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우파 6회 - 미나명과 리아킴

2023.10.06 12:11

Sonny 조회 수:346



스우파 1은 수많은 명장면들을 남겼지만 그 중에서 제가 제일 인상깊게 기억하는 장면은 프라우드먼의 탈락 순간입니다. 그 누구보다도 강하고 당당한 모습을 보여왔던 프라우드먼이었기에 이 팀이 떨어지는 것은 참혹하고 안타까웠죠. 모니카는 눈물을 닦으면서 말했습니다. "저를 지금까지 만들어줬던 사람들한테 다 그 덕을 돌려주면서 살아갈거에요." 티비예능에서 듣기 힘든 "덕"이라는 단어로 이 소감을 들으니 생경한 감동이 있었습니다. 그는 분명 이 티비쇼에서 모든 기회를 다 뺐겼고 다음이 없어졌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서럽고 처참한 순간일 수 있는데 모니카는 그 감정에 매몰되는 대신 자신보다 타인을, 잃은 것보다 받은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아마 모니카의 저 문장은 영어로 정확하게 번역하기가 참 어려울 것입니다.


스우파 2에서 누군가의 탈락 순간이 이렇게 깊은 드라마로 다가올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안그래도 츠바킬이 첫번째 탈락 크루가 되어서 이 개같은 시스템에 분노를 하고 있었더군요. 딥앤댑이 결국 탈락 크루로 지정되었을 때도 슬프다기보다는 그냥 짜증이 났습니다. 그런데 미나명이 울면서 고백하는 순간 제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그리고 정말 치열했던 저의 20대를 함께했던 원밀리언을 이제는 놓아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모니카가 "덕"이라는 단어를 말했던 것처럼, 미나명이 "놓아준다"는 단어를 말하자 이 사람의 회한이나 애증 같은 것들을 알 것 같으면서도 알 수 없게 되는 묘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좋아한다, 싫어한다, 미워한다, 보고싶다, 보기싫다, 이해한다, 용서한다, 이런 수많은 표현들이 있을텐데 그 중에서 "놓아준다"는 말을 하는 게 인상깊었습니다. 그 모든 감정은 사실 그 대상을 향한 집착이라는 것을 깨달은 듯한 말이었달까요.


뭔가 불교적 세계관의 말 같았습니다. 내가 어떤 대상을 향해 부정적인 감정을 더 품지 않고 긍정적인 감정과 리액션을 하겠다는 게 아니라, 내가 어떤 대상을 그만 생각하고 그로 인한 고통을 더는 겪지 않겠다는, 자기가 자신을 해방시키는 듯한 말이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어떤 대상을 미워한다는 것은 얼마나 힘들고 자신을 지치게 하는 일입니까. 이것은 관계나 타인을 목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온전히 자신을 향하는 말이라서 와닿았습니다. 이제 미나명은 상대를 향해 독을 퍼붓는 것도, 상대에게 퍼붓기 위한 독을 만들어내는 것도 더 이상 할 필요가 없어졌을 것입니다. 


생각할수록 극적입니다. 모든 이들과의 이별이 확정된 순간, 이미 오래전에 헤어졌다고 생각한 상대와 진짜로 재회하게 됩니다. 모든 사람의 칭찬 속에서도 오로지 그 사람의 칭찬만이 귀에 들립니다. 절대로 떨어질 수 없다고 결심하고 지독하게 집착하는 그 순간에 자신의 오랜 원념도 증오도 다 풀립니다. 고작 서바이벌 경연 프로그램에서 이렇게 한 사람의 오랜 한이 풀리는 광경을 보게 될 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무당들이 굿을 할 때 춤을 추며 신을 내는 것일까요. 정말로 모든 것을 다 걸고, 절대로 실패할 수 없는 그 순간의 실패를 겪었을 때에 잃어버리는 것과 사라져버리는 것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게 있을지도요. 미나명과 리아킴이 예전처럼 돌아갈 순 없을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걸 인정하고, 드디어 온전하게 한명의 사람들로 거듭나며 자신의 길을 향해 떠날 수 있게 된 두 사람의 미래일 것입니다. 앞으로 다른 미션들이 남아있지만 스우파 2에서 이를 뛰어넘는 드라마가 나올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만남과 이별이 공존하는 이 역설을 논픽션으로 감상하게 된 데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8719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7264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7438
124497 프레임드 #585 [4] Lunagazer 2023.10.17 77
124496 윤석열 대통령님 덕에 게시판아 태평성대가 되었네요 [7] 도야지 2023.10.17 1090
124495 [영화바낭] 배보다 배꼽이 더 큰 후기, '귀: 종이인형' 잡담입니다 [2] 로이배티 2023.10.16 353
124494 중국어 배우기 catgotmy 2023.10.16 157
124493 에피소드 #59 [4] Lunagazer 2023.10.16 72
124492 프레임드 #584 [4] Lunagazer 2023.10.16 77
124491 흡혈귀와 강시와 좀비 [3] 돌도끼 2023.10.16 228
124490 넷플릭스 제공 신작 다큐 - 신경끄기의 기술(예고편 추가, 약스포) 상수 2023.10.16 580
124489 [넷플릭스] 오리지널 - 발레리나, 이거 오랜만에 물건이 하나 나왔네요. [9] soboo 2023.10.15 858
124488 [넷플릭스바낭] 20세기에 봤다면 훨씬 좋았을 걸. '미치도록 사랑해' 잡담입니다 [2] 로이배티 2023.10.15 399
124487 (의미불명 잡담) 볼테스 V 레거시 최종화를 보고 (스포일러 있음) [5] DAIN 2023.10.15 463
124486 초한지: 영웅의 부활 (2012) [2] catgotmy 2023.10.15 136
124485 Dariush Mehrjui 1939-2023 R.I.P. [1] 조성용 2023.10.15 135
124484 프레임드 #583 [4] Lunagazer 2023.10.15 95
124483 축구 ㅡ ㅇㅇㅇ은 롤스로이스이다 daviddain 2023.10.15 118
124482 Piper Laurie 1932-2023 R.I.P. [1] 조성용 2023.10.15 148
124481 [넷플릭스바낭] 플래나간의 에드거 앨런 포 컴필레이션, '어셔가의 몰락' 잡담입니다 [10] 로이배티 2023.10.15 700
124480 대체로 무해함 - 인간적이란 뭘까 상수 2023.10.15 228
124479 패왕별희 디 오리지널 (1992) [3] catgotmy 2023.10.14 233
124478 이탈리아 축구 불법도박 ㅡ 코지 판 투테 [3] daviddain 2023.10.14 170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