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07 23:57
- 개인적으로 이건 영화 특성상 스포일러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마지막에 둘이 이혼을 하게될지 말게 될지를 적지 않고는 글을 쓸 수가 없네요. 그래서 딱 그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스포일러 방지용 여백 만드는 김에 공식 예고편도 넣어 보구요.
- 먼저 블랙 위도우를 소개하는 카일로 렌의 나레이션으로 시작합니다. 다 칭찬이에요. 정말 멋진 사람이고 그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이 나레이션이 끝나면 블랙 위도우의 차례죠. 카일로 렌 역시 멋진 사람이고 둘은 진심으로 서로 사랑하나봐요. 그리고 이 나레이션이 끝나면... 이게 다 이혼 준비를 위해 담당자가 시킨 일이라는 게 밝혀지죠. 제목은 '결혼 이야기'인데, 내용은 '이혼 이야기'입니다.
재미도 없는 배우 농담은 그만두고, 남자는 '찰리' 여자는 '니콜'입니다. 원래 니콜은 헐리웃에서 막 뜨기 시작한 LA 토박이 배우였으나 연극 연출가 찰리에게 반해서 다 때려치우고 결혼해서 뉴욕으로 이사해 와서 예쁜 아들(정말로 예쁘게 생겼습니다!!!) 하나 낳고 남편 연극에서 주연을 맡으며 살고 있었어요. 그런데... 음... 뭐 특별한 건 없습니다. 그냥저냥 잘 살다가 어느 순간 '아, 이게 잘 사는 게 아니었나봐'라는 걸 깨닫고 이혼을 준비하기 시작하게 된 거죠. 줄거리 소개는 여기까지요.
- 한국인으로서 미국 영화들을 보다보면 늘 '쟤들이 실제로 저래?' 라는 생각이 드는 문화적 차이들이 꽤 있죠. 개인적으로 그 중에서 보면 볼 때마다 신기한 것 하나가 바로 이혼입니다. 이혼을 결정하고 또 진행하는 과정도 신기하고 이혼 후 자식을 중심으로 서로 얽히며 살아가는 모습도 신기하고 그래요. 어찌보면 한국보다도 '가족'이란 걸 훨씬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구요. 또 어찌보면 '자식 때문에 참고 산다!!'는 한국 사람들보다 이혼은 쉽게 하면서도 반면에 훨씬 자식을 배려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암튼 신기합니다.
이 영화의 찰리와 니콜을 보면서도 마찬가지로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혼 과정을 밟고 있고 서로 욕하고 싸우고 증오하지만 동시에 여전히 사랑하고 있고 그렇다는 사실을 서로에게 숨기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우린 함께 살 사이는 아닌가벼'라고 판단이 되니 그냥 제 갈 길 가는 거죠. 하지만 결국 자식을 중심으로 평생을 얽혀서 살아가게 될 거구요. 음. 이렇게 적으면서 생각해보니 다시 한 번 더 신기하네요.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그런 부분 때문에 그리 크게 감정 이입을 하며 보지는 못 했습니다. 그런 '미국식 이혼'은 영화로만 배웠지 아무래도 남의 나라 일이란 느낌이라.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가정을 꾸리고 잘 살다가 일상에 지쳐서 감정이 옅어지고, 그러다가 서로 실수도 하고, 서로를 잘 이해 못 하게 되면서 균열이 커지고, 그러면서 서로 상처주고... 이런 보편적인 이야기를 하는 영화이고 그런 면에서 감정 이입할 부분은 충분히 많습니다만. 그래도 어디까지나 미국적인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 생각도 났어요. 아들 하나를 둔 부부가 이혼하면서 법적 다툼을 벌인다는 기본 요소를 제외하곤 전혀 다른 이야기죠. 하지만 또 어찌보면 딱 40년(끄악... 세월이여. ㅠㅜ)의 차이를 두고 진행된 결혼과 이혼, 남성과 여성의 역할에 대한 미국인들의 인식 변화를 잘 보여주는 영화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는 그냥 대놓고 눈물 짜내는 멜로드라마잖아요. 이혼은 끔찍한 비극이고 그 안에 얽힌 모두의 삶이 비극이 되는 일이었죠. 하지만 '결혼 이야기'에서의 이혼은 뭐랄까... 그냥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겪게 될 수도 있는 삶의 한 과정 같은 느낌으로 그려집니다. 피곤하고 힘들지만 잘 극복해낸다면 길게 볼 때 그리 나쁠 것도 없고, 또 잘 하면 인간적으로 성숙해질 수도 있는 뭐 그런 경험이요.
