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에 일이다. 그때는 아직 이혼이란 걸 생각하지도 않았고, 그것이 나의 생에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못했던 때. 그때 이미 지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알 수 없는 두통을 1년 가까이 겪어 왔을 때였다. 검사할 수 있는 건 다 검사했건만 이유는 알 수 없었고, 먹는 다고 약이 뭘 나아지게 하지 못하고 있을 때. 어느 날 아침에 신문을 읽고 있는데 갑자기 읽을 수가 없었다. 무슨 일인지 순간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눈에 아무것도 안보인다 그런게 아닌데 왜 신문을 못 읽겠지? 진정하고 보니, 내 시야의 한 30%가 깨져있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눈으로 보는 세상을 텔레비전 화면으로 치면, 70%정도는 고정되어 있는데 30% 가 깨지고 흔들리는 거였다. 그런 상태가 한 20분 정도 계속 되었다. 머리가 깨지게 아플때도 걱정이 되지 않았는데 이 순간은 정말 겁이 났다. 심각하게 내가 정말 뇌쪽으로 어떤 병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란 생각이 들자 선물이를 바라보았다. 이 아이는 내가 죽게 되면 어떻게 되지? 그리고 한 5초 지난 뒤에 괜찮아, 하나님이 돌보아 주실거야. 내가 죽어도 걱정할 필요 없어 라고 생각했다. 조금 있다가 시야는 정상으로 돌아왔다. 


며칠지난 뒤 그 순간을 다시 생각해봤다. 내가 생각했던게, 아주 정직하게 내 믿음의 무게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것 보다는 내가 그만큼 사는 걸 별로 중요시 여기지 않고, 어쩌면 사는 걸 무슨 의무로 여긴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별로 행복하지 않지만 아이가 있으니, 엄마한테 죄송하니, 사람이 다 가질수는 없으니 이런 이유로 변화시킬 수 있는 불행의 상태를 끝내지 않으면서, 나는 페이스북에 나오는 것과는 달리 사람들이 이렇게 이렇게 별볼이 없이 산다느니, 스웨덴 가구중 부부관계없이 사는 부부가 몇 %라느니 라는 신문기사를 읽으면서, 누구네 집에 어떤 문제로 고민중이더라 라는 소식들을 들으면서, 나는 솔직히 위안아닌 위안을 받으며, 다들 이렇게 살아, 다 가질 순 없어 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런 생각으로 나 자신에게 솔직하지도 않았고, 나 자신을 돌보지도 않았다. 스웨덴에 바이폴러 병 환자인 한 윤리 연구가가 쓴 책 제목은 나는 죽고 싶지 않아요 단지 살고 싶이 않은 거에요. 내가 죽어도 선물이 걱정 안해도 된다는 데에 안도감을 느끼고 어떤 해방감을 느꼈다는 걸 인정한 순간, 그 책 제목이 떠올랐다. 그 순간, 내가 나 자신에게 말했던 것 보다 더 불행하다는 걸 스스로 인정했다. 


며칠 동안, 이러면 어떻하지 저러면 어떻하지 걱정되는 일이 있다. 사실 걱정한다고 해결 될 문제들도 아니고, 무엇보다 미리 걱정해봐야 어떤 해결책을 만들어 놓을 수도 없는 일들이다. 그런데 잠시 돌이켜 생각해 보니 이 와중에 조금 그래도 나아졌다는 생각이 드는 건, 잘 살아서 잘 해야지, 선물이랑 잘 살아야지 라는 생각이 모든 걱정 가운데 서 있다는 것이었다. 걱정은 하지 말아야지. 그리고 잘 살아야지 그게 오늘 아침 선물이 손잡고 학교 가면서 내린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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