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24 09:57
- 스포일러는 없습니다.
- 어떤 시골 마을, 아이를 갖지 못 해 고민이던 부부 앞에 우주에서의 선물이 쿵 하고 떨어집니다. 한밤중에 정체불명의 우주선이 부부가 사는 외딴 집 앞 숲에 떨어지고 거기에 가 봤더니 정확한 맞춤형 비주얼을 갖춘 금발 푸른 눈의 백인 남자 아기가 포대기에 싸여 있었거든요. '이거슨 하늘의 선물!!!' 이라고 생각한 부부는 우주선을 숨겨 놓고 아기를 줍줍하여 애지중지 열심히 키우고, 똑똑하고 착하게 자라난 소년과 셋이서 행복한 가정을 꾸려 살게 되는데 사춘기쯤 되고 나니 이 놈의 행동이 점점 이상해집니다. 사춘기가 다 그렇지 뭐~ 하고 넘겨 보려하지만 그럴 수 있는 수준을 순식간에 넘겨 버리며 어느샌가 이 작은 마을에 피바람이 불기 시작하는데...
- 이 영화에 대한 소감이나 홍보 자료 같은 걸 조금이라도 읽어보셨음 모두 아시겠지만 한 마디로 '수퍼맨 기원담의 빌런 버전'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장르가 호러에요. 딱 여기까지만 이야기하면 영화의 모든 것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 정말 간단한 발상에서 시작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죠.
그 아이디어는 꽤 효과적입니다. 아이디어 자체가 심플하면서 나름 흥미롭기도 하거니와, 이야기를 짜기도 쉽거든요. 그냥 요즘 세상엔 영화 좀 보는 사람이면 누구나 전문가 행세를 할 수 있는 '수퍼히어로 기원담'에다가 주인공이 싸이코패스 살인마라는 설정을 넣고 대충 막 굴리면 비교적 신선하다고 우길 수 있는 이야기가 완성이 되니까요.
물론 '21아이덴티티' 처럼 이 분야를 먼저 판 영화가 없는 건 아니지만 '더 보이' 쪽은 훨씬 본격적인 히어로물 스타일이라는 차별점이 있습니다. 위에서 말 했듯이 구체적으로 '수퍼맨'이라는 유명 히어로의 이야기를 그대로 차용하고 있기 때문에 장르가 호러임에도 불구하고 본격 히어로물의 향기가 진동을 하죠. '21아이덴티티'는 사실 어떻게봐도 히어로물의 구성은 아니었잖아요.
- 다만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
일단 이야기를 너무 안이하게 짰어요. 주인공이 본격적으로 본색을 드러내는데 대략 30분 남짓 정도 걸리는데 이후로 거의 한 시간의 내용은 그저 '그래서 다 죽임'이라는 것 밖에 없어요. 살짝 꼬아준다든가 해서 보는 사람들이 예측을 비껴가는 부분이 아예 없어서 중반 이후로는 그냥 심드렁하게 보게 되더군요.
그리고 아이디어의 타이밍이 좀 애매했습니다. 확인해보니 이 영화가 개봉한지 딱 두 달만에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의 '더 보이즈'가 공개되었더군요. 상당히 닮은 소재를 다루고 있는데 거의 모든 면에서 '더 보이즈'가 낫습니다. 하다못해 이야기의 막장성과 잔혹성 면에서도 '더 보이즈'의 승리. 그래도 이 영화쪽이 먼저 나오긴 했지만 어차피 지금까지 둘 다 안 보신 분이라면...
마지막으로 캐릭터가 너무 얕고 드라마가 너무 없습니다. 애지중지 키운 아이가 지구를 정복하러온 외계의 싸이코패스 살인마라니!! 라는 부모의 충격도, 그동안 착하게 살다가 갑자기 잔혹한 충동에 흔들리는 소년의 고뇌도 설정으로만 존재할 뿐 거의 와닿게 묘사가 되지 않아요. 짧은 런닝 타임 동안 그저 '싸이코패스 살인광 수퍼맨!'이라는 공식대로 착착 진행시키면서 시체들 전시하느라 바빠서 드라마에 신경을 못 쓴 거죠. 그래서 클라이막스의 몇몇 장면들은 설정상의 그 무거움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 합니다.
- 좋은 점이라면 뭐 일단 벌써 대여섯번쯤 이야기한 설정의 매력이겠죠. 건전하고 즐거운 디즈니-마블 히어로물들에 대비되는 별미 정도로 가볍게 한 번 즐겨볼만은 합니다.
그리고... 좀 쌩뚱맞지만 - 그리고 이걸 장점이라고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 고어씬들이 나름 참신한 것들이 조금 있습니다. 슬래셔 무비의 사람 토막 놀이를 즐기시는 분들이라면 큰 기대 없이 한 번 보실만 할 거에요. 전 그런 걸 안 좋아해서 으으으으으 몸을 비틀며 봤지만요. ㅋㅋ
- 결론은 이렇습니다.
'더 보이즈'를 아직 안 보셨고 '데드풀'이 너무 순한 맛이어서 아쉬웠던 히어로물 팬이시라면 가볍게 한 번 보실만 해요.
바로 위에서 말했듯이 슬래셔/고어물 즐겨 보시는 분들이라면 그냥 무난하게 보실만 할 거구요.
호러물로서도 딱히 나쁘진 않습니다. 주인공 각성 초기의 몇몇 장면들은 상당히 긴장되는 느낌을 주기도 하거든요.
