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바낭] 역사, 그리고 어린아이들

2010.12.29 19:36

LH 조회 수:2459

 

정말 백만년 만입니다. 저 기억하는 분이... 있으심 기쁘겠습니다 ㅠㅠ


일신상의 일로 인해 바쁘고 정신 없었습니다.
지금도 너무 졸립고 앞으로 있을 일을 위해서는 당장에 자야하지만 글이 너무나도 쓰고 싶어 생존 본능을 무시하고 일단 키보드 잡았습니다.
경문왕의 복건 만드는 사람은 말의 자유를 위해 대나무숲으로 달려갔다더니,
글 쓰고 싶은 자유도 그만큼 목마릅니다.

계속 바빠 책을 볼 여가도 없지만 머릿 속에서 상상 및 호기심은 무럭무럭 일어납니다.
이것도 알고 싶고 저것도 보고 싶고, 목표는 많은데 추는 나아가지 않는 군요.
지금도 우다다 급히 써서 말이 오락가락 할 듯.

 

얼마전, 아는 분이 역사시대의 육아가 어떠했느냐, 라고 묻더군요. 그 이야길 듣고 저도 부쩍 궁금해졌지만,

언제나 그렇듯 자료가 문제였습니다. 왕세자 등의 산실청의 기록이야 좀 있긴 하지만, 책이나 민화의 자료는

가뭄의 콩싹입니다. 뭐, 할아버지가 손자를 애지중지 기르며 쓴 양아록 같은 것도 있지만 이거 역시 좀 육아의 치열함 및 말썽이 꽤 정제된 기록이고요.

 

결국 아기가 아닌 어린이로 범위를 넓혀보았지만 여전히 기록은 많지 않습니다.
있더라도, 기분이 좋지 않아지는 내용들이 태반입니다.

어린아이가 나라의 보배라는 이야기는 정말 최근에야 나온 것이죠.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린이'란 한참 나중에나 발견된 개념이었고 어린아이는 약자이자 모자란 어른이자 훈육대상이었으며, 때로 보호받지 못할 때는 참으로 잔인하게 취급을 당했으니까요.

 

뭐... 여러가지가 있습니다만.

6. 25 전쟁의 기록 사진에 죽은 어머니의 젖을 빠는 아이의 모습을 본 적이 있었는데, 이제보니 그건 이전부터 참혹한 풍경을 그리는 클리쉐였던 모양입니다. 조선시대 글에서도 의외로 자주 나오더군요.

아이 납치, 살해의 사건도 꽤 많았습니다.
아이를 가지지 못해 남의 갓난아기를 납치한 사람도 있었고,
용산에서 두 발이 잘린 여자아이가 발견되기도 했고.
양반 한 사람이 여자종을 때리다가 품에 안긴 두 달짜리 아기가 맞아 죽은 일도 있고...
길거리에 아이 시체가 발견되는 일 등등.
꽤 리얼하게 으스스해서 기분이 나쁜 사회면 엽기 사건 소식이 가득했던 고로, 이 부분 이야기는 패스하고 싶습니다. 침울하고 끔찍한 소식은 신문 사회면으로 족하다고 생각하는 지라.


그러다 문득 꽂힌 것이 위인들의 젊다 못해 어린 시절입니다.
다들 위인전에는 훌륭하고 씩씩하고 사려깊고 성숙했으며 잘난 애어른으로서의 위인 어린 모습만 적어놓지만 애들이 그러면 재미가 없죠. 그리고 사실 그렇게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상아를 멋드러지게 깎아놓은 것 마냥 모범적인 훌륭한 어른도 수십년 전에는 콧물 질질 흘리고 빼빼 울면서 엄마 치마폭을 잡고 눈깔사탕 사달라고 찡찡대다가 폭풍 쓰레빠로 싸대기 왕복 당하는 적도 있었을 터. 그게 또 사랑스러운... 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저 뿐만은 아니겠지요?

 

아무튼 민담에서 총명한(이라고 쓰되 발랑 까졌다고 읽는) 어린아이들의 일화들이 곧잘 전해지기 마련이고, 또 옛날 사람들 기준으로 훌륭하다고 적은 이야기들이 현대인들이 보기엔 더헉! 스러운 것들이 있으니 말입니다.

이를테면 동네 길 전세 내 놓고 병사놀이 하다가, 어르신들이 훈계 한 마디를 하면 눈을 노려 활을 쏘아댔다면 거리의 폭군 이순신 장군이라던가, 말입니다.

 

그리고, 어리다는 것은 성숙하지 못했다거나, 어설프다는 뜻하고도 통합니다.

괴발개발의 글씨에다 틀린 곳에는 쭉쭉 줄 그어가며 친척에게 편지를 썼던 정조의 편지를 봤을 때의 희열이라던가.
시집간 큰누나와 매형을 놀리다가 한 대 맞자(...) 울며불며 떼 쓰고 패악질 벌인 8세의 연암 박지원이라던가.

훗날 위대한 인물이 되었다는 결말을 알고 있는 채로 위인들의 옛날 모습을 들춰보면 훨씬 재미납니다. 뒷조사를 해서 까발리는 듯한 비뚤어진 카타르시스도 있지요.

 

오성과 한음? 뭐... 그 이야기 대다수가 민담에서 형성되어 사람 이름만 오성과 한음을 집어넣은 것이긴 하지만 악동들의 전설로 이만큼 더 유명한 게 또 있을까요.

오성 이항복이 율곡 이이에게 "왜 남자랑 여자 거시기는 **라고 하나요?" 라고 물었다던 무용담(?)은 대부분 그의 이야기가 그러하듯 본디 민담에서 만들어진 이야기 패턴에 인물만 집어넣은 것이지만 어째 인물들 이미지가 딱딱 들어맞아 오히려 재미납니다.

 

행여 재미난 거리가 나오는 대로 또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정리해볼까 하네요.

시간이 허락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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