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03 18:07
1. 다음에서 단지라는 작가가 '방탕일기'를 연재합니다. 이 사람은 웹툰 '단지'를 레진에 연재했던 사람인데, 이제 머리카락 색을 빨강에서 회색으로 바꾸고 홍대앞에서 자기가 지내는 이야기를 그립니다. 이 사람은 서른 네살에 자기 뜻대로 살기로 하고 말 그대로 뜻, 위시 리스트를 지워나갑니다. 첫번째는 클럽 가기, 두번째는 원나잇 스탠드, 세번째는 여행지에서 한달간 살아보기예요. 이걸 갖고 방탕일기라고 하다니, 성장기에 상당히 빡센 교육을 받았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클럽에 가기 전에는 혼자 안가고 동성친구와 짝을 지어 갑니다. 이건 서로 쉐프런 (chaperone)이 되주는 거잖아요. 정해진 음료를 마시고, 피임 챙기면서 원나잇 스탠드 하고, 심지어 얼마 못가 그만 두고. 틈틈히 재테크 하고, 부산에 한 달 살기 계획. 성실해요. 방탕 조차도. 규격에 갇혀 있고, 관계에 묶여 있고.
2. '잭 라이언' 시즌 2가 아마존에 떴습니다. 오프닝이 '나이트 매니저'와 비슷해요. 톰 히들스턴을 주연으로 한 '나이트 매니저'의 오프닝은, 화려한 샹들리에와 폭탄 터지는 모양이 다르지 않음을 보여줬죠. 마찬가지로 '잭 라이언' 2부 오프닝은 미국인들이 즐겨 갖고 노는 야구공과 수류탄을 반반씩 보여줍니다. 토요일이면 캐치볼을 할 것 같은 존 크라신스키가, 바로 그 심두박근으로 수류탄을 던질 수도 있음을 보여주죠. 미니시리즈는 베네수엘라를 중심으로 하는데 이야기 자체는 글로벌해요. 스페인어 익힐 겸 짬짬히 볼 만 합니다.
3. '우리는 모두 봉준호의 디스토피아에 살고 있다'고 뉴욕타임즈의 A.O.Scott이 썼습니다. 연말이 다가오니까 이 작품이 오스카를 탈 건가 말 건가를 두고 미국 내에서 관심이 쏠리나봐요. 요즘 미국에서는 수평적 수직적 불평등 (vertical and horizontal inequality: 세대간 부의 불평등과 세대 안의 부의 불평등)이 이슈인데, 이 작품이 아주 시기 적절하게 나와준 거죠. 운이 좋다고도 할 수 있고, 본인이 시대의 흐름을 선도해나간다고도 할 수 있겠어요. 예전에 김지운 감독의 '라스트 스탠드'는 꽤 괜찮은 작품이었는데도 직전에 미국 내 총기문제가 터져서 별로 좋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소리를 들었거든요.
'설국열차'가 나온 게 2013년이었죠. '설국열차' 나온 직후에 서울에 갔다가, 지하철을 보고, 서울은 지하철 없으면 돌아가질 않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 도시는 역사가 오래 되서 어디를 건드려도 조심히 건드려야해요. 차를 위한 도시도 아니고 보행자를 위한 도시도 아니고, 얽히고 설킨 도시인데 어찌 됐든 간에 지하철은 있어야 돼요. 그렇지 않으면 도시 기능을 할 수 없거든요. 차로 밀어붙이자니 주차공간이 없고, 강북의 경우는 도로도 협소하죠. 지하철 시설이 훅훅 감가상각 되어가는 게 현저히 보이더군요. 이만한 규모의 도시에서 이렇게 저렴한 가격으로 이동 (mobility)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가능한가. 뭘로 이 가격을 떠받치는가 생각했죠.
