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는 없습니다.



 - 정확한 배경은 모르겠지만 83년 영화이니 대략 그 때 쯤이겠죠. B급 호러에 흔히 나오는 평범한 미국 마을이 배경이고 주인공은 그 동네 왕따 청년 '어니'입니다. 특별한 문제는 없지만 비교적 엄하고 과보호 축에 속하는 부모 아래에서 말 잘 듣는 착한 너드(...)로 자라났으나 학교의 불량배들이 이 녀석을 가만히 둘 리 없고. 미식 축구부에서 잘 나가는 미남 친구 데니스가 곁에서 지켜주지만 그래도 사는 게 별로 재밌지는 않습니다.

 어느 날 데니스의 차를 얻어 타고 집에 가던 길에 길바닥에 판다고 내놓은 폐차 상태 (시동이 걸리고 움직여서 깜짝 놀랐습니다ㅋㅋ)의 빨간 옛날 차를 보고 홀딱 반해 버린 어니는 친구의 만류도 뿌리치고 그걸 말도 안 되는 바가지 가격에 구입해서는 직접 고쳐본다고 난리를 치는데, 차를 다 고친 후로는 갑자기 세련된 멋쟁이이자 성격 파탄자가 되어 가족도 친구도 멀리하게 되고, 그런 친구가 넘나 이상했던 데니스는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그 차의 전 주인 일가가 모두 수상쩍게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러던 와중에 학교 불량배들은 어니를 괴롭히기 위해 어니의 차에 테러를...



 - 그러니까 또 미국 고딩들 문화 이야기입니다. 그 중에서도 남학생들요.

 미국 고딩들 문화에 대해서는 수많은 영화, 드라마들로 학습을 당해서 어느 정도 알고는 있지만 사실 그게 썩 그리 와닿지는 않아요. 어쨌거나 남의 나라 문화니까요. 직접 겪어 보지도 못한 제가 그런 걸 다 이해하는 게 이상하겠죠. 그래도 그냥 영화로 보고 즐기는 덴 충분하니까...

 

 그런데 문제는 이 영화가 그러한 미국 고딩들 문화 중에서도 제가 가장 이해할 수 없는 분야를 다룬다는 점입니다. 자동차에 대한 로망과 집착이요.

 옛날 옛적 국민(...) 학생 시절에야 뭐 저도 남들처럼 람보르기니 카운타크 장난감 같은 물건을 바라보며 하악거렸던 적이 있지만 금방 끝났어요. 그 후론 자동차에 아무 관심도 애정이 없는 사람이 되어버려서. 직접 몰고 다니는 제 차도 그냥 친척분의 권유로 중고로 구입한 물건이고 세차도 잘 안 하고 관리도 안 해서 식구에게 혼나고 가끔 태우는 지인들의 놀라움을 사고 그렇습니다. 나중에 갖고 싶은 차도 없어요. 관심이 없어서 찾아 보지도 않으니 아는 것도 없고 그러니 원하는 것도 없고 그렇죠.

 이런 제가 뭐 간지나는 차를 타고 친구 & 여자들에게 어필하고 싶고. 차에다 이름까지 붙이고서 직접 닦고 조이고 기름 칠 정도로 애착을 갖고... 뭐 이러는 고딩을 소재로 한 영화를 재밌게 볼 수 있을리가요.



 - 그리고 이게 자동차란 말입니다. 결국 이 유령 들린 자동차가 공포감을 조성해야 하는데, 손도 발도 없고 표정도 없으며 덩치가 커서 집 같은 좁은 공간엔 들어가지도 못 하는 자동차가 악역이다 보니 별로 그렇게 긴장감이 생기거나 무섭지가 않습니다. 또 어떻게든 이 자동차가 사람을 위협해야 하다 보니 억지 연출도 많아요. 여러분들 같으면 자동차에게 쫓기는 상황이면 일단 어떻게 하겠습니까. 차가 못 가는 곳으로 가버리면 되잖아요. 그런데 이 영화에서 그런 당연한 선택을 하는 사람은 딱 한 명 뿐인데 그마저도 애매한 곳으로 도망을 쳐서...



