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량과 알콜 거부 반응, 자기 책임론.

2010.07.10 22:39

keira 조회 수:2756

 자기 주량이 얼마인지 알고 그걸 넘어서지 않을 정도로 마시면 좋은 일입니다. 개인적으로도 자식이 성년이 되었을 때 부모가 해야 할 교육 중 하나는 주량 및 주사 테스트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자기 주량이 얼마인지 모르는 사람도 많거니와, '주량'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대학 신입생 환영회 때 소주 한 잔인가 마시고 식당에서 쓰러진 적이 있는데 필름이 끊어졌다거나 그런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단지 술이 머리로 올라가서 몇 분 정도 몸을 통제 못했던 것이지요. 그 후에는 달콤한 칵테일을 한 잔 마시고 길바닥에 쓰러진 적이 있습니다. 역시 필름이 끊기지는 않았고 동행자가 있어서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맥주 한 병을 마시고 속이 뒤집혀 토할 것도 없는데 몇 시간이나 신물을 올린 적도 있습니다. 이런 몇 번의 경험에서 도출할 수 있는 결론은 제게는 '주량'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몸을 통제하지 못할 뿐 아니라 맥주 한 잔이라도 마시면 온 몸이 시뻘개지니 그냥 술 자체가 독약으로 작용하는 체질을 타고났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쨌든 그 이후 저는 밖에서 술을 마시지 않으려고 합니다. 옆에 있는 사람이 믿을 만한 사람인지 아닌지와는 상관 없습니다. 제 몸을 제가 통제하지 못하는 데서 공포가 몰려오니까요. 그런데 혼자 안 마신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처음 회사에 들어갔을 때 회식 자리에서 사수가 술을 마시라고 따라 줬는데 끝끝내 마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건에 대해 나중에 야단을 맞았습니다. 과하게 마시라고 한 것도 아닌데 한 잔도 안 마시고 그렇게 빼니까 분위기가 싸해지지 않느냐고요.  

 

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겨우 한 잔이지만 제게는 한 잔씩이나-인 술인걸요. 회사 회식 자리에서 실수를 하는 것보다는 나중에 깨지는 게 낫지요.

사수는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도 아니었고 강압적인 사람도 아니었지만, '겨우 한두 잔'이 마시는 사람에게는 독약이 될 수 있다는 것까지 생각할 수는 없었던 모양입니다. 또  예전에 인사 담당자들이 이런 신입사원 싫다-고 하는 내용의 기사를 본 적 있는데 거기에도 회식 자리에서 술 한 잔도 마시지 않고 빼는 사람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물론 그 밑에는 술 못 마시는 것도 죄냐는 댓글이 작렬했고요. 그 댓글을 단 사람들도 어딘가 회식 자리에서 사약을 마시는 기분으로 술을 받아 마시고 있을 겁니다.

 

 술자리 분위기를 위해 동석한 모든 사람이 몇 잔은 의무적으로 마셔야 한다는 게  암묵적인 합의로 작용하고 있는 이상 그러게 왜 술이 떡이 되도록 마셨냐, 자기 주량도 모르고 마신 사람의 책임이다-라는 말은 함부로 할 게 아닙니다. 남들 보기에는 떡이 되도록 마신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 사람이 마신 건 겨우 한 잔, 그것도 주변에서 먹인 한 잔일 수도 있습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32868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51918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62316
124352 천박사..를 봤어요..유스포 [1] 라인하르트012 2023.09.29 372
124351 시민 케인 (1941) catgotmy 2023.09.29 130
124350 [티빙바낭] 역시 추석엔 가족 영화! '송곳니' 잡담입니다 [6] 로이배티 2023.09.29 356
124349 추석엔 역시 가족영화입니다. [6] thoma 2023.09.29 293
124348 Michael Gambon (1940-2023) R.I.P. [3] 조성용 2023.09.29 201
124347 [넷플릭스바낭] 칠레산 막장 풍자 코미디, '공작' 잡담입니다 [4] 로이배티 2023.09.28 420
124346 실제로 봤던 레전드 락커 catgotmy 2023.09.28 221
124345 더넌2를 보고<유스포> 라인하르트012 2023.09.28 220
124344 프레임드 #566 [4] Lunagazer 2023.09.28 116
124343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아벨 페라라의 <킹 오브 뉴욕>(1990)을 보고왔어요. [4] jeremy 2023.09.28 266
124342 더 넌2...잘 만든 캐릭터에 그렇지 못한 스토리(약스포) 여은성 2023.09.28 284
124341 김지운 감독 신작 거미집 GV후기 [2] 상수 2023.09.28 686
124340 [핵바낭] 추석이 돌아왔습니다 + 아무 거나 일상 잡담 [10] 로이배티 2023.09.27 477
124339 프레임드 #565 [4] Lunagazer 2023.09.27 99
124338 거~ 나이도 묵을만큼 묵은 양반이 어디서 개아리를 틀고있어? [1] ND 2023.09.27 468
124337 단테 신곡을 읽으면서 catgotmy 2023.09.27 162
124336 이재명 구속영장 기각 [2] Sonny 2023.09.27 723
124335 추석 전에 본 영화들에 대한 짧은 잡담... [2] 조성용 2023.09.27 446
124334 (바낭)스우파2 메가크루 미션 판정이 이해가 잘 안되고 있어요.. [1] 왜냐하면 2023.09.27 357
124333 [게임바낭] 옛날 게임 아닌 옛날 게임 잡담, '바이오 하자드2 리메이크' [8] 로이배티 2023.09.27 28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