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커

2019.10.09 04:10

멜키아데스 조회 수:927

『다크 나이트 라이즈』와 『조커』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는 놀라운 성취였습니다.

하지만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좀 고개가 갸웃해지는 영화였죠.

다크 나이트의 눈부신 성취를 이으려고 하기보다는, 3부작을 마무리 지으려는 강박이 영화를 옭죄고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서사는 좀처럼 동의하기 힘듭니다.

 

테러리스트들은 허위와 기만으로 가득 찬 세상을 부수기 위한 공격을 감행합니다.

그 덕에 주식 시장이 무너지고, 감옥이 붕괴되고, 화려하게 살던 기득권자들이 공격당합니다.

그런데, 그 테러리스트들의 목적은 사실 사적 복수였죠.

그들은 처음부터 복수를 위해 이 화려한 쇼를 펼친 겁니다.

영웅은 가짜 혁명가를 무찌르고 평화를 되찾습니다.

 

이 서사는 너무나 시대착오적입니다.

 

금융 위기가 도래하고, 금융가들은 자기 기업의 몰락을 이용해 한 몫 잡습니다.

직장을 잃고 거리에 내몰린 것은 노동자들입니다.

분노한 시민들은 월가에서 시위를 벌이고, 부유층은 마천루 위에서 와인을 마시며 시위대를 내려다봅니다.

 

이 시기에 바스티유(블랙 게이트)를 공격하는 테러리스트를 무찌르기 위해 공권력(경찰)과 손잡는 영웅의 서사는 뭔가 영 마뜩찮죠.

크리스토퍼 놀란이 각본을 쓴 맨 오브 스틸에서 어쩌면 이 혼돈의 단서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민자 슈퍼맨은 말미에 미군 장교 앞에서 자신이 온전한 미국인임을 선언합니다.

외계인도 녹여버리는 위대한 용광로.

 

어쨌든 우리는 월가 시위를 지나, 트럼프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또 하나의 배트맨 서사를 만났습니다.

 

조커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정확히 반대편에 서있습니다.

정점에 서 있던 영웅이 몰락하고, 다시 날아오르는 서사와 바닥에서 시작해 서서히 끓어오르다가 다시 시궁창에 처박히는 악당의 서사.

 

바닥에 처박혀 있던 아서 플렉은 모종의 사건을 겪은 뒤 서서히 삶에서 희망을 맛보기 시작합니다.

자신을 이해해주는 연인과 자경단이라며 추켜 세워주는 사람들, 그리고 되찾은 아버지.

하지만 모든 것이 다 허위로 돌아가는 순간 그는 의도치 않게 조커가 됩니다.

 

강한 미국과 위대한 자본주의의 시대 속에서 소외된 남자가 의도치 않게 일궈낸 파괴된 도시.

 

조커는 시의적절한 것 같습니다.

황금사자상은 그 시의적절함에 대한 표창이겠죠.

 

-

 

사족입니다.

말미에 불타오르는 도시를 보며 광화문과 서초동이 떠올랐습니다.

사실 별 상관은 없지만, 그냥 떠올랐습니다.

둘 다 건투를 빕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32036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51022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61335
110185 중국의 ‘82년생 김지영’ 현상 [13] ssoboo 2019.10.24 1800
110184 최영미 영문시 헌사 페이지에 가끔영화 2019.10.23 479
110183 영화 <그것: 두번째 이야기> 외 재활용 잡담 [6] 노리 2019.10.23 614
110182 [바낭] 일상생활 속 늘금 실감 포인트들 [21] 로이배티 2019.10.23 1146
110181 넷플릭스나 왓챠 호러좀 추천해 주시겠어요? [12] 존재론 2019.10.23 755
110180 오늘의 80년대 일본 잡지 mc Sister(3) (스압) 파워오브스누피커피 2019.10.23 484
110179 그레타 툰베리. 마지막 기회. [55] 일희일비 2019.10.23 1690
110178 이런저런 일기...(자본, 꿈, 계획) [2] 안유미 2019.10.23 584
110177 동네 고양이 생태 보고서 2 [10] ssoboo 2019.10.23 723
110176 아래 글 댓글에도 링크가 있지만... [12] 카페라테 2019.10.22 986
110175 비행기 안에서 본 영화 4편 [3] applegreent 2019.10.22 1012
110174 한국시리즈 1차전 [44] mindystclaire 2019.10.22 632
110173 계엄문건 원본과 윤석려리 [11] ssoboo 2019.10.22 1497
110172 <듀나인> 웹체크인 할 때 biometric 여권 [6] mindystclaire 2019.10.22 1151
110171 스타워즈 에피소드 9 최종 예고편 [9] 폴라포 2019.10.22 863
110170 [넷플릭스바낭] 독드(...) '다크'를 보는 중인데 좀 힘드네요 [15] 로이배티 2019.10.22 1229
110169 오늘의 80년대 일본 잡지 mc Sister(2) (스압) [2] 파워오브스누피커피 2019.10.22 703
110168 듀게 오픈카톡방 [4] 물휴지 2019.10.22 398
110167 [바낭] 요리 후기_ 생강청 [11] 칼리토 2019.10.22 755
110166 [잡담] 조커 & 벌새 & 원스어픈어타임인헐리우드 감상 [5] 귀검사 2019.10.21 1051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