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씁니다.

원래 글제목은 <해리슨 포드 팔순 잔치에 3억불을 태운...> 뭐 이러고 쓰려다가 좀 그렇더군요.


영화는 재미가 없었습니다. 프롤로그는 딱 절반만 하면 될걸 너무 길더군요. 목매달리는거 빼고

그냥 기차 돌입부터 했으면 간결하고 좋았을텐데요. 파라마운트 산이 안보이는 것도 넘 섭섭했고요.


다음부터 액션이랄 것도 별로 없습니다. 그저 달리고 달리고, 아무 의미없이 사람들을 그냥 쏴죽입니다.

늙은 존스는 무기력하기 짝이 없습니다. 4편에서 무고하게 죽은 미군 병사들을 보며 어금니를 깨무는 결기조차

이번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상카라 스톤을 손에 넣었으니 왔던 길을 그대로 돌아가면 되는데 채찍 맞는 애들을 보고

짱돌 들고 덤비던 존스, 책을 불태우는 나치를 보고 저거 끝장을 내야겠어, 이러면서 표정이 확 바뀌던 그런 존스는

어디에도 없었다는 말입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평균 수명도 지금보다 짧던 시절, 1차 대전부터 굴러오던 몸이 어느 새

70세가 되었으니까요. 그는 지쳤습니다. 그나마 교수라도 해서 다행이지, 그냥 모험가였으면 진즉에 유물 쪼가리 끌어안은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겠지요.


헬레나는.....네, 안어울리는 배우였네요. 서로 서로 죄송합니다. 저는 보통 제 마음을 울리는 한두 장면만 있어도 그냥 넘어가는

편입니다. 3편의 앨리슨 두디요, 불타는 책을 보며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 초승달 계곡에서 습격을 해온 성배 수호단의 최후를 보고

대단히 복잡한 표정을 짓는 모습. 물론 다 스필버그의 연출이었겠지만 그 정도만 나왔어도 저는 만족했을 겁니다.

그걸 어떻게 무마해보려고 아역 부분을 넣은 것 같은데, 아들까지 죽은 마당에 생판 피도 안섞인 대녀가 무슨 대수랍니까.

그 아버지와의 인연을 따지면, 존스가 지금까지 그 정도 인연을 맺은 사람이 한 둘이었을까요.


독일애들은 그냥 실소가 나옵니다. 애초에 전 빠르게 달리는 기차 위에서 급수탑에 맞고 나가떨어진 우리 물리학 박사님이

살아 돌아온 것도 좀 신기했고요, 도대체 그 콧수염은 무슨 배짱으로 틈만 나면 총을 꺼내 드는지. 그리고 그 덩치 큰 친구는

뭐 <언차티드>라도 보고 만든 건가요. 원래는 하나 하나 정성들여 작살을 내야 하는데, 그냥 말도 안되게 웃기는 친구들이라 그냥

마지막도 다 웃음을 주면서 간건지 모르겠습니다. 


마지막에 아르키메데스는, 저는 순간 <허드슨 호크>의 악몽이 떠올랐습니다. 뭐 악몽까지는 아닌데요, <허드슨 호크>를 보면서

그래, 인디아나 존스는 아무나 만드는게 아니지, 이러면서 으쓱했었는데, 허드슨 호크랑 다빈치랑 함께 되살아난 느낌이랄까요.

<엘리미네이터>(1986)은 웃기기라도 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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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해리슨 포드와 인디아나 존스에게만 초점을 맞추면 이건 정말 감동을 주는 영화였습니다.

그러니까 1908년 미국을 떠나 본격적인 교육을 받고, 지옥같은 1차 대전을 겪고, 고학으로 시카고에서 박사까지 따고,

1930년대부터 터무니없는 모험을 겪다가 마침내 1957년 아내와 아들을 얻고 학장이 된 존스를 아는 사람이라면

다소 불만이 있더라도, 존스의 나중 모습이 궁금하지 않겠습니까? 이건 그냥 존스 영화가 아니라 마치 해리슨 포드

인생 자체를 보여주는 것도 같고, 거기에 평생 동안 영화는 영화, 내 인생은 내 인생 이러면서 세상 쏘쿨한 모습을 보여주던

포드가 요즘 들어 눈물이 많아진 걸 보니 덩달아 눈물이 흐르더라 이겁니다. 아예 편안히 자연사해서 관짝에 못밖는 

모습까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팬으로서요.

그러니까 영화를 보고나서 해리슨 포드 공로를 치하하며 기꺼이 3억달러를 태운 디즈니에게 이건 고맙다고 해야할지.

아니면 잔치 비용 청구서를, 충분히 자기들도 돈이 있으면서 순전히 농담으로 디즈니에게 떠넘긴 포드와 루카스와 스필버그를

보면서 웃어야 할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소니 돈으로 <후크>를 만들때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그 동안 캐슬린 케네디 욕을

했었는데, 사실은 디즈니에 심어놓은 세 사람의 진짜 친구?


노년의 존스를 보여주는 포드의 연기나, 장면 장면이 참 좋았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게 장르가 모험 액숀, 블록버스터 영화였던게

문제지요.  원래도 좋아하던 배우였지만 깊은 주름살과 함께 좋은 연기를 봤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매리언을 기품있게 그려준것도 고마웠습니다. 여배우를 세월이 오래 흐른뒤 같은 영화로 불러내는게 쉬운 일은 아니지요.

무엇보다 억지로 구색맞추려고 끌어낸 느낌이 아니었거든요. 존스에게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었기에 나왔다고 생각하니 더 좋았습니다. 

마지막 장면은 뭐...뉴욕 좋아하는 많은 감독들의 로코 장면 같기도 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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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인디아나 존스는 갔습니다. 해리슨 포드도...글쎄요 <1923>은 조금 더 계속되려나요.

저번에 댓글도 달았습니다면, 007같은 시리즈, 프랜차이즈로 만들어 주연도 바뀌고 감독도 바뀌고  

우리 재미있게 영화도 만들고 (영화 제작 자체를 좋아하고 사랑하던 여러 사람들이 1980년에 꿈꿨던거 말입니다)

돈도 벌고 그래보아요...했던 것이 하필 스필버그와 포드였던게 문제지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지만, 음식은 그냥저냥 배 채우고 소화 안되는 부페였고, 

그래도 잔치 주인공은 잘 봤습니다. 팔순 잔치답게 결혼식하고는 다른 감동도 있었고요. 

부럽습니다. 좋은 인생 사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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