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는 글쓰기에 대한 아도르노의 생각이 산재해 있습니다. 특히 '아포리즘 51'에서 그는 글 속에 살림을 차리는 작가에 대해 말하고 있어요. 이 단상의 맥락은 글쓰기의 다양한 방법에 대한 성찰이지만, 글을 어떻게 쓰는 게 좋은가 따위의 습작 강의를 하는 건 아니에요. 사실 아도르노의 말은 일반화되기에는 너무나 특수하죠.
"작가는 텍스트 속에 살림을 차린다. 종이, 책, 연필, 서류를 방마다 끌고 다니면 무질서가 생겨나듯이 작가는 사유 속에서 그렇게 행동한다.
그에게는 사유가 가구여서, 안주하는 동안 마음이 편해지기도, 불편해지기도 한다. 그는 사유를 가구처럼 부드럽게 쓸어보기도 하고, 닳을 때까지 쓰기도 하며, 난잡하게 늘어놓기도 하고, 위치를 바꾸어 보기도 하고, 망가뜨리기도 한다."
고향이 없어진 사람에게 글쓰기는 '집'을 짓고 들어가 사는 것과 같은 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글을 쓰면서 그는 -옛집에서 그랬듯- 어쩔 수 없이 쓰레기와 잡동사니를 생산해내죠. 그러나 창고가 없기 때문에, 그는 쓰레기를 앞으로 밀쳐두곤 하므로써 결국 주위는 쓰레기로 가득차게 됩니다. 반복, 반복.
- 제가 '아포리즘 51'에서 찾아낸 도토리 같은 메시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중심 모티프가 분명하게 강조되어 있는지 텍스트를 꿰뚫어보라. 글의 '진행'에 사로잡혀, 말하고 싶었던 것을 잊어버리기 쉽다.
2. 사소한 개선이란 없다. 개별적으론 어리석고 고루하게 보이지만, 작은 변화들이 모여서 텍스트의 새로운 수준이 형성된다.
3. 길이가 관건이 아니다. 삭제하는 일에 인색치 말라. 사유의 절제가 충만하고 힘있는 구성에 도움이 된다.
4. 동의어들의 결합은 추악하며 그 사유는 허위로 오해되기 쉽다. (예: '완전히 그리고 아주', '번영과 파멸' '확장하고 깊이 있게')
5. 저속한 사유를 화려한 문체로 장식하는 행위를 삼가라. 무성한 숲이 결코 신성한 숲은 아니다.
6. 어떤 작은 의심도 진지하게 받아들여라. 그것이 전체의 객관적인 무가치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7. 변증법은 극단적인 논리적 결과를 통해 사유를 전환시킨다.
8. 표현 자체의 아름다움은 장식적이고 인위적이며 추악하다. 자신이 생각한 바를 잘 말하는 것이 바로 아름다운 것이다.
9. 고귀하게 작성되는 텍스트는 방직물처럼 촘촘하고, 집중적이며, 명백하고, 견고하다. 그런 텍스트는 하나의 사유가 던지는 불빛을 받아 다른 사유가 빛나기 시작한다.
10. 작가는 텍스트 속에 방을 꾸민다.
사소한 개선은 없다, 동의어의 결합은 추악하다(ㅋㅋ), 표현자체보다 생각한 바의 전달, 작은 의심도 진지하게, 사유가 던지는 빛을 받아 다른 사유가 빛난다(띠용용).... 일반화하기 좋네요.
그 후배는 선배가 이런 생각한 걸 알면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