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28 11:50
(제목은 낚시질입니다. 해죽~ 아시는 분은 알고 모르시는 분은 모를 사제인 친구가 상경할 일이 있어서 늦은 점심 약속이 잡혀 있습니다. 약속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은 한눈 파는 짓을 못하는 성향이라 듀게에 문질문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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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 공간의 의미를 처음으로 가르친 건 뮌헨의 <성모교회>입니다. 열살 무렵 겨울, 그곳에서 노래로 행하는 저녁기도(Vesper)를 들은 적이 있어요. <그리고 천사가 그녀에게 말하길 und der Engel sprach zu ihm...>이라는 구절이 반복되는 노래였습니다. 아마도 천사가 마리아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하는 성탄 오라토리오였던 것 같아요. 천사들의 파트를 맡은 성가대원들은 제 뒷쪽 높은 곳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그 소리는 우주를 한 바퀴 돌아오는 듯 아련하고 신비로웠습니다.
아득히 먼 곳이면서 동시에 듣는 이의 내면에 스며드는 듯 가깝고 선명한 느낌이 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지금도 건축과 음향학의 문외한이지만, 그때 어린 저는 '아, 저런 소리와 저런 감동의 울림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성당은 이만한 공간을 필요로 하는 거구나' 라고 느꼈더랬습니다. 울림이 성립되는 건 그러므로 '거리'에 의한 것이죠. 거기에서 비로소 세계의 크기가 생겨납니다.
천사들의 노래가 시공을 가로질러와 우리에게 닿습니다. 그 노래가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속삭여요. 모든 사람들이 언제나 듣고 싶어하는 말일 테죠. 그러니까 듣고 싶은 말일수록 우선 높이와 층계를 통한 '거리'가 있어야만 합니다. 간절한 아름다움은 그 거리를 통해서만 생겨날 수 있는 거라는 생각. 그러므로 아름다움은 '격절 隔絶'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 때문에 저는 이미 몇 번쯤 무릎을 꿇었던 것 같아요.
그러고는 무릎을 문지르며 일어나 다시 일어서는 기도를 바치곤 했을 겁니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거리가 있기에 아득한 아름다움이 서서히 다가온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 덕택에 아득한 거리가 생겨나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왜냐하면 '두려워하지 말라'는 아름다운 노래가 아니었다면, 저는 그것과의 거리나 공간 따위를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2019.09.28 11:57
2019.09.28 14:07
2019.09.28 21:49
신도 아니에요. 이 글의 어느 부분이 그런 착각을 하시게 했을까요....
2019.09.28 23:51
미사 볼 때 이야기인줄 알았죠.
그림 올리는데 주소는 여기 https://postimages.org/
2019.09.29 05:40
저도 이곳을 이용하는데 앙대요~
2019.09.29 12:22
2019.09.29 02:12
옛날 옛적에, 매일의 노동은 고되며 교회 가는 것 이외에는 다른 문화적인 경험을 할 일이 없었던 사람들에게, 교회 성가의 울림이 주는 정서적인 감화는 얼마나 큰 것이었을까를 가끔 상상해 봅니다. 그 성스럽고도 아름다운 체험에 신을 섬기는 마음이 저절로 우러나지 않았을지.. 그 시절 사람들에 비하면 거의 음향의 모든 것을 경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오늘날의 사람들도, 공간감과 사람의 목소리만으로 이루어진 그 정결한 아름다움에는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니까요. 송광사 새벽예불이라는 CD를 갖고 있는데, 염불을 듣다보면 가끔은 중세시대의 어느 교회에 와있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합니다. 아직 화성이 발달하기 전, 그레고리안 성가가 단선율로만 불리워지던 그 시절의 교회 말이지요.
2019.09.29 05:06
2019.10.01 01:04
2019.10.01 04:16
이 글을 읽노라니, 망각 속에 묻혀 있던 릴케의 <묘지기>라는 단편의 한 단락이 떠올랐어요.
혹시나 해서 검색해봤더니 e -book으로 올라온 게 있네요.
(릴케의 시보다는 단편들이 제 예민하기만 했던 감수성을 현명하게(?) 다잡는데 도움을 줬어요. - -)
"그녀는 죽기를 원했어. 삶이 아닌 다른 것을 원했지, 그녀 주위엔 언제나 너무 많은 사람이 있었는데 그녀는 혼자 있고 싶었던거야.
...... 그러나 결혼을 하자 그녀는 자신이 혼자라는 걸 알았어. 남편은 좋은 사람이었지. 둘은 사랑했으나 서로의 마음이 닿지 않았던 거야.
인간이란 서로 엄청나게 멀리 격절돼 있어. 서로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가장 멀리 격절돼 있는 거야. 그들은 자신이 가진 모든 걸 서로 상대방에게 던져주지. 그러나 주어지는 건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거든. 그것들이 둘 사이 어딘가에 떨어져서 산더미처럼 쌓이지. 서로를 보려고 해도, 또 가까이 가려 해도 결국은 그것이 장해가 되는 거야."
그가 제 집을 알림없이 방문했던 적이 있었죠. 문을 여는 순간 자동으로 "신부님. 두 발작만 물러서주시고 오분만 기다려주세요. 외출 준비하겠습니다. "라고 말하고 집에 들이지 않았던 걸 친구들에게 고자질 해서 아직도 제가 욕먹고 있습니다.
근데 제 집은 부모님도 일주일 전에 예약해야 방문할 수 있는 곳이라는 것~ ㅋ
사진을 붙이려니까 안 올라가네요. 두어 번 성공했는데 웬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