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9.02 18:35
독서가 옛날에는 소리내어 읽기였지요. 이 책에서도 그것을 언급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독서는 공개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았고 도서관의 통로는 책 읽는 소리로 울리고 있었다고요.
이 책의 저자 이레네 바예호는 지금과 같은 독서의 모습이 인간의 여러 다른 행위들처럼 발전으로 이룩된 행동 양식이라고 쓰고 있습니다. 이 부분이 흥미로워서 옮겨 보려고 합니다.
'아주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고대의 독자들은 텍스트의 환영이나 사상을 마음대로 읽거나, 원할 때면 아무 때고 사색을 위해 멈추거나, 취사 선별하거나, 자기의 세계를 창조하는 자유를 지금만큼 누리지 못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개인적 자유, 즉 독립적 사유에 대한 정복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성취된 것이다.
아마도 그렇기에 우리처럼 읽게 된 초기 사람들, 다시 말해 침묵 속에서 작가와 말 없는 대화를 하게 된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4세기에 아우구스티누스는 암브로시우스 주교가 이런 방식으로 글을 읽는 걸 보고 호기심을 느꼈으며 이 사실을 [고백록]에 기록했다. 누군가 자기 앞에서 그런 행동을 하는 걸 처음 봤다고 한다. 그는 주교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고 느꼈다.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책을 읽는 그의 눈이 페이지를 훑어가며 글을 이해해갔다. 하지만 입은 꾹 다물고 있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주교가 물리적으로 가까이 있으면서도 실은 자기 옆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에게 주교는 다른 세계로 달아나 있으며 움직이지도 않은 채 찾을 수 없는 곳을 여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 장면은 당황스러웠으며 동시에 그를 매료시켰다.
따라서 당신은 아주 특별한 독자로서 혁신자들의 혈통을 물려받은 것이다. 침묵 속에서 이루어지는, 당신과 나의 자유롭고 비밀스러운 대화는 엄청난 발명품이다.'
옛날엔 책이 귀했고 공공재여서 여럿이 함께 읽어야 하는 경우가 많은 탓에 소리내어 읽기가 당연한 것도 있었고 마침표 없이 문장 구분 없이 쭉 이어진 두루마리 형태의 책에 씌어진 문자들을 이해하려면 소리내어 발음을 하는 것이 꼭 필요했다고 합니다. 문자의 이해를 위해 발로 바닥을 두둘기며 리듬을 맞추기까지 했다네요. 책의 보급, 제본, 인쇄의 발전 등 그러저러한 과정을 거쳐 점차 눈으로만 읽는 독서 형태로 자리잡은 것이겠습니다.
입 다물고 눈으로만 읽기,가 위에 옮긴 부분에서 보시다시피 4세기의 아우구스티누스에게 놀라움을 주었다고 하는데 사실 가만 생각해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예사롭지 않은 행위로다,의 느낌을 주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눈 앞에 앉아 책에 몰두한 지인을 보면 야, 너 지금 어디 가 있어,라고 불러오고 싶을 때 없으셨나요. 독서하다가 고개를 들고 바라보면서 아닌 척하지만 나 모르게 시공간을 왔다갔다했음에 틀림없어요. 무섭네요...
2023.09.02 21:15
2023.09.02 22:03
책이 많은 곳에 가면 이런저런 이유로 어지러울 때 있어요. 그래서 도서관은 근처에 숲이나 나무가 있어서 산책코스 필수 같아요.
2023.09.02 22:16
시만 소리 내어 읽는 장르였던 게 아니었군요.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하긴 옛날엔 운문과 산문이 그렇게까지 동떨어져 있지는 않기도 했고, 요즘도 작가들 중엔 그렇게 '읽는 맛'에 신경 써서 글을 쓰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럴만도 하네... 라고 혼자 납득해 보아요. ㅋㅋ
2023.09.03 10:10
옛날에는 자기가 쓸 때도 읽어 가며 썼지 않을까 합니다. 말씀처럼 요즘도 산문도 리듬감을 중히 여겨 쓴 글을 소리내 읽어 본다는 작가 얘길 들었는데 그런 사람 많겠죠?
독자 입장에서는 소리를 안 내도 머릿 속에서 비슷한 과정이 진행되는 거 같기도 하고.
처음 눈으로만 읽는 사람을 보며 충격 비슷한 걸 받았다는 게 흥미로왔어요.
