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 11월이네요.
1과 1이 나란히 있고,
나뭇가지가 점점 깨끗해져 갈수록 혹시 내가 잘못한 적이 없는지 자꾸 생각하게 돼요
용서를 구할 사람이 어딘가에 있는데 애써 외면하고 사는 기분이 들어요.
나이를 먹을수록 뭔 죄책감만 자꾸 이렇게 늘어가는지 주제에 수녀님이 될 것도 아니면서....
연민을 배제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해요
자칫하면 그가 원하지 않는 관심을 주고 그의 자존심을 건드릴 뿐인 연민도 많으니까요
걱정도 안 하려고 해요
걱정대로 삶이 흘러간다는 짐작이 종종 현실로 나타나기도 하고 누군가를 걱정한다며 내뱉는 말이 실은 저주인 경우가 많잖아요
걱정할 일은 걱정해서 해결될 게 아니고 걱정하지 않아도 될 일은 걱정을 할 필요가 없으니까.
하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쉽나요
언제나 그 사람이 밥은 잘 먹었는지 밤에 이불은 잘 덮고 자는지 외로운 건 아닌지 혹시 돈이 필요해서 초조한 건 아닌지... 걱정이 돼요.
오늘 친구가 오랜만에 연락이 와서 우울증 약을 먹고 있고 이혼 소송 진행 중이란 얘기를 들었어요.
둘만 있을 때 행해지던 폭력을 아이들 앞에서도 휘두르는 남편에게서 이제 도망쳤다고.
결혼한 이후로 지속된 폭력을 참아왔다는 친구가 가끔 주고받은 연락에서 난 괜찮아. 했던 말들이 갑자기 아득해졌어요.
폭력을 당하고 있다는 걸 전혀 얘기하지 않아서 어쩌다 이 친구가 남편이 말을 좀 거칠게 한다고 하길래 괜찮냐고 물은 게 다였거든요..
저는 고교 시절에 이 친구가 피아노 천재라고 생각했어요
딱히 개인 레슨을 받은 것도 아닌데 고1 때 리스트를 유려하고 광활하게 연주하던 아이였죠
음대 입시 준비할 때 이 친구의 재능을 높이 산 교수가 거의 무료로 레슨을 해줘서 장학생으로 음대에 들어갔어요
모두 있는 피아노가 얘만 없어서 대학 강당 피아노로 연습하다, 그 특유의 힘없이 떨리는 가느다란 목소리로 좀 불편하긴 해 근데 괜찮아 하며 웃던 얼굴이 늘 생각나요.
부모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과외로 학비를 벌고 장학금을 받으며 힘들다며 울기보다 싱긋 미소를 자주 짓던 그 애의 순순함이 좋았어요. 꾸밈없이 조용하고 정직한 친구였죠.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돌이켜보자면 알 것도 같은 순간이 생생히 기억은 나요.
이제 와 생각하니 오지랖이란 그럴 때 쓰는 게 아닐까 후회가 될 정도로 이 친구의 선택에 대하여 당시 이 친구 속 사정을 자세히 아는 유일한 친구였던 내가 집요하게 그 선택을 말려야 했었나도 싶고.....
하지만 꼭 그래서만은 아닐 것도 같으면서 마구 마음이 엉켜버려요.
7살 때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신 뒤로 늘 사랑받지 못하는 외로움에 마음이 눈물로 가득하게 됐다는 고백을 들은 뒤로, 저는 이 친구의 모든 선택과 이야기에 대해 무조건 지지해주고 존중해주는 게 얘를 위하는 거라 마음먹었던 것 같아요.
이 친구에게 이제 제가 해줄 수 있는 건 함께 산책을 하고 따뜻한 밥을 사고
아무 때나 이 친구가 저에게 마음을 털어놓으면 들어주는 것뿐인데.
마침 그 애가 피신해있는 집이 저의 직장 근처라서 오늘 당장 보자고 하니까 괜찮아지면 연락한다는데..... 뭘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사는 게 참 뭣 같아서 울고 싶습니다. 좀 사랑하고 아껴주지... 외롭고 힘들게 살아온 애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