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27 21:37
듀게에 쓰고 싶은 말이 잔뜩 있는데 여력이 안 되네요.
20년 전 미국드라마 프렌즈를 보니 여주인공들이 노브라 상태로 많이 나옵니다. 집에서 편하게 있는 장면일 때는 젖꼭지가 선명하게 보이는 얇은 티셔츠만 입고 있고, 다른 친구들(조이, 챈들러, 로스 포함) 아무도 신경쓰지 않죠. 그리고 아마 시청자들도 신경쓰지 않았을 거예요. 안 그랬으면 매회 '레이첼, 노브라로 나와'같은 저질 기사들이 쏟아졌을 테니까요. 그리고 여주인공들이 여러 파트너와 섹스를 한 이야기가 아무렇지도 않게 계속 나오죠. 그게 낙인이 된다는 징후조차 없어요. 이미 동성결혼도 꽤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요. 그런데 20년 전에 이미 이랬던 미국에서도 강간 피해자들에 대한 낙인과 낮은 기소율, 낮은 유죄 선고 비율, 재판 과정에서 검사와 판사, 배심원들이 강간 피해자에 대한 편견을 갖고 가해자에 대해 동정하는 경향 등의 문제는 여전히 심각합니다. 그러니 남한의 재판정은 오죽하겠습니까.
저는 그래도 남한 사회가 강간 피해자와 가해자를 결혼시키는 것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구약 성경의 사회나, 피해자를 가족이 살해하거나 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내리는 아랍권 사회보다는 낫다고 생각해왔어요. 그런데 설리나 구하라를 보니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토플리스도 죄가 아닌데, 노브라라는 것이 대체 왜 낙인이 될 수 있나요. 여성이 결혼 전에 섹스를 했다는 것이 왜 낙인이 될 수 있나요. 섹스를 했다는 증거가 왜 협박용으로 쓰일 수 있나요. 폭력을 당했다는 증거 자체가 왜 피해자를 죽이는 도구가 되나요. 대체 왜.
여전히 미국에서도 강간과 폭력 피해자들이 신고와 인터뷰, 재판 과정 전체에서 2차 가해를 맞닥뜨린다고 합니다. 한국은 그 과정 전체가 통째로 2차 가해인 것 같네요. 경찰에 신고하면 남편이나 남자친구랑의 일은 둘이서 해결하라고 하고 돌려보내고, 검사는 강압적으로 정황 기술하라고 하고, 판사는 가해자에게 감정 이입해서 가해자의 미래 걱정하면서 선처하죠. 몰래 섹스하자고 하는 검사를 만날지도 모르고1), 변호사는 김수창 같은 자를 만날 수도2) 있고, 가해자는 변호사를 잘 써서 불기소될 수도 있고3) 판사는 가해자가 공무원지망생이거나 교사지망생이라고 선처하거나4) 힘들게 열심히 살아오다 별장성접대 같은 걸 무리하게 하게 되었다5)며 선처할 수도 있습니다. 곳곳이 지뢰밭이에요.
구하라가 용기를 내어 자신이 당한 폭력과 협박을 신고했을 때 어느 정도는 각오했을 거예요. 하지만 이렇게 끔찍한 악플과 끔찍한 재판을 겪으리라곤 상상하지 못했겠죠. 최종범에게 집행유예를 내린 판사 오덕식은 이 동영상이 협박용인지를 확인하겠다며 구하라의 법률대리인이 항의하는데도 굳이 재판정에서 틀어봤다고 합니다. 그 영상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든, 최종범이 '그 영상을 언론사에 보내서 공개해서 네 연예인 인생을 끝장내겠다'고 한 사실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죠? 그들이 어디서 언제 얼마나 성관계를 한 것이 협박과 폭행, 상해, 주택침입과 무슨 상관이라고 그것을 판결문에 담은 것이죠? (대한민국의 판결문은 영구보존됩니다. 영.구.보.존.) 오덕식은 그냥 자신의 욕망을 판사라는 위계적 지위를 사용하여 합리화한 것으로 보입니다. 본인이 재판정에서 불법을 저지른 것입니다.
구하라를 폭행하고 협박한 최종범, 재판정에서 굳이 그 불법동영상을 봐서 재차 가해를 저지른 오덕식, 그리고 '종범아, 이제 고소할 사람도 없으니 동영상 풀자'라는 댓글을 쓴 악마.... 이들에게 최고의 저주가 내리길 빕니다.
처음에 구하라의 죽음을 전해 들었을 때 어떤 언어로도 그 심정을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지금도 다 표현할 수는 없을 것 같네요. 하지만 도저히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은 그 무의식과 의식의 경계에 있는 말 아닌 말을 억지로 꺼내어 쓰는 것이 그래도 구하라를 기리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미친년으로 살기, 하지만 멀쩡하고 행복한 사람으로 살기. 이것이 페미니스트가 걸어가야 하는 외줄이라고 느껴져요.
