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과는 다르게 7월이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밴쿠버에 여름이 찾아왔습니다.
겨울처럼 일주일에 5일 동안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씨는 아니었지만, 6월말까지는 해가 쨍하고 뜨는 날이 많지도 않은 데다가, 가끔씩은 얇게 입고 나가면 춥다고 느낄 정도였거든요. 반팔옷은 말할 필요도 없고요.

그런데 7월이 되자 갑자기 여름이 찾아왔어요! 
하늘은 쨍하니 파랗게 열리고, 태양은 작열한다고 표현할 수 밖에 없게 눈부시게 빛났죠.
햇살이 너무 강해서, 맨살로 햇살 아래 섰다간, 뜨겁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었고요.

밴쿠버의 여름을 기다렸던 터라,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요. 
커피 한 잔 손에 들고 잉글리시 베이로 룰루랄라 산책나가거나, 교외로 드라이브 가기도 했었어요.

그런데...
여름만 갑자기 찾아온 게 아니었습니다.

밴쿠버는 한국과 달리, 여름에 습하지가 않아요. 오히려 겨울에 습합니다.
고온 건조한 날씨다 보니, 그늘에만 들어가도 시원하고, 집에 들어가면 그리 덥지 않아요.
집에서도 따로 에어컨이 필요한 경우는 별로 없고, 선풍기가 있거나, 집 창문을 활짝 열어서 바람만 잘 통하게 해도 충분한 경우가 많습니다.
즉, 햇살의 직격만 피하면 괜찮다는 거죠.

그래서 밴쿠버의 여름날은 언제나 창문이 활짝 열려있답니다.

그리고 밴쿠버엔 날벌레가 별로 없답니다. 
물론 낮에 창문을 열어두면 파리가 몇 마리 날아오긴 하지만, 그래도 밤에 각종 날벌레, 특히 모기는 찾아보기 힘들어요. 
작년에 밴쿠버에서 여름을 보내면서 모기에는 저도 홍도 단 한 번도 물리지 않았을 정도니까요.
그래서 밴쿠버의 많은 곳의 창문엔..방충망이 없습니다! 필요가 없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그래서 홍과 저는 밴쿠버는 벌레 없는 동네라고 생각하며 살아오고 있었답니다. 하지만 그 생각은 틀린 것이었어요.
어느 순간 밤에 불만 켜면, 이름 모를 작은 날벌레 몇 마리와 거대한 나방 한 두 마리 정도가 밤마다 집 안으로 날아들어오는 겁니다;

(아, 잠깐 생활의 지혜. 날벌레가 집 안으로 날아 들어오면, 진공 청소기로 격퇴하세요. 휴지로 짓누르는 것보다 깔끔하고, 슈육 하고 벌레를 빨아들여서 벌레 잡기도 쉽답니다.)

방충망이 없기 때문에, 날벌레들(특히! 거대 나방!!!!)의 길목을 막으려면, 창문을 닫는 수 밖에 없어요! 
하지만 창문을 닫으면...아무리 밤이라고는 해도 여름이라 덥습니다!

그래서 해결책으로 생각한 건...낮엔 창문 열어놓고 있다가, 밤 10시에 해가 지니까, 해가 지자 마자 창문을 열어 놓은 채로 자버릴까 했어요.
어차피 불을 켜지 않으니 최소한 나방이 불빛에 이끌려 들어오진 않을테니까요!

그렇게 하루 정도 일찍 자보려 했지만, 이미 홍과 저는 올빼미 모드에 적응이 되어있어서, 밤 10시는 한창 빠릿빠릿한 저녁의 느낌이란 말이죠. 

그러다가 작년의 저희 집과 올해의 차이점을 생각해보았습니다.

ㅍ님과 ㅇ님이 한국으로 돌아가시면서 여러 가지 물품을 저희에게 넘기고 가셨습니다. 책상이나 책꽂이, 각종 식기도 포함되어 있지만, 벽에 설치하는 형광등도 포함되어 있죠.
밴쿠버는 이상하게 형광등이 대세가 아닙니다. 
요즘 슬슬 삼파장 형광 전구로 넘어가는 추세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아직 백열 전구가 대세여요. 

그리고 한국과 달리 마루 천장에 램프가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아예 없어요!
그래서 많은 아파트에 가면 스탠딩 램프를 마루에 따로 놔두고 있지요. 

형광등도 없고, 마루 천장에는 램프조차 없으니 여긴 집들은 한국보다 어둡다면 어둡다고 할 수가 있겠네요.

ㅍ님 댁도 그러했지만, 밝게 살고 싶다는 생각에 ㅍ님은 집 마루에 따로 형광등을 설치하셨어요. 
여기서는 쉽게 구하기 힘든 긴 막대형 형광등을 대형 공구점에 가서 따로 사와서 나사못 박아 마루 벽에 설치하신 거죠.

그 귀한 막대 형광등을 제게 넘겨주고 가신 겁니다.
저는 받아오자마자 나사못을 벽에 박아 형광등을 설치했고요.

그래서 저희 집은 여느 한국 집처럼 밝아지게 되었습니다. 밝으니까 좋더라고요. 눈도 덜 피곤한 것 같고, 이젠 마루 소파에 앉아서 책도 볼 수 있고요. (그 전엔 밤에 책을 읽고 싶다면 책상에 앉아서 탁상 램프를 켜야만 했달까요.)

어쨌든 날벌레의 습격에 시달리던 며칠이 지나고...차단의 방법만을 생각하다가, 어느 순간 원인이 뭘까 생각하게 되었고, 혹시 우리 집이 다른 집보다 유난히 밝아서 그런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벽에 설치된 형광등을 끄고! 그 전처럼 스탠딩 램프를 켰습니다!
그러니까!

벌레가! 안 옵니다!

아...네, 바로 이 귀한 형광등이 원인이 맞았던 겁니다. 이 특출난 밝음이 날벌레들에겐 더욱 큰 유혹으로 다가왔었나 봐요.

그래서, 요즘에 막대형 형광등을 차마 켤 수가 없네요. 
이거 귀한 건데...집 근처에서는 구할래야 구하기도 힘든 건데..
그리고 이 밝음을 포기하는 것 자체도 아쉽고요.

여름이 끝나 날벌레들, 최소한 거대 나방이라도 사라질 그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 생각보다 글이 길어졌네요. 우선 오늘은 여기서 글을 마치기로 하죠. 1부 완결이라고 생각하면 되겠군요.
2부엔 벌레 꼬임의 원인을 겨우 알아내어 벌레들과의 사투를 마친 후, 미처 정신 추스리지 못한 상황에서 맞닥뜨린 비둘기와의 사투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그럼. 기대해주시길.  
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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