 - 차라리 코미디에 가까운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대놓고 코믹한 장면을 짧게 한 번 보여주는데 그 쪽이 훨씬 어울렸어요. 물론 원작 소설도 영화도 궁서체로 진지한 호러입니다만. 코미디로 만드는 편이 더 설득력 있고 재밌었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하고 싶은 말을 라디오 음악으로 대신하는 자동차이니, 그것도 30년전 음악들만 틀어대는 할매 자동차이니 드립 꺼리도 무궁무진할 듯 한데(...)



 - 결론을 내자면.

 별로였습니다. 전혀 무섭지도 않고 그렇게 긴장되지도 않고 결정적으로 그냥 이야기 자체가 별로 저의 흥미를 못 끌고.

 그래도 원작자와 감독 능력치가 있다 보니 특별히 지루하고 재미 없지는 않아요. 자동차가 본격적으로 악행을 지르는 액션 장면들을 보면 연출도 꽤 괜찮아서 볼만한 장면도 몇 개는 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가장 큰 의미는 그냥 수십년 밀린 숙제를 끝낸 뿌듯함 정도였고 별로 남들에게 추천하고 싶진 않네요.

 그럼 이제 남은 숙제는... '쿠조'겠네요. 이건 보려면 어디를 찾아봐야할지...




 - 사족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불쾌하고 호러스런 장면은 초반의 학교 폭력 장면이었네요. 이런 장면은 봐도 봐도 적응이 되질 않습니다.



 - 그리고 가만 보면 크리스틴이 그렇게 나쁜 놈이 아닐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사건의 결말만 요약판으로 전해지는 '이전 소유자 가족의 비극'은 접어 두고 영화 안에서의 내용만 보면 버림받은 자기를 고쳐주고 사랑해준 새 주인에게 헌신(!)하는 캐릭터일 뿐인지라(...)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34901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54233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64666
110331 독특한 캐릭터가 등장하는 넷플릭스 수사드라마 ‘마르첼라’ [8] woxn3 2019.11.08 1129
110330 겨울동네 입동에 왔습니다 [1] 가끔영화 2019.11.08 342
110329 두 마을의 이야기 - 김동인의 [잡초] [1] Joseph 2019.11.07 370
110328 [넷플릭스 후기 요청?]빌어먹을 세상따위 시즌2 [5] 쏘맥 2019.11.07 711
110327 정부 "외고·자사고 2025년 일반고 전환"..고교 서열화 해체 [19] Joseph 2019.11.07 1316
110326 오늘의 영화 전단지 [5] 파워오브스누피커피 2019.11.07 346
110325 [넷플릭스바낭]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 시즌8 - 아포칼립스... 를 다 봤습니다 [9] 로이배티 2019.11.07 2659
110324 러브크래프트의 <우주에서 온 색채> 영화가 나오는군요 [7] 부기우기 2019.11.07 698
110323 떡밥의 회수율 - 드라마 비밀의 숲 뒤늦게 보고나니... [2] DH 2019.11.07 858
110322 잠깐 뒷담화 [13] 산호초2010 2019.11.07 971
110321 빛의 순간을 지나며 [9] 어디로갈까 2019.11.07 760
110320 개인적으로 한국 가요 최고로 꼽는 곡 [6] 가끔영화 2019.11.07 985
110319 향수는 향수일 뿐 [1] 메피스토 2019.11.06 521
110318 청(靑)색은 붉은색이다...? ^^ [10] 지나가다가 2019.11.06 806
110317 벌새 [4] Sonny 2019.11.06 744
110316 요즘 산 책과 친구의 드론비행 [2] 예정수 2019.11.06 467
110315 이런저런 일기...(협상장) [3] 안유미 2019.11.06 624
110314 잘 있니 보조개 소년? [6] 하마사탕 2019.11.06 764
110313 [바낭] 듀게가 좀 활발해지고 있는 것 같지 않으세요? [8] OPENSTUDIO 2019.11.06 1003
110312 롯데뮤지엄 스누피전은 가지 마시기를 [16] 산호초2010 2019.11.06 1470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