16:30
작년 부국제 첫 상영했을 때부터 관람객들 사이에서는 입소문이 꽤 돌았던 모양입니다. 아쉽게도 극장 흥행은 별다른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지만 작품성 있는 다양성 영화를 선호하시는 분들이라면 지금이라도 상영관 거의 없지만 극장으로 가시거나 VOD로 감상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그 유명한 일드 마더나 제작년에 나가사와 마사미 주연으로 나왔던 영화가 생각나네요. 사실 본문에 언급한 로스트 도터가 정말 모성애 신화에 도발적인 담론을 던졌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정말 그런 작품들마저 뛰어넘네요.
2022.12.15 09:28
레이디버드님의 글을 읽고 용기내서 조잡하게나마 리뷰 올려보겠습니다!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듀게에서 좀 나눠봐야겠단 결심이 드네요!!
2022.12.15 16:31
언제나처럼 상세한 글 너무 잘 읽었습니다. 뭔가 막 얘기하고 싶은 요소들이 많은 영화라 저도 조잡하게 댓글 두 개 달았어요 ㅋ
2022.12.15 18:13
이 영화를 이야기하다보니 뭔가 흥분하게 되네요 ㅋㅋ이런 저런 이야기를 막 떠들고 싶습니다
2022.12.15 09:38
확실히 제목을 잘 뽑은 것 같아요. 뭔 얘긴지 호기심도 생기고, 호기심에 검색해서 설정 알고 나면 뭔가 좋은 영화일 거란 기대(?)도 생기구요. ㅋㅋ 이것도 볼 수 있게 되면 바로 봐야겠어요. 글 잘 읽었습니다.
2022.12.15 16:32
일단 제목이 확 사로잡는데 여기저기서 평이 다 좋더라구요. 씨네21 포함 평론가들도 거의 극찬이고 소수겠지만 관람한 관객들도 그렇고 여기 조성용님 블로그 리뷰에서도 대호평에 올해의 한국영화 리스트 2위로 올리신!!!
현재 VOD 대여가 만원이긴 한데 좀 기다려보시면 좋은 소식(?)이 있지 않을까 싶네요.
모성애 신화를 공격하는 영화는 일본에서 몇 번 나왔던 것 같습니다. 어떤 일이 다뤄질지 모르겠지만 뭐 현실은 언제나 영화를 뛰어넘으니까요. 이런 영화 같은 일들도 사실 조금만 눈돌려 찾아보면 생각보다 종종 주변에서 발견 되고 그랬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