2023.09.03 09:41
글 잘읽었어요. 저 매일 일정 시간 같은 책을 소리 높여 읽어요! 하루에 성경 한장 정도씩 해설까지 해서 모두 네 페이지 분량이어요. 어머니와 함께 하는 성경공부 '경건의 시간'(Quiet Time) 하느라고요. 보통 책 크기인데 제가 겨우 읽을 정도의 활자 크기라서 그렇게 해요. 저는 딴건 없고 독실한 어머니 권사님께서 그러면 좋아하셔요. 원래는 찬송도 있었는데 그건 제가 슬쩍 없애버렸고 어머니의 은혜로운 기도로 마무리되요. '고대의 독자'들도 저 같았는지 궁금하네요 :)
2023.09.03 10:18
그야말로 고대로부터 전승되는 의식을 그대로 잇고 계시는 거 아닙니까? 아마도 다수 사람들이 모여 소리내어 읽기를 하는 가장 전형적 모습은 종교의식에서 볼 수 있었지 않을까요. 모여서 함께 읽기를 더구나 가족과 함께 하신다니 '고대의 독자'들과 같을 거 같습니다. 이 책 앞 부분만 읽어서 아직 읽기와 관련한 종교 부분 언급은 못 보았지만요.
2023.09.03 11:29
아. 지난 이야기지만 혹시 관심이 있으실까 해서요. 제 페이스북에 이런 내용이 있네요.
"길고 긴 여름날 The Long, Hot Summer , 1958
2023.09.03 21:34
폴 뉴먼 나오는 이 영화는 처음 알았어요. 이 감독 영화는 예전에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만 티브이에서 본 것 같네요.
2023.09.03 21:58
문득 천주교회 미사 중에 성서를 읽는 걸 독서라고 하는 게 생각 나더라고요. 천주교 전례는 전통을 오래 간직하는 편이라 혹시나 하고 찾아보니 라틴어로는 독서가 rectio이고 라틴어 영향이 많이 남아 있는 이탈리아어나 스페인어로는 lettura lectura인데 영어로 lecture는 강의란 뜻인 게 흥미로웠습니다.
문해율이 높지 않던 시절에 많은 글이 단순히 텍스트이기보다는 verbal 즉 육성이었을 거라는 논의는 다방면에서 되고 있기는 한데요. 사실 생각해보면 그렇게 오래된 이야기만도 아닙니다. 한국에서도 일제강점기나 해방 공간에서 신문의 발행부수가 얼마 되지 않았더라도 실제로 그 영향력은 최소 10배-20배에 달했을 거라는 말들을 하곤 하는데요. 신문 한 부를 가지고 여러 사람이 돌려 읽기도 했지만, 그보다도 한글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한명이 대표로 신문을 읽어주는 일이 흔하게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옛날 신문을 보면 지금 신문보다는 훨씬 더 구어체에 가깝게 쓰인 기사가 많습니다.
2023.09.04 10:19
미사에서 독서라는 단어가 강의라는 단어와 뿌리가 같다는 건 아마도 개인적인 쾌락을 위한 읽기가 아닌 말씀을 가르치고 배우기 위한 읽기여서 그런 것일까요. 강의를 전제로 읽기를 한 것이 아닌지.
안 그래도 고대의 독서가 소리내어 읽기였다면 쓸 때도 그에 맞추어 모든 글이 리듬감 있는 구어체로 적혔을 것이고 여기엔 운문 산문의 구분이 없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 고전 소설도 구전되다 적힌 것도 많고 리듬감이 강하네요. 옛말에 자식이 글 읽는 소리를 들으면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고 했으니 글은 소리내어 읽는 것이라 생각한 것이 오래된 얘기도 아니네요.
[고백록]에 나온 내용은 '개인적 독서'라는 경험의 이상함과 의미심장함을 의식하게 된 시작으로서 의의가 있는 자료 같아요.
2023.09.04 09:33
구술 언어의 세계에서 문자 언어의 세계로 나아갔다는 게 정말 흥미롭네요. 책을 읽는 걸 마치 유체이탈처럼 표현했다는 건 그만큼 그 시대에는 구술언어가 지배적이었고 언어가 사회적인 도구로 더 널리 받아들여졌다는 뜻이겠지요? 소리를 내서 언어를 교환하고 각자 존재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하는데 언어가 소리를 삼켜버리고 침묵의 영역으로 나아갔으니 한편으로는 책을 읽는 사람이 얼마나 신기하게 보였을지 상상해보게 됩니다.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나아간 영화의 역사와 비교해봤을 때 유성언어에서 무성언어로 나아간 문자언어의 발달도 흥미롭습니다.
이걸 쓰기와 연관지어보면 뭔가 더 흥미로운 세계관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무엄한 세계의 창조와 몰두, 비밀의 전파...
2023.09.04 10:28
'언어가 소리를 삼켜버리고 침묵의 영역으로 나아갔' 다는 말씀대로 독서라는 행위가 어떤 다른 인간 활동보다 개인적인 행위가 되었고 아우구스티누스가 놀란 것도 우리가 타인의 극히 개인적인 활동을 지켜 볼 때의 심정 비슷하지 않았을까 상상해 보았어요. 소리를 내지 않음으로써 외부와 단절되고 책과만 소통하는 모습이 아주 도드라졌을 테니까요.
어느 날 에디슨이 웃음을 터트리며 "아무래도 내가 한 발명들 속에서 길을 잃은 것 같다"라고 했다지만 가끔 도서관에 가면 현기증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