이 사이의 줄타기처럼 서발턴으로 말하기도 늘 오장육부를 뒤집어놓는 것처럼 힘듭니다. 세상에 존재한 적 없는 방식의 존재니까요.
1)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61867.html
2) 김수창 제주지검장이 여고 앞에서 자위행위하다가 걸렸는데 사표를 받아줘서(!) 연금도 받고 서초동에서 변호사 개업해서 잘 살고 있음
5) http://www.kookminnews.com/news/view.php?idx=24717
재판부가 양형 이유를 밝히는 과정에서 다른 형사재판에서의 설명하는 방식과는 매우 다르게 윤 씨의 일생 경로를 읊기 시작했다. 마치 재판부가 윤중천 씨의 입장에서 성폭력 사건을 이해하는 듯한 매우 이례적인 태도를 보여 일각에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재판부는 “윤 씨는 시골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해병대 복무를 마친 뒤 사회생활을 시작했다"며 "어려움을 많이 겪던 중 장벽을 넘기 위해 무리하게 노력하다가 성범죄와 사기 등 범행을 저질렀다”라는 취지로 그의 살아온 경로를 구구절절 밝혔다.
2019.11.27 21:40
2019.11.27 21:44
2019.11.27 21:45
꼭 돈받고 하세요 ^^
2019.11.27 21:47
2019.11.27 21:51
첫 댓글부터 어디서 벌레가. 퉤.
2019.11.27 21:56
화이팅!!(제가 이 댓글을 캡쳐해서 신고할까요 안할까요?^^)
2019.11.27 22:02
2019.11.28 05:11
전혀 관심 없수.
2019.11.29 22:48
고소했습니다.
2019.11.27 22:02
2019.11.29 22:49
고소했습니다.
2019.11.29 22:49
고소했습니다.
2019.11.27 22:40
2019.11.28 05:42
사회, 대중, 우리 모두 같은 단어들로 물타기를 하신다고 느껴집니다. 물론 '이 사회의 누가 여성혐오에서 자유로운가?'라는 질문에는 '아무도 자유롭지 않다'고 답할 수밖에 없지만요. 나 자신도 여성혐오를 갖고 있고 가부장제를 재생산하는 데 일조하고 있을 테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확실한 가해자에 대해 말하기를 주저하고 피해자와 연대하지 않는다면 대체 무엇을 바꿀 수 있겠습니까? 성관계 동영상 유포가 타격을 주는 '사회', 노브라로 가슴을 부각시키는 '사회'에서 저는 빠지기로 결심했고 빠지려는 노력을 해왔습니다. 구하라 동영상 찾는 인간들에게 빠짐없이 경고하고 실제로 고발하고, '나도 노브라다! 어쩔래?'하고 탈브라 움직임에 동참했어요. 노브라를 가쉽삼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하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그 '사회'에서 저는 빼주십시오. 그리고 저뿐만 아니라 많은 여성들과 일부 남성들도 그 사회에서 빠져나오고 변화시키려고 노력해왔습니다. 그냥 '사회'라고 뭉뚱그릴 수 없는 배타적 집단이 있는 거죠.
최종범이 우발적으로 욱 해서 협박했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래서 정상 참작하자는 말씀이세요? 세상에... 그 우발적인지 계산적인지 알 수 없는 협박에 이미 무의식적으로 계산이 끝나 있다는 생각 안 드세요? 여성의 몸이 보여질 때 겪게 되는 추락과 낙인, 보는 자의 위치를 점유/공유하면서 재확인하는 권력, 그것을 협박으로 사용할 수 있는 사회적인 위계.... 그 동영상의 존재만으로도 이미 구하라의 커리어에 큰 타격을 준다는 걸 잘 알고서 한 협박이죠. 역으로 구하라가 최종범에게 동영상으로 협박할 수 있었을까요? 전혀요. 최종범에겐 오히려 훈장이죠. 따라서 불법동영상이지만 재생되면 재생될수록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게 타격을 주는 역전된 권력관계를 너무나 잘 알고서 한 협박이에요. 판사 오덕식은 그 불법동영상을 '합법적으로' '법의 힘을 이용하여' '재판정에서' 재생함으로써 그 불법을 이중으로 승인한 셈이 됩니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참담합니다.
더 큰 발화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나 언론은 당연히 더 조심해야죠. 보도지침이라는 게 왜 있겠습니까? 그렇게 너도 나도 다 잘못했으니, 누가 잘못했는지 따지기 어렵다고 넘어가자고요? 누구 좋으라고요? 두드러진 원인부터 찾아서 차단해야지 비슷한 사건이 덜 벌어지기라도 하겠죠. 그리고 우리는 항상 여자와 남자의 애정관계로 얽히는 것이 아니라 비대칭적인 권력 행사와 폭력 때문에 피해자와 가해자가 됩니다. 너도나도 예민한 게 아니고, 저는 지금 분노하면서 애도하고 있고, 누군가는 지금도 구하라를 조롱하면서 그 동영상을 찾고 있습니다.