하지만 전체적으로 좀 나태하고 느슨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소재와 컨셉이 땡긴다면 안 보실 이유도 없지만 큰 기대는 마시길.
- 주인공의 소년의 캐스팅이 상당히 좋았어요. 카리스마 같은 건 약에 쓸래도 없지만 뭔가 평범한 인상에 순해 보이면서도 싸이코스럽게 위협적인 느낌도 잘 살더라구요. 다른 출연작이 뭐가 있나 하고 찾아봤더니 무려 '어벤져스: 엔드 게임'이 뙇!!! 개미남 아저씨의 어린 시절로 아주 잠깐 나왔다나봐요. 전 솔직히 기억이 안 납니다(...)
- 내용이 내용이다 보니 근래에 본 어떤 영화 생각이 문득 났는데 제 취향엔 그 영화 쪽이 훨씬 나았어요. 영화 제목은 말 못합니다. 하면 안 돼요. ㅋㅋㅋ
- 소년의 엄마 역으로 엘리자베스 뱅크스가 출연합니다. 이 분이 어느새 엄마 역할이 어울리는 나이가... 라고 생각하고 찾아보니 애초에 저보다 나이가 많으시네요. 이런;;
그리고 이미 10년 전에 젊은 엄마 역으로 찍은 영화가 있더라구요. '장화 홍련'의 헐리웃판에 새엄마 역으로 나왔다길래 내친 김에 그 영화도 봤는데... 그 얘긴 나중에 하죠.
- 듀게의 많은 분들이 이 영화를 볼까? 하다가도 피해가시게 될 이름 하나가 크레딧에 박혀 있습니다. 제임스 건이 프로듀서로 참여했어요.
2019.11.24 12:04
2019.11.24 12:22
2019.11.24 12:05
2019.11.24 12:23
2019.11.24 12:24
부모가 어떻게 선택을 잘했으면 개화시킬 여지가 약간이라도 있었다던가 그런 장치가 있었으면 싶었네요. 이건 뭐 도저히 어쩔 수 없이 정해진 운명의 데스티니를 따라가서 다 죽임ㅋ 이렇게 되다보니 저도 언급하신대로 그냥 후반부는 별 감정없이 지켜보게 되더라구요. 그냥 한 번 봐볼만은 했습니다만 슈퍼맨의 빌런화라는 간단한 일회성 아이디어로 낭비된거 같아서 아쉽네요. 좀 더 야심과 능력이 있는 각본가가 나섰으면 어땠을까 싶은.. 각본 쓴 사람이 제임스 건 동생인가 그렇더라구요. 그래서 제임스 건이 프로듀서로 참여했겠죠.
주인공 소년은 엔드게임에서 처음에 헐크가 만든 기계로 앤트맨이 아기, 노인, 소년 등으로 변하는 장면에서 아주 잠깐 나옵니다. 나타샤가 "저거 스캇 맞아?" 하니까 "그래 나 스캇이야!" 라고 대사도 하나 쳤었죠.
2019.11.24 14:36
맞아요. 뻔한 트릭이라고 해도 당연히 뭔가 개심(?)의 여지가 있다는 걸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진행했어야 하는데 너무 쏘쿨하게 착착 운명을 따라가 버리는 게 좀 당황스러웠네요.
엔드게임 그 장면은 그냥 짤만 보고 전혀 기억이 안 났는데 풀어서 설명해주시니 이해가 가네요. 제가 기억 못 할만도 했던. ㅋㅋㅋ
2019.11.24 13:37
이거 로이배티님이 리뷰 올려주실 줄 알고 기다리고 있었어욥 ㅋ 첨엔 '브라이트번'이라길래 '더 보이' 저예산 짭인가 했었는데 같은 영화였군요. 상당히 신속하게 넷플에 올라온 것 같습니다. 흥미있는 소재였지만 개봉때부터 평가가 안좋아서(거기다 고어도도 좀 있다 하고ㅜ) 안보고 있습니다. 그래도 킬링타임용으로 함 보까마까 그러고 있네요. 그 제목을 말할 수 없는 영화는 무엇??
2019.11.24 14:40
넷플릭스에 처음 '브라이트번'이라고 뜨길래 음? 넷플릭스가 이제 수입 제목 무시하고 원제로 맘대로 바꾸고 그러나? 싶었는데 잠시 후에 보니 얌전하게 '더 보이'가 되어 있더라구요. 처음부터 '더 보이'였는데 제가 잘못 본 건지 넷플릭스가 수정한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ㅋㅋ
'그 영화'는 뭐.... 노리님은 이미 보시고 게시판에 소감까지 적으신 영화니까 스포일러가 안 되겠지만 아직 안 본 분들을 위해서 제목을 안 적었습니다.
그래서 제목을 노출 안 하고 말씀드리기 위해 노리님께서 직접 적으신 후기글 링크를.
2019.11.24 18:18
2019.11.25 09:55
맞아요. 아이디어만 딱 내놓고 거기 만족해서 이후로 전혀 고민을 안 한 티가 나는 영화죠.
흥행 성공하면 mcu 흉내까지 내 볼 생각이 있었나 본데 그럼 영화를 잘 만들어 놓든가...
설정은 흥미롭고 풀어내는 건 잘 못한 영화들이 어찌나 많은지요 ㅎㅎ
아이디어는 먹혔는데 구체화하는 걸 성공하지 못하는 영화들 투성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