2016년에 구의역 스크린 도어가 고장나서 이를 수리하던 외주업체 직원 1997년생 김 아무개씨가 열차에 치여 사망했을 때, 저는 그 가격이 가능한 이유가 이거였구나 하고 이해했죠. 사람 갈아넣어서 만드는 가격, 정확히는 젊은 외주업체 사람의 목숨값으로 낮춘 가격이구나 하고. '설국열차'의 딜레마는, 남아있는 세계가 달려가려면 누군가 열차밑으로 들어가서 엔진을 정비해야한다는 거였지요. 옥타비아 스펜서가 분장한 타냐의 아들, 팀이 차출된 게 혁명의 이유였고요. 1997년생 김 아무개씨 사망 사건이 난 현장에 많은 사람들이 스크린도어에 포스트잇을 붙였는데, 그 장면을 시사인에서 사진으로 찍어 싣기도 했죠. 그때부터 서울에서 지하철을 탈 때면, 김아무개씨는 서울의 엔진을 돌리러 꼬리칸에서 차출된 팀이었는가 하는 생각을 간혹 했죠. 팀과 달리 김아무개씨는 살아남지 못했구요. 당시 박원순 서울시장이 김씨에게 명예기관사 자격을 부여하겠다고 제안한 건 상당한 블랙코미디지요.
이 게시판에 올라왔던 조 민씨 인터뷰에 달린 "조국 장관의 부인과 딸의 다짐이 무서운" 거라느니 "대단한 자존감"이라느니 하는 평가를 보면서 저는 2016년에 시간이 멈춘 김아무개씨를 생각했죠. 이 다짐 어디가 무서운가. 당신이 생계를 잇기 위해 컵라면 들고 스크린도어를 고치러 나가는 꼬리칸의 사람이라면, "시험은 다시 치면 되고, 서른에 의사가 못 되면 마흔에 되면 된다"는 이야기는 아마 못할 거라고.
2019.11.03 18:20
2019.11.03 18:30
제 생각에, 가진 사람은 당해도 싸지 않아요. 가진 사람들이 뭔가를 당해야하는 이유를 저는 모르겠어요. 왜 조민씨 인터뷰에 약이 오를 거라고 생각하는지도 이해가 안되요. 조국 사건 전체가 우울하고, 뉴스 읽는 게 즐겁지 않습니다. 내일 죽을 지도 모르는 청년 비정규직들이 버텨서 돌아가는 나라에서, 십년 꿇어도 된다는 그녀의 말이 무섭지도 대단해 보이지도 않을 뿐이예요. 그리고 조민씨는 '애'가 아닙니다. 서른을 목전에 앞두었을 걸요.
2019.11.03 18:40
저도 조국 사건 전체가 우울해요. 조국이 있는 놈들 중에 대표로 여론 조리돌림 당하는 건 "있는 놈들 중에 제일 만만한 놈"이어서거든요. 더 있고 더 니쁜 놈들은 조국 일가같은 일을 당하지 않아요. 게다가 조국 일가가 너무 괘씸한 사람들은, 검찰이나 언론 권력의 야만성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아요. 선택적 분노, 선택적 정의네요. 조민의 십년 꿇어도 된다는 얘기를 무슨 있는 자의 여유 비슷하게만 이해하시는 것 같은데, 표적수사의 피해자 입장으로 생각해보시면 또다른 이해의 세계가 펼쳐질 것이에요. 누구에게나 세월은 소중하답니다.
2019.11.03 18:55
서울대 법대 나와서 버클리대 유학, 서울대 법대 교수하고 민정수석, 법무부 장관까지 대통령 뜻으로 밀어붙인 사람이 제일로 만만하면, 우리나라에 만만하지 않은 사람이 없겠군요. 제가 보기에 그 정도면 거의 일인지하 만인지상인데요. 정규직 되기 바래서 컵라면 먹으며 위험속에서 일하다 노동연수 10년 못 채우고 죽는 사람들도 있죠. 김군 같은 경우도 열아홉에 죽었죠.