- 종종 리처드 링클레이터 영화를 보는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삶을 관조하는 듯한 시선도 그렇고, 큰 의미 없는 수다 장면들의 연속을 통해 등장 인물들의 변화와 성숙을 차분하게 보여주는 느낌도 그렇구요. 뭐 이게 리처트 링클레이터의 전매 특허 같은 건 아니지만 제가 본 영화가 그리 많지 않아서 그래요. ㅋㅋㅋ
- 사실 무려 2019년에 나온 영화이기도 하고, 배우들의 면면도 있고 하니 부부 중 어느 한 쪽의 편을 대놓고 드는 이야기는 아닐 거라고 짐작을 하고 봤죠. 그 예상이 아주 틀리지는 않았는데... 그래도 상황 설정상 '남자가 잘못했네'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내용입니다. 근데 동시에 아주 은근슬쩍 남자 쪽에 감정 이입을 하는 이야기이기도 해요. 볼 때는 전혀 그런 생각을 안 했는데 다 보고 나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렇습니다. 따지고 보면 그 난리통을 겪은 후 철이 드는 것도 남자 쪽이고. 초반엔 여자 쪽 입장을 많이 보여주는 것 같지만 정작 중요한 후반부로 가면 남자쪽의 비중이 확 커지거든요.
하지만 걱정은 마시길. 그 와중에 감독이 그래도 균형을 열심히 잘 잡아주기도 하고, 또 애초에 누구 한 쪽을 비난하려는 이야기도 아니거든요.
- 본격 이혼 전문 변호사들 욕하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중반부에는 정말로 '이거 미국 이혼 제도의 현실을 비판하려는 영화였어?'라는 생각도 잠깐 했네요. ㅋㅋㅋ 근데 그 장면들도 재미있어요. 로라 던과 레이 리오타가 양측의 변호사 역할로 재밌는 연기를 보여주거든요.
- LA와 뉴욕을 비교, 대조하는 대화의 비중이 좀 희한할 정도로 높습니다. ㅋㅋ 남자랑 여자가 계속 뉴욕이 좋다 엘에이가 좋다 아들은 뉴욕에서 살아야한다 엘에이에서 살아야 한다... 이러면서 싸우거든요. 영화 속 장면도 두 곳을 계속 오가구요. 그러면서 두 동네의 대조적인 풍광과 문화도 조금씩 보여주는 게 재밌더군요. 그런데 계속계속 집요하게 반복돼서 나중엔 결국 저를 피식 웃게 만들었던 '엘에이는 공간도 넓고' 드립을 보면 감독은 아무래도 뉴욕편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까지 적고 나서 검색해보니 감독이 뉴욕주 출신이네요. 그럼 그렇지.
- 아담 드라이버는 정말 덩치가 크더군요. 스칼렛 요한슨과의 투샷이 잡힐 때마다 '우와 진짜 크네!!'라는 생각을 계속 했습니다. 찾아보니 키도 189cm나 되는데 또 어깨가 엄청 넓어서... 음. 근데 자꾸만 카일로 렌의 상의탈의 배바지 짤이 생각납니다;;;
- '믿을 수 없는 이야기'의 교회 다니는 형사님이 여기에도 나와요. 니콜의 언니 역할인데 역시 비중이 크지는 않습니다만. 대략 10초 정도 나왔던 '버드맨'에 비하면야...
- 이쯤에서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한때 사랑했던 이들이 헤어지는 과정에서 서로 상처 주고 상처 입고 하면서 성숙해가는 과정을 그리는 '인생만사 다 그렇지 뭐' 류의 이야기에요.
이야기에 msg를 거의 첨가하지 않고 차분하게 관조하는 시선을 유지하지만 또 웃길 때는 정말로 웃기고 슬플 때는 가슴 먹먹해지고 그렇습니다.
연출도 좋고 배우들 연기도 좋고 재미도 있고 불쾌하게 자극적인 부분도 없으면서 보고 나면 생각할 꺼리도 주고... 게다가 어차피 이제 넷플릭스 컨텐츠이니 한 번 시도해보지 않을 이유가 없는 작품입니다.