나쁜 판결에 대해서는 당연히 비평할 수 있고, 그런 판결을 지속적으로 내리는 판사에 대해서는 탄핵을 요청할 수 있죠. 최종범이 저지른 협박과 폭행에 대해서도 주의를 환기할 수 있고요. 대체 뭘 조심하자는 건지 모르겠군요.
2019.11.28 08:00
2019.11.28 08:32
2019.11.28 10:09
2019.11.28 14:56
어딜 다 끌고들어가려고해요. 노브라에 입 근질근질 거리는 것은 특정부류들 뿐입니다.
2019.11.27 22:46
오덕식 부장판사님은 장자연 추행혐의의 조선일보 기자에게도 무죄를 선고한 분이네요.
2019.11.27 23:57
2019.11.28 05:50
오덕식은 파도 파도 계속 나오더군요. 아동성창취동영상 유포한 사람도 집행유예, 포주도 집행유예, 마트 돌아다니며 수없이 몰카 찍은 사람도 집행유예, 장자연 성추행 기자도 집행유예, 웨딩홀에서 수십 차례 여성 하객 치마 속 몰카 찍은 사진기사도 집행유예.
2019.11.28 00:49
2019.11.28 05:54
이 지독한 악몽이 언제쯤 끝장날까요.
2019.11.28 10:21
공감합니다. 고인을 추모 하는 것만으로는 아무 것도 바뀌지 않습니다. 다시는 이렇게 괴로움을 당하는 사람이 없게 해야죠.
2019.11.29 18:56
네. 언젠가 한국의 여성 연예인들도 '내가 페미니스트다'라고 당당하게 외칠 수 있는 날이 올 때 반은 웃고 반은 울면서 고인들의 이름을 기억할 수 있길 빕니다.
2019.11.28 11:25
2019.11.29 18:56
언어로 다 표현되지 않는다는 걸 다시 느끼고 있어요..
2019.11.28 14:06
설리때도 충격이었지만...
얼마지나지 않아 바로 그 설리와 친했고, 또 여러 힘든 일이 있었음을 알고 있는 구하라씨의 소식을 들었을 땐...
진짜 육성으로 "뭐라구!"하는 비명이 튀어나왔습니다.
어느 분 말씀처럼 내 안에도 분명 가부장사회의 흔적이 크게 남아있고 그것에서 벗어나고자 하지만 여전히 그 잔재에서 자유롭지 못하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라는 말로, 사회라는 말로 모두에게 죄책감을 갖게 하고 더 큰 가해자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지도 않습니다.
50보 100보라면 그 둘은 같은게 아닌거죠.
2019.11.29 18:57
구하라님은 이미 예견되었는데도 막지 못해서 더 충격이 큽니다. 저에게는요...
2019.11.28 15:22
최종범도 개새끼고 그 개새끼에게 감정이입한 판사새끼도 쓰레기고 기레기라는 직업으로 하라씨에게기사의 탈을 쓴 악플단 기자새끼도 죽일 놈이고
이 글에다가 똥 싸지른 관심 고픈 벌레새끼 한마리까지 모두 다 내일 길에서 똥차에 깔려 뭐가 똥인지 뭐가 대가리속인지 구분이 안되는 시체가 되길 바랍니다. 끝.
2019.11.29 18:58
본인이 느낀 죄가 뭔지, 죄책감을 아주 정확히 느꼈으면 좋겠어요. 죄책감이 우주보다 크다는 걸 뼈속 깊이 느끼게 되길.
2019.11.29 08:24
마음이 너무 처참해서 오랫동안 온갖 소셜미디어들을 멀리했는데
여기서 일희일비님 글 때문에 눈물이 쏟아지려고 하네요.
어떻게 이렇게 '공모살인'을 버젓이 할 수가 있나요, 그 남성들은.
살아 보려고 살아 보려고, 구해 보려고 또 구해 보려고 노력하고 또 노력한 그 어린 여성들이 가여워서 정말 아무 말도 못하겠습니다.
맘 같아선 핵폭발이라도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봅니다. 그 쓰레기 더미 위에.
2019.11.29 18:59
저도 자꾸 멀리하게 됩니다. 두뇌 한구석에서는 '생각하지마! 떠올리지마!'라는 신호가 자꾸 뜨네요. 그 신호를 억지로 무시하고 기억하려고 애써봅니다.
설리같은 여자 연예인 노브라 사진 올리면 여기자들이 난리 난리 치던데.. 성 상품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