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일기...(월요일)

2019.09.30 06:03

안유미 조회 수:403


 1.하아...새벽거리는 이제 좀 춥네요. 초등학생 때가 떠오르네요. 그땐 가출하면 밤을 꼬박 샌뒤에 새벽에 목욕탕에 가곤 했어요. 


 지금을 사는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9시만 지나면 도시 전체가 셧다운되듯 어두워졌거든요. 어디든 문을 닫고 불을 꺼버렸기 때문에 갈 곳이 없었죠. 너무 추워서 새벽 6시에 목욕탕이 열기를 기다리곤 했어요. 그나마도 목욕탕비 2천원이 있을 때의 얘기였지만.


 생각해보니 짜증나긴 하네요. 성장기에 그렇게 밖에서 노숙만 하지 않았으면 지금 키가 10센치는 더 클텐데. 초등학교 때는 1년 365일 중에 180일정도는 밖에서 잔 것 같아요.



 2.어쨌든 피트니스는 6시부터 문을 여니...일단은 들어왔어요. 새벽 5시 45분부터 2호선이 다니니까 그걸 타고 가면 되겠죠.



 3.친구에게 핀잔을 듣곤 해요. 너는 돈을 써봤자 어차피 본체는 안 건드리고 본체에서 나온 돈만 쓰지 않냐고요. 그리고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핀잔이 뒤따라오죠. 그래야 인생이 피폐해지지 않는다고 말이죠.


 하긴 그렇거든요. 전전긍긍하며 돈을 안 쓰고 있어봐야 사실 돈을 넘겨줄 사람도 없단 말이죠.



 4.휴.



 5.하지만 나는 내가 언제 죽을지 몰라요. 내가 정확히 언제 죽는지 알면 그것에 맞춰서 본체의 돈을 마구 쓸텐데...언제 죽을지 알 수 없으니 돈을 쓸 수가 없단말이죠. 내가 죽는 건 100년 뒤일 수도 있고 의외로 꽤 빠를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나 내가 언제 죽는지 모르는 이상, 돈은 쓸 수가 없는거예요. 본체의 돈은 말이죠.



 6.언젠가 듀게에 썼었죠. 돈이 없으면 밖에 나가서 편의점 알바를 해야 하는 게 무섭다고요. 왜냐면 생각해보면 나는 아무런 대비도 안 했거든요. 고부가가치를 발생시키는 기술은 커녕, 몸을 쓰는 일도 못 하고 하다못해 기본적인 알바를 해본 경험도 없어요. 


 그리고 그런 것들을 배울 기회도 이젠 사라져 버렸죠. 이젠 신입도...늦깎이 신입도 될 수 없는 나이가 되었어요. 어디에 가도 내 나이면 이제 숙련된 노동자이길 기대하겠죠. 



 7.몇년 전에는 편의점 알바를 해야 하는 상황에 몰리는 게 공포였다면, 지금은 이거예요. 편의점 알바를 시켜달라고 애원해봤자 아무도 나를 안 써 줄거라는 거죠. 편의점 알바를 해야 하는 상황이 무서운 게 아니라, 편의점 알바도 못 하게 되어버린 상황이 무서운 일이예요.


 그래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물어보곤 해요. 무리한 도박을 감행하다가 만약 몽땅 잃어버리면 나를 좀 거둬 줄 수 있냐라고요. 그야 친한 시기에는 얼마든지 그러겠다고 하지만...사실 거짓말로 대답하는 녀석이 나쁜 게 아닌거예요. 어른이 되어서 이런 걸 물어보는 녀석이 멍청한거죠. 생각해 보면요.



 8.요전에는 이런 꿈도 꿨어요. 도박으로 돈을 다 잃고, 여자친구한테 얹혀서 사는 꿈이요. 아침에 출근하는 여자친구를 배웅하고, 여자친구한테 만원짜리 두장 용돈으로 받아서 점심엔 맛있는 것도 사먹고...괜히 강남신세계 2층을 돌아다니며 살 수도 없는 옷들을 아이쇼핑하면서 휘적거리고, 돌아와서 청소 좀 하고 저녁밥상좀 차리고 그러는 꿈이요. 