시간 나실 때 한 번 보세요. 전 아주 만족스러웠습니다.
2019.12.08 00:28
2019.12.08 10:04
2019.12.08 17:12
전 그 배바지를 평생 잊지 못 할 것 같습니다...
2019.12.08 10:05
2019.12.08 17:12
배우들 다 잘 해요. 기대에 어긋나지 않을 겁니다. 하하.
2019.12.08 10:06
2019.12.08 17:14
음... 그런 미쿡 현지 디테일이 또 있었군요. 하하. 법정 다툼이 좀 더 길게 나올 줄 알았는데 그냥 변호사들이랑 대화로 주인공들 내적 갈등만 적절히 보여주고 넘어가는 게 의외이면서도 맘에 들었어요. 물론 로라 던은 꽤 긴 페미니즘 연설 찬스를 부여받았지만요. ㅋㅋ
2019.12.08 18:07
그러고보니 로라던이 스타워즈 라제에도 나왔었네요. 캐리 피셔와의 투샷이 보기 좋았던 기억이 나네요.
2019.12.09 10:34
전 트윈 픽스 시즌 3을 달린 후로 로라 던을 보면 트윈 픽스 캐릭터만 생각납니다. 기괴함. ㅋㅋㅋ
2019.12.09 09:59
2019.12.09 10:36
대세는 크로스오버죠!
2019.12.09 12:42
저는 이상하게 오프닝부터 누가 더 잘못인가 딱 정해놓고 시작하는 것 같더라구요. 찰리가 말하는 니콜의 장점은 확연히 다 장점인데 니콜이 말하는 찰리의 장점은 몇개는 그럴듯하다가 듣다보니 '응? 이게 장점이여? 오히려 멕이려는 건가?' 이런 생각이 ㅋㅋ
뭐랄까 극이 진행될수록 찰리쪽에 점점 더 감정을 이입하지만 그래도 잘잘못을 따지면 내가 더 잘못했다 이런 건 확실하게 정해놓은 것 같아요. 니콜은 잘못..했다기보다 LA로 아들 학교까지 옮겨놓고 기습적으로 소송 날려버린게 살짝 치사했죠.
이혼한 부모님 밑에서 자랐고 본인도 이혼 경력이 있어서인지 커리어 내내 커플, 부부의 위기, 이별, 이혼 등을 다뤄왔던 노아 바움백의 내공이 이 작품에서 폭발한 것 같아요. 이번엔 남자감독 - 여배우의 이혼이야기이니 완전히 본인과 제니퍼 제이슨 리네요.
2019.12.09 12:52
저 위에 hei님 글에도 댓글로 단 얘기지만 이게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였다니 그냥 반성문이었네요. ㅋㅋ
말씀대로 니콜이 좀 영리하게 선공을 날린 게 있긴 하지만 어쨌든 (솔직한 대화가 없었다는 쌍방 과실성 요인을 빼고 나면) 이혼의 책임은 거의 대부분 남자 쪽에 있다는 식이었으니까요.
그러고보니 주머니칼 장면에서 정말 크게 웃었는데 설마 그것도 경험을 반영한 건 아니겠죠. ㅋㅋ
2019.12.09 15:54
그냥 지어냈다기에는 굉장히 오리지널(?)한 일화이긴하죠. 저에게는 울지도 웃지도 못하게하는 씬이었어요. 기껏 마지막에 뭔가 니콜과의 생활에서 재밌고 긍정적인게 생각났다고 신나게 시범까지 보이다가 그렇게된게 웃긴데 너무 피를 많이 흘리니까 당황스럽더라구요 그와중에 방문한 사람 문 못여는 것도 미치겠고 ㅋㅋ 화룡점정은 마지막에 우유 한방울 흘리는 아들 ㅋㅋㅋ
2019.12.09 15:57
또 한가지 재밌는게 전부인인 제니퍼 제이슨 리가 넷플릭스에서 제작, 주연을 맡은 시리즈 별나도 괜찮아(Atypical)에서 본인도 부부생활에 문제를 겪는 아내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죠.
이 영화 평이 아주 좋더군요. 요건 볼거에요 ㅎㅎ 두 배우 연기도 기대되구요. 특히 아담 드라이버는 스타워즈 때문인지 왠지 자꾸 젖은 미역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이 이미지를 상쇄시키고 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