2019.11.03 19:01
이건 뭐 순진한 척 하시는 건지. 대한민국에서 진정한 권력이란 검찰을 조사하지 않게 만들고, 언론을 취재하지 않게 할 수 있는 자들이 가지고 있거든요.ㅋㅋ 네. 십년요. "낙인" 은 평생 가는 겁니다.
2019.11.03 19:09
현 정권이네요.
낙인 말씀을 하시는데, 제가 보기에 조금만 더 버티면 일부 그룹에서는 잔다르크 취급 받을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2019.11.03 19:16
현 정권이 그걸 할 수 있다면 조국 일가가 저렇게 공개 멸문지화 당하지 않았을텐데요? 지지부진한 패트 수사만 비교해봐도 답 나오는 것을.ㅋㅋ 특수부 검사들은 시간도 많고 조국 말고는 다른 사건이 없나봐요. 그리고 잔다르크는 속수무책 당하는 사람한테 갖다 붙일 게 아니고요. 저기 빠루들고 설치는 어떤 여자한테 가서 알아보세요. 탈부착형 선택적 정의와 분노.ㅋㅋ
2019.11.03 20:48
2019.11.04 09:32
조국사태의 본질이 상위 20%가 상위 1%를 질투해서 벌어진 일이라는데, 이 얘기 듣고 언론이 왜 그 난리질을 해댔는지 좀 이해가 되더군요. 선택적 분노라는 것도 밑바닥에 있는 질투심이 폭발해서 그런거라면 ㅎㅎ
2019.11.24 14:04
이걸 질투로 본다는 게 좌절스럽네요.
2019.11.03 18:49
2019.11.03 18:58
살아서 갑의 돈을 호주머니에 넣으면 역전의 기회가 올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요즘 한국 사회를 봐선 살아있기도 힘든 것 같네요.
2019.11.03 19:10
2019.11.04 01:39
바퀴벌레 씹으며 때를 기다리면 한 칸 한 칸 문이 열리려니 생각했죠. 한달에 백만원씩 적금 부어도 앞칸 교실에 꼬리칸 아이들은 못들어가더군요.
2019.11.04 05:39
그게 뭐 어때서? 김아무개처럼 죽진 않았잖니? 이백만원 부으렴 하시면 되겠네요.
2019.11.24 14:03
그런데 김군은 죽었어요. 그리고 지금도 노동자들은 죽고 있고. 시간과 싸우고 있다는 뜻이죠. 조민씨가 10년을 다시 해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내일 위험한 노동으로 인해 죽을 확률이 낮기 때문이죠.
2019.11.03 19:42
쓰신 글 읽고 잭 라이언을 보고 있는데 스페인 어로 en serio? 하는 것 알아들었습니다. 잭 라이언 역 배우가 맘에 들어요. 에밀리 블런트 남편인 걸로 아는데요.
2019.11.03 20:38
2019.11.04 01:47
얼굴은 동글동글하게 생겼는데 액션신에서 보면 전사의 체형이죠.
2019.11.04 09:46
올해 오스카 작품상은 사실 로마가 가장 적합함에도 외국어, 넷플릭스라는 더블 핸디캡 때문에 밀렸다는 불만이 많았었기에 내년에는 반사효과(?)로 설마 기생충 주는거 아니냐 이런 설레발도 쳐보게 되네요.
2019.11.04 10:29
2019.11.24 14:04
아이돌에게서 삶의 교훈을 찾는 사람들이 있기는 있더군요. 예능 사회라 그런지.
결국 봉준호로 시작해서 조민으로 끝나는 얘기네요. 그 열차세계 속에 고삐 풀린 검찰의 탑승칸은 어디쯤인지 궁금하군요. 너는 있는 놈이니까 좀 당해도 싸다, 대리만족의 포르노 생중계. 그 와중에 머리채 잡힌 애가 울면서 빌지도 않고 의연하니 약이 오른다 그 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