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트러블'

2024.07.08 11:31

돌도끼 조회 수:202

1986년 존 카펜터 감독작품

1973년에 정창화 감독의 [철인]이 [죽음의 다섯 손가락]이라는 이름으로 미국에 개봉했습니다.
그 이전까지는 차이나타운의 화교들 사이에서나 소비되던 게토영화였던 쿵후/무협영화가 처음으로 미국의 일반관객들을 대상으로 공개된 거였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생전 듣도 보도 못하던 새로운 영화를 보게된 거였고, 그 중에 존 카펜터도 있었습니다.
카펜터는 [죽음...]에서 꽤나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고 하고, 이후로도 무술영화를 즐겨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10여년 지나서는 그렇게 받았던 인상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었죠.

[빅 트러블]은 원래 각본에서는 서부시대가 배경이었다고 합니다. 한 카우보이가 차이나타운에서 말을 잃어버리며 벌어지는 소동이었다고... 이 각본을 받아본 카펜터는 배경을 현대로 옮겨 주인공이 말이 아닌 트럭을 잃어버리는 이야기로 바꿉니다. 글고는 이 이야기가 자기가 오랫동안 좋아했던 쿵후영화를 직접 만들어볼 적절한 건수였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배경은 차이나타운이고 등장인물 거의 대부분이 중국인들입니다. [소림사18동인]으로 유명한 황가달을 악역으로 캐스팅하고 주인공도 중국인.

카펜터는 성룡을 주인공으로 쓰려고 했다고 해요. 성룡을 캐스팅하려 했다는데서 카펜터가 진심이었다는 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당시 미국에서 성룡은 아무것도 아니던 시절이니까.
이런저런 사정으로 성룡 캐스팅은 무산되고, 카펜터는 [이어 오브 드라곤]에 나왔던 데니스 던을 주인공으로 캐스팅했습니다. 경극 경험이 있어서 무술연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글구 트럭을 잃어버리는 백인 역할은 단짝인 커트 러셀에게 맡깁니다. 러셀은 [괴물]이 망한 것 때문에 주저했는데 카펜터가 '너 아니면 할 사람 없다'고 꼬드겨서 출연시켰다고 합니다. 아마 진짜로 하겠다는 사람이 없었을 겁니다. 동양인 주인공의 사이드킥 역할이었으니까.

영화는 명목상 커트 러셀이 주인공인 걸로 되어있지만, 실제로 이야기를 끌고 나가고 액션을 담당하는 건 데니스 던입니다. 러셀은 어쩌다 말려들어 꼽사리끼게 된, 없어도 이야기 진행에 별 지장은 없는 개그 캐릭터를 담당하고 있죠.

근데 20세기 폭스의 높으신 분들이 '동양인이 주인공이고 백인이 사이드킥으로 나오는 영화'라는 걸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압력을 꽤 넣은 모양이예요. 영화를 다 만든 다음에도, 커트 러셀의 캐릭터 잭 버튼이 주인공이라는 걸 관객들에게 확실히 알리는 장면을 넣으라고 압박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영화 맨 앞에 차이나 타운의 대빵인 빅터 웡이 인터뷰 하는 장면을 추가촬영해서 끼워넣었습니다.
거기서 빅터 웡은 잭 버튼이 위대한 인물이고 차이나 타운의 모든 중국인들이 버튼에게 은혜를 입었다고 강조합니다만, 이 장면이 완전 코미디인 게, 그뒤로 이어지는 영화에서 버튼이 중국인들이 고마워할만한 일을 딱히 안하거든요.
카펜터의 오리지날 오프닝은 버튼의 트럭이 차이나타운에 들어가는 장면에서 시작하는 거였다고 합니다.(그니까 시작 장면만 건너뛰고 보면 감독판...ㅎㅎ)

[빅트러블]은 참 독특한 영화였습니다. 미국에서 만들어진 최초의 무협쿵후영화.
미국도 척 노리스라든가 쇼 코스기 같은 사람들 나오는 마샬아츠 영화는 꽤 나왔었지만 미제 무술영화는 홍콩영화와는 지향점이 달랐으니까, 독자적인 미국식 무술영화가 아닌 홍콩무협영화에 대한 존중을 담고 그 방식을 도입해 만들어진 미제 무술영화는 이게 처음.([매트릭스] 디비디 부록에 그렇게 써져있었던 거 같습니다.)
메이저인 20세기 폭스에서 천만단위의 제작비를 들여서 만든 영화니까 당시까지 역사상 제일 비싼 무협영화였겠죠. 당연히 홍콩이나 대만 영화와는 때깔이 다르고 리처드 에드런드가 지휘해 만든 특수효과는 지금보기에도 나쁘지 않고 이런 고급스런 특수효과가 동원된 무협영화는 그때까지 없었죠.


