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치 않게 조커에서 나오는 것 같은 인물을 실제로 많이 접해본 편입니다. 아서 플렉은 현실세계에 제법 많은 인간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되는 일이 없고 억울함을 호소하거나 도움을 요청할 사회안전망이 있는지도 어떻게 접근해야하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은 우리 주변에 너무도 많습니다. 그들의 세계는 진짜로 하루하루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곳이고 가족은 심리적 안전기지가 아닌 가장 첫 번째의 위협대상입니다. 이웃이라고 해봐야 자신의 가족과 마찬가지의 상황이고 그러다보니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과 유대를 형성하지만 현대의 인간에게 요구되는 복잡한 조건들을 학습할 기회가 없던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는 배신과 협잡이 얽히는 또다른 정글에 다름 아니고요. 도저히 빠져나갈 구멍이 보이지 않는 이런 세계에서 그들에게 범죄란 그냥 생존수단입니다. 양심이나 도덕은 사치죠. 검찰개혁 따위 그들에게는 오만광년 떨어진 이야기일 거에요. 이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게토는 알게 모르게 우리 사회에도 많이 존재합니다. 뻔한만큼 징글징글한 가난과 무지와 정신병리, 그리고 사회적 무관심의 영원한 희생자들이요. 차라리 게토면 다행이고 이미 우리사회에서는 지나치게 파편화 되어서 서로의 유대마저 형성하기가 어렵다고 지적된 적이 있죠. 

  아서플렉의 사연은 그들 중에서도 제법 끔찍한 편에 속하지만 그런 상징성을 대변한다고 생각하면 그의 절망감과 온전치 못한 정신이 이해와 공감이 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슬프게 달리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 그의 달리기는 처음 거리의 불량배를 쫓을 때도 첫 살인 후 도망칠 때도, 자신의 출생의 비밀이 담긴 서류를 훔쳐 달아날 때도 언제나 절망적이고 슬프며 위급합니다. 그래서 그가 완전한 조커가 되어 달리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안도감 비슷한 기분이 들었던 거겠죠. 

  택시드라이버나 코미디의 왕을 안 본 게 다행인건지 창피한 건지 모르겠네요. 적어도 저에게는 이 사회의 현실과 멀리 있지 않은 이야기로 보였어요. 이후의 조커가 천재적이고 잔인한 범죄자로 변모하는지 아닌지는 이 영화에서 그리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미국의 평론가들은 모방범죄를 걱정했다던데 충분히 할만한 걱정이죠. 조커가 안티크라이스트 같은 존재로 비쳐지는 마지막 장면은 처절하면서도 불길하고 또 아름다웠어요. 트럼프에게 표를 던진 수많은 미국인이라면 아서플렉의 수난이 남일이 아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일베에서 이 영화에 반응을 보이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어요. 솔직히 제 안에도 그들과 같은 마음이 없다고는 못하겠네요. 범죄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은 케케묵은 이야기겠지만 아직도 대다수에게 범죄가 선정적인 권선징악으로만 다뤄지는 이 나라에서 범죄만이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인 사람들에게는 축적된 분노에 불을 당길만합니다.

  이 영화의 정서를 기반으로 한 배트맨 영화를 보고 싶습니다. 범죄자들에게 무자비하고 내적으로는 피폐하기 그지 없는 증오로 가득한 부자는 최초의 배트맨이었다고 하고 팀버튼의 배트맨에 그런 시각이 담겨 있기는 했죠. 어린시절 조커를 만나고 광대 가면을 쓴 범죄자에게 부모가 죽는 장면을 본 부르스 웨인의 배경을 가지면 다크나이트와 퍼니셔 이후의 더욱 더 잔인하고 처절한 배트맨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항상 초부자인 웨인 일가가 왜 뒷골목에서 조무래기 범죄자에게 살해되었는가가 궁금했는데 그런 면에서는 가장 설득력 있게 보였네요. 토드 필립스와 호아킨 피닉스는 놀란과 히스 레저를 잊게 할만한 또다른 캐릭터를 보여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9617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8506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8761
110021 명량 정말 별로네요... 으으.... [8] menaceT 2014.07.31 3780
110020 자기계발서 안 읽고 인문학 읽은 청년인데 [19] 이드 2013.03.19 3780
110019 김수현 작가의 새 드라마 첫방이 이번주 토요일이네요. [21] 달빛처럼 2012.10.25 3780
110018 리듬체조 정말 정말 오랜만에 보게 되네요. [7] scherzo 2012.08.12 3780
110017 으악..이 어플리케이션 예쁘죠? [10] 주근깨 2012.03.29 3780
110016 원룸 비밀번호 알려주는 거주민들 싫어욧. [5] dewy 2011.06.10 3780
110015 바람피는 사람을 믿을 수가 있을까 싶어요. [11] 모노 2011.05.05 3780
110014 유명 연예인이 갑자기 우리집에 온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6] 토토랑 2010.12.29 3780
110013 임요환 경기 이후 어떤 한남자의 트위터... [6] 자본주의의돼지 2010.11.02 3780
110012 충치있대요. 근데 아말감이 그리 안좋은건가효ㅠ.ㅠ [7] Paul. 2010.10.06 3780
110011 칸에서 무안당한 조희문 영진위 위원장 [5] Wolverine 2010.10.12 3780
110010 몹쓸 짓 하려 제주시청 여자화장실서 30분간 대기 [42] 익익익명 2016.08.08 3779
110009 법의학 국내최고 권위자 이윤성 서울대교수 이상야릇한 인터뷰 [8] 흐흐흐 2014.07.25 3779
110008 안철수 캠프가 원하는 바가 이젠 좀 명확해지는 듯 합니다. [3] drlinus 2012.11.15 3779
110007 내돈 내고 먹는 회사 회식이었다니... [8] 애니하우 2012.09.17 3779
110006 [아스트랄]"티아라 여론이 안 좋다고? 그렇다면 정면 돌파다!"-티아라 다음달 7일 방송무대 컴백? [13] 晃堂戰士욜라세다 2012.08.29 3779
110005 원걸 소희 MAC 화보. [7] 탐스파인 2012.03.15 3779
110004 주군의 태양 감상 소감. [6] poem II 2013.08.07 3779
110003 동엽신을 당황하게 만드는 상황 [16] 달빛처럼 2011.08.02 3779
110002 제주도의 [라스트 갓파더] 길거리 포스터 [13] 말린해삼 2011.01.20 3779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