 그리고 여자친구가 돌아오면, 소설 공모전에 당선되어서 상금 1억을 받으면 1등석 비행기를 태워서 여자친구를 여행보내주겠단 소리를 하다가 잠들곤 하며 살고 있었다죠. 하지만 이런 꿈은 현실적이지 않죠. 일단 여자친구가 없으니까요.



 9.전에 썼듯이 나는 풍족하게 살 때는 쉽게 자살할 수 있어요. 자살을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인생을 살고 있다면 나는 얼마든지 자살할 수 있거든요.


 그러나 문제는 자살해야만 하는 상황에 몰려버리면, 나같은 인간은 오히려 자살을 못한다는 거죠. 궁지에 몰리고 이젠 자살을 할수밖에 없다...는 상황에 처하면 자살을 하기 싫어질 거니까요. 그러니까 자살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는 몰리지 않는 게 좋겠죠. 왜냐면 구질구질해지니까요.


 부정적인 뜻으로 말한 건 아니예요. 난 언제든 자살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오늘은 자살하지 않을 거니까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할 수 있는 일을 굳이 오늘 할 필요가 없잖아요?





 --------------------------------------------------------------------





 이렇게 일기를 쓰고 나니 새벽 여섯 시가 됐네요. 사우나까지 가서 목욕한 뒤에 수면실에서 자면 좋을텐데...이젠 어째 나가기가 귀찮아요. 


 하지만 역시 가야 할 것 같아요. 2시간정도 잔 뒤에 무슨 일이 있어도 9시전엔 일어나서 출근해야 하거든요. 사우나 직원에게 깨워달라고 말해놓고 자야 하기 때문에 나가야겠어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9158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7838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8031
109895 [회사바낭] 찬찬히 검토해 볼게요. [3] 가라 2019.10.01 682
109894 [박형준 칼럼] 누가 멈춰야 하는가? [15] Joseph 2019.10.01 941
109893 [속보] 이낙연 "대통령 지시에 천천히 검토하겠단 반응 전례없어" [41] an_anonymous_user 2019.10.01 1336
109892 [넷플릭스바낭] 간만에 망작을 골라봤습니다. '너브'를 아시는지 [6] 로이배티 2019.10.01 667
109891 중국 70주년 중국군 열병식을 보고있자니 [2] 가끔영화 2019.10.01 418
109890 예언자 안철수님이 오십니다. [11] 왜냐하면 2019.10.01 958
109889 이런저런 일기...(선택지, 마약, 고기) [1] 안유미 2019.10.01 426
109888 [스포일러] 애드 아스트라, 다운튼 애비 [10] 겨자 2019.10.01 746
109887 어휴~ 검찰놈들 이거 알고보니 그지새X들이었네요 [5] ssoboo 2019.10.01 978
109886 서초동 집회 100만, 200만이 사실이 아닌 이유 [5] 도야지 2019.10.01 914
109885 오늘의 Zegna 카탈로그 (스압) [1] 파워오브스누피커피 2019.10.01 270
109884 별로 정치에 관심없는 개인의 정치적 지향 [22] 어떤달 2019.10.01 961
109883 82년생 김지영 영화 예고편 [2] eltee 2019.10.01 559
109882 우린 링반데룽(윤형방황) 중~ [17] 어디로갈까 2019.10.01 829
109881 강변호텔 보면서 맨날 누우래 그러니 [2] 가끔영화 2019.09.30 686
109880 Inside Bill's Brain: Decoding Bill Gates (인사이드 빌 게이츠, netflix) 추천합니다 [2] Joseph 2019.09.30 530
109879 유승민, "선거법 부결시키겠다" [10] 타락씨 2019.09.30 1148
109878 홍정욱 딸 [21] 칼리토 2019.09.30 2544
109877 [넷플릭스바낭] 여러분 호러영화 '오큘러스' 보세요 '오큘러스' [18] 로이배티 2019.09.30 1049
109876 아이들과 대화하는 방법 [2] 칼리토 2019.09.30 751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