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편 이상의 스포일러는 없습니다)

 

 

네, 스너프네 하드고어네 고문포르노네 하던 지난 밤 기자 시사의 반응은 오바된 게 맞습니다

하지만 이런 영화를 보고 모두가 별 거 아니네, 하고 코웃음을 치는 사회라면 그게 더 이상한 거겠죠

기자분들이 한껏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으로 기능을 했으니

저같은 관객들이 에이 뭘 그 정도는 아니지, 하고 김을 빼놓는 것도 하나의 기능이라면 기능이겠습니다

 

네, 뭘 그 정도는 아니네요

물론 기존 국내 영화를 통틀어 가장 강도 높은 표현 수위를 자랑한다 할 만은 하겠습니다만

사람 몸 가지고 썰고 으깨고 터뜨리고 뭉개고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온갖 영화들을 봐온 저같은 관객도

지난 밤 기자 시사 반응을 보곤 지레 겁먹을 지경이었으니, 아무튼 그 정도는 아니었다고 해둬도 될 것 같습니다

 

영화는, 좋았어요

지금은 위상이 좀 올라가긴 했지만 개봉 당시 혹평 일색이었던 달콤한 인생도 엄청 좋아했고

영화 참 못 만들었다고 투덜거리면서도 놈놈놈까지 재미있게 봤던 저의 과거를 밝히면 제 평에 대한 신뢰도는 바닥을 치겠지만

아무튼 놈놈놈처럼 대놓고 덜그럭거리는 영화는 아닙니다

여전히 김지운식의 문어체도 구어체도 아닌 뭐랄까 시나리오체랄까 세상 어디서도 쓰지 않는 말투로 당연하다는 듯 대화하는 씬들이 나옵니다만

이 정도면 그 정도는 감독의 낙인이라고 생각해줘도 될 것 같고 (제가 관대합니까) 다른 모든 김지운 영화에 빗대어 본다면 가장 적게 나오기도 하고요

아무튼 역시 지난 밤 시사 이후 올라왔던 이건 그냥 못 만든 영화라느니, 지루하다느니 하는 평들에는 동의할 수 없어요

 

김지운의 영화가 늘 그렇듯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도 관객더러 감정이입 하라고 만들어 놓은 인물들이 아닙니다

악마를 보았다의 수현은 반칙왕의 대호나 장화홍련의 수미, 달콤한인생의 선우처럼

어떤 극단의 인물, 그러나 자기 안에 매몰되어 스스로가 얼마나 극단인지 모르는 인물, 여전히 자기가 보통 사람인 줄 알고 있어서 세상과 삐걱거리는 인물입니다

아니, 사실 앞의 예는 사족이고 좀 더 솔직히 말해 그냥 달콤한 인생 선우의 재림이죠

영화의 어느 지점에선가 수현이 갑자기 '나한테 왜 그랬어요?'해버려도 전혀 위화감이 없을 지경이에요, 심지어 옷을 갈아입힐 필요조차 없죠

 
그러니 세간에서 흔히 비교되듯 악마와 추격자를 두고 어느 쪽이 더 좋은 영화인가를 논하는 건 저로선 조금 힘듭니다
미용실체로 말하자면 손님, 이건 김지운 영화예요

김지운 영화가 늘 그렇듯 이번에도 역시 그는 관객에게 이입의 여지를 주지 않습니다

등장 인물들은 김지운식 미장센 안에 전시되어 있고 관객의 마음이 동할 때도 그건 동일시가 아닌, 그래 그게 뭔지 알 것 같아, 하는 식이죠

김지운 영화에서 새삼스런 얘긴 아닙니다만

 

이 영화는 우리 '보통 사람'들이 악마를 보았을 때 복수해야 할까, 혹은 어떻게 복수해야 할까를 말하는 영화가 아닙니다

우리가 아닌 누군가, 우리는 할 수 없는 무엇을 할 수 있는 자가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을 하는 것을 전시해 놓은 영화죠

그걸 누구는 김지운식 겉멋, 허세라 부르고 저같은 빠들은 김지운 스타일이라 부르겠습니다만

 

기자분들이 열심히 목청을 높이셨듯, 영화는 무지 쎕니다

복수에 복수가 꼬리를 물고 이 나라에선 전례없었던 수위의 신체 훼손이 난무하고요

발생하는 범죄들도 뭐랄까 심정적으로 '저기까진 안 갔으면 좋겠다'싶은 지점까지 갑니다

아니, 할 수 있는 자가 할 수 있는만큼 하는 복수극이라면서 왜?

이런 영화를 굳이 볼 이유를 모르겠다, 주인공이 똘똘치 못한 것 같다, 왜 이렇게 혹은 이렇게까지 표현했는지 모르겠다는 평들도 보입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 주인공이 특별히 멍청하게 행동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우리보다 뛰어난 자가, 할 수 있는만큼 다 했는데도

여전히 영화의 꼴은 참혹하고 선혈은 낭자하고 그 과정은 멍청해보이는 것

저는 어쩌면 그게 이 영화가 의미하는 전부인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보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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