그렇다고는 해도 역시 미국에서 만든 거니까, 중국 무협 보다는 서양 환타지스러운 느낌이 많이 드러납니다. 그 둘이 섞인 모습이 또 기괴했죠ㅎㅎ
그렇게 유별난 영화다 보니 당시 미국 사람들 보기에 당황스러웠나 봅니다. 폭스에서 홍보 방향도 제대로 가닥을 못잡았다고 하고 극장흥행은 망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팬들이 많이 생기고,  '모탈 컴뱃'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등 서브컬쳐쪽에서 파급력도 꽤 커 지금은 카펜터의 대표작들 중에 하나로까지 언급되죠.
거의 20년쯤 지나서야 이 비슷한 영화들이 만들어지게 되었던 것 같으니 혼자 앞서갔던 것 같아요.

글고... 이 영화가 국내에 처음으로 개봉한 카펜터 영화였죠.
미국에서 개봉하고 얼마 지나지도 않아서 바로 들어왔습니다.
사실은, 이 영화를 국내에 수입해온 영화사가 원래 찜한 영화는 아놀드의 [고릴라]였다고 합니다. 근데, 대한민국 영화 역사에 영원히 이름이 남을 이영희 위원장님이 이끌고 있던 공륜에서 [고릴라]에 수입불가를 때립니다.
영화사에선 이미 극장주들하고 이야기 다해놓고 개봉준비중이었는데 갑자기 불가가 떨어지자 땜빵으로 다른 영화를 공급해야만 하게 되었고 그래서 급하게 수배한 게 이 영화였다고 합니다. 좀 천천히 들여왔으면 싸게 흥정해서 살 수도 있었는데 급하게 사오느라 비싸게 줬답니다.([고릴라]는 다음해 재심에 통과해서 개봉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빅 트러블]은 일본보다 한국에서 한참 먼저 개봉했습니다. 당시로선 보기드문 일이었던 것 같아요. 보통은 미국에서 영화가 나오면 반년쯤 있다가 일본에서 개봉하고, 다음해가 되어서야 한국에 들어오는게 일반적이었고, 그래서 일본애들이 만든 홍보 자료를 그대로 들고와 복붙해 광고하는게 일상이었는데(때로는 자막도 일본어 자막을 중역하기도...) 이 영화는 베낄 일본 자료가 없었을테니ㅎㅎ 홍보물 같은 것도 다 자체제작했겠죠 아마.

근데, 공륜의 심술은 그걸로 끝나지 않아서, [빅트러블]은 미성년자 관람불가 판정을 받았습니다. 80년대 초까지는 영화에 섹스/노출만 없으면 어지간하면 다 국민학생 관람불가 주던 때인데, 그런방향의 요소는 일체 없고 폭력도 그렇게 세지 않은 [빅트러블]이 청불을 받았으니, 영화사도 극장주들도 황당하다는 반응이었습니다. 인디아나 존스 1,2편이 전연령이었으니 [빅트러블]도 전연령 충분히 가능한 영화라고 생각했을테고 그래서 방학기간에 맞춰서 개봉시킨 것일 터인데... 거기다 청불을 때려버렸으니... 그래서 빡친 극장주들이 미성년자들이 극장에 찾아오는 걸 쉬쉬하면서 다 들여보내줬다는 전설이....
국내 흥행은 쫄망한 미국과는 달리 (관객수 기준으론) 망하진 않은 정도였다고 합니다. 당시 커트 러셀도 국내에선 무명이었고 이 영화에 나온 배우중에 얼굴좀 팔려있던 사람이 (왕년의 스타였던) 황가달 정도였던 것과 청불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나름 선전하지 않았나 싶어요. (하지만 비싸게 주고 사왔다니 영화사에 큰 도움은 안되었겠네요.)
근데... '존 카펜터=호러 전문 감독으로만 정의하고있는 국내의 영화팬들' 사이에서는 오랫동안 거의 취급도 안해주는 분위기였다는...






존 카펜터가 직접 만들고 직접 노래한 주제가

-자막번역에서 기억나는 게 악당 행동대장 3인방 'Three Storms'를 '폭풍삼귀'라고 했던거... 지금이라면 절대로 이런 번역 안나올듯...


-오프닝에 [요마대요소신주]라고 한자로 제목이 나오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정작 (홍콩 이외의) 중국쪽에서는 [요마대요당인가]로 바뀌었지만.

-데니스 던은 [프린스 다크니스]에 다시 나오는데, 만약에 [빅 트러블]에 성룡이 출연했다면 [프린스 다크니스]에 성룡이...?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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