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가끔 썼듯이 나는 내게 불면증이 남아있는지 없는지 평소엔 몰라요. 자는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 계속 무언가를 하거든요. 밖에서 놀고 들어와도 딱히 잠이 안 오면 그냥 앉아서 드라마를 보던가 영화를 보던가 무언가를 읽던가 해요. 


 그러다 보면 정말 정말 미친듯이 졸리는 순간이 오긴 오거든요. 사실 졸립다...라는 느낌도 딱히 겪어본 적 없어요. 졸립다기보다는 순간적으로 정신이 끊어졌다가 다시 깨어나면서 '아, 이제 정말 못 버티는 순간이 왔구나.'라고 자각하는 거죠. 그럴 때 책상에서 일어나 바로 누우면 즉시 잠들 수 있어요. 


 말 그대로 '이제는 무조건 잘 수밖에 없는' 순간까지 버티면서 무언가를 하기 때문에 불면증을 겪을 일이 아예 없는 거죠.



 2.한데 내게 불면증이 남아있다는 걸 자각할 때는 다음날 약속이 있을 때예요. 아무리 늦어도 약속시간 6~7시간 전에는 자야 하니까요. 한데 '이제 이 시간에 자야 해.'라고 마음먹고 자려고 하면 도저히 잠이 안 오거든요. 정신은 말똥말똥 계속 맑고 아무리 잠을 자려고 해도 도저히 못 자겠는 거예요. 심지어는 그 상태로 5시간 정도 못 자고 있기도 해요. '어떤 시간에 자야 한다'는 의무감을 품는 순간, 이상하게 잠이 안 와요.


 그래서 약속이 낮에 있을 때는 정말 문제예요. 차라리 저녁~밤쯤이 약속이라면 어떻게든 잠을 자고 나올 수 있거든요. 한데 약속이 낮이라면 정말 잠자고 나오기가 힘든거예요. 



 3.사실 몇년 전만 해도 앉아서 계속 무언가를 하는 게 힘들어지곤 했어요. 왜냐면 나같이 모든 만화를 다 보고 모든 드라마를 다 보고 모든 영화를 다 보는 사람이라면, 어느 순간에는 더이상 볼 컨텐츠가 없게 되었거든요. 이미 나와있는 건 다 봐버렸고 이제는 현재 진행중인 쇼의 새로운 컨텐츠가 나오는 날만 손가락 빨며 기다려야 하는 신세가 되는 거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턴가 발행되는 컨텐츠 자체의 총량이 늘어난 건지, 드라마도 영화도 엄청나게 불어난 느낌이예요. 넷플릭스나 아마존 같은 스트리밍 업체가 생기면서 시즌 단위로 제작해내는 드라마의 양 자체가 몇 배는 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어지간히 드라마를 많이 봐도 눈을 돌려보면 볼 만한 드라마가 한두 개는 더 있더라고요. 퀄리티와는 별개로요. 이전에는 내가 컨텐츠를 소모하는 속도보다 지구 단위의 컨텐츠 생산속도가 느렸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내가 컨텐츠를 소모하는 속도랑 비슷한 속도로 컨텐츠가 생산되는 느낌이예요.


 다만 그런 제작시스템의 부작용인지, 영화의 경우는 뭐랄까...옷으로 치면 동대문 업자가 브랜드 옷을 비슷하게 베껴서 파는 그런 옷? 그런 느낌의 영화가 너무 많아진 기분이예요.



 4.휴.



 5.전세계에 유통되는 컨텐츠의 양이 많아지니까 번역가의 수급이 문제인가봐요. 하긴 생각해보면 그래요. 아무리 영어를 잘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해도 번역 일을 맡길 정도의 실력자가 필요한 만큼 늘어난 건 아닐 테니까요. 디즈니+의 번역 일감도 아직 착수도 안 되었다고 하고...현역에 있는 번역가들은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상태라 디즈니+의 런칭이 늦어지는 이유가 번역가 때문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네요.


 이번에 나온 애플tv의 컨텐츠들도 다른 나라의 자막은 지원하는 모양인데 한국 자막은 지원하지 않더라고요. 어떤 사람은 애플이 한국을 신경쓰지 않는가보다...라고 말하던데 그건 설마 아니겠죠. 그냥 우리나라의 모든 번역가가 일하고 있는 중이라 그런 거 아닐까라고 생각해요. 스페인어랑 영어를 동시에 잘 하거나 독일어랑 영어를 동시에 잘 하는 사람은 세계적으로 많겠지만, 한국어랑 영어를 동시에 잘 하는 사람은 주로 한국에만 있는 거 아닐까요?



 6.우리나라 사람들이 결혼을 안 하거나 아이를 안 낳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컨텐츠가 너무 많아져서가 아닐까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인생의 단계별로 무언가를 하는 것...싫어도 20대까지는 결혼하고 싫어도 30대까지는 아이를 낳고 뭐 그러던 풍습이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일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그러지 않으면 할 게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거든요. 사실 꽤나 인싸가 아니고서야 10~20대는 학교에서, 2~50대에는 직장에서나 사람을 만나는 법이니까요. 예전에는 자신이 속해야 하는 집단과 자신이 뒤처지지 말아야 하는 레일을 계속 유지해야만 사회에서 떨려나가지 않을 수 있었단 말이죠. 


 그런데 요즘은 매우 적은 비용으로도 최고 퀄리티의 영상과 각본을 갖춘 이야기를 볼 수 있고 게임도 할 수 있고 커뮤니티를 하면 사람들과 함께하는 느낌도 엇비슷하게 느낄 수 있죠. 나이대 별로 올라타야만 하는 레일에 올라타지 않아도 괜찮은 소일거리가 많아요. 



 7.어떻게 보면 직접 나가서 사람들과 대면하는 것보다 커뮤니티나 채팅으로 사람과 교류하는 게 편할 수도 있겠죠. 한 50% 정도의 사람들은 그럴걸요. 나는 그날그날 다른 것 같아요.


 어떤 분이 모르는 사람을 만나는 데 부담이 없냐고 물으셨는데 글쎄요. 부담은 아는 사람들에게서 느끼거든요. 왜냐면 아는 사람이 되어버리면 그 사람과의 관계가 어떤 식으로든 성립되니까요. 누구의 서열이 위인지, 서로같에 맡은 역할이 뭔지, 누가 예의를 더 갖추는 사람인지가 정해져있고 멋대로 그걸 깨버리면 공들여 구축한 관계가 파탄나거든요. 


 하지만 낯선 사람과 만나면 서로간에 아무런 힘도 작용하지 않기 때문에 편하게 둘 다 예의를 지키면 돼요. 그냥 식사 한번 하거나 차 한잔 마실 때는 모르는 사람이 편한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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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내가 이 시간에 자고 있지 않는다는 건 오늘 약속이 있다는 뜻이겠죠. 약속이 없었다면 잘 수 있었을텐데...약속이 있기 때문에 긴장되어서 제대로 못 자고 있어요. 나가서 수영이나 좀 하고 2시간이라도 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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