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01 00:54
- 그냥 요즘 이것저것 본 잡담입니다.
일본의 애니메이션 제작사 스튜디오 지브리가 일본의 TV방송국에게 팔려가는 상황에서,
미야자키 영감의 신작 "그대들은 어떻게 살것인가"가 사실상 일본 내수로는 손익분기가 위험하다는 말이 나왔는데,
하여튼 한국 국내에도 개봉을 했고, 일단 지난 주에 보고 오긴 했는데…
결과물로는 "잘 만든 애니메이션인데, 기존 지브리 작품같은 부류의 재미있는 모험물이나 환상적인 체험을 바라는 사람들을 노린 물건은 아니다." 라고 해야 겠군요.
듀나님 식이라면 내용보다 주제가 앞서간다고 할 수도 있겠고, 결과물 자체는 고퀄이지만 찬반이 갈릴 수 밖에 없는 물건이 나왔다고 하겠습니다.
설교적이느니 이중적이라느니 평가적으로도 이상하게 갈리는 모양이지만, 작품이 실제로 나쁜 게 아니라 그냥 여유가 없고 할 말이 많은데도 이건 꼭 넣어야 겠다고 사족을 막 붙이면서 늘어진다는 느낌입니다.
게다가 지금 한국 사람들이 이 사람의 작품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뇌내에 받아 들일 정도로 여유가 없고, 작가 스스로가 그냥 곧이 받아들이지 말라 생각하면서 보라~라고 마구 이상한 어필을 하고 있는 지경인지라 피할 수 없는 논쟁이겠지요.
물론 개인적으론 "80살 넘은 노인네의 주책(이라고 쓰고 중2병이라 읽는 [왜가리 스트랜딩]"이라고 트위터 등에 농을 치고 있습니다만,
일단 수우미양가로 치면 '가'에 놓겠지만. 이건 최악이란 게 아니라, 볼 가치가 있는 가작이란 소리입니다.
센과 치히로~처럼 환상 속 세계로 들어가는 남자아이가 이것저것 겪어 성장하는 이야기인데, 남자아이를 어느 쪽에 놓고 보느냐 감정이입이 가능한가 등등이 평가가 갈리는 이유긴 하겠지만,
가장 큰 문제가 연출적이나 장면 등이 기존 미야자키 스타일의 집대성이나 자기 복제에 가까운 무엇인가 인지라 신선하다기 보다는 '잔잔하게 압박하는데 어떤 화끈한 폭발이 없는 채로 끝나는' 그런 느낌입니다.
우익이니 뭐니 같은 건 다 쓸데없는 소리고, 미야자키 본인이 구체적으로 반전이 어쩌고 하는 식으로 대놓고 주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작가가 자기 어렸을 때 체험을 반추하는 무기공장 아들내미 설정이 필요 이상으로 어필되는데,
무기공장 하는 아버지가 (센과 치히로~때처럼) '새로 이사온 집'에 무기 부품을 실어 갖고 와서 적응할 시간조차 줄여버린다는 그런 묘사가,
외려 남자아이가 도피적 심리로 이상한 탑으로 뛰어드는 이유를 제공한다고 생각하면 '그 안 좋았던 전쟁시대'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임을 드러내려는 건 확실해 보이고,
이래저래 작가는 할 말이 많았고, 자기는 여러 작품을 통해 '꿈의 이야기'를 담은 장난감 블록들을 쌓듯이 작품관을 통한 세계관을 만들어 내려 했지만,
자기가 쌓은 세계관인 그 블록들이 악의로 물들거나 사람들에게 제대로 이해받지 못한다는 것이 현실이라고 느끼는 것인지 그에 대한 변명과 안타까움을 표현한다는 느낌입니다.
하여튼 불만점은 많지만 이 영감님은 자신있는 달리기 같은 액션 연출이나, 아름답지만 어딘가 뒤틀린 느낌의 환상 속 세상을 그냥 쓱쓱 그려서 덕지적지 붙인 배경 위에다가,
자기 생각과 사상을 적은 메모를 마구잡이로 덕지덕지 덧붙인 꼴라주 같은 거대한 덩어리란 말이지요.
머 개인적으론 어린 조카들이나 저보다도 나이 많은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합니다.
개인의 반응은 자기 생각으로 비춰보는 거울 같은 딱 그 정도의 작품이네요.
= 또 하나는, 넷플릭스의 [PLUTO(플루토)] 애니메이션 인데…
일단 혹시나 모르실 분을 위해 전제를 깐다면, 20세기 소년이나 마스터 키튼 등의 작가 우라사와 나오키가,
데즈카 오사무의 [우주소년 아톰]의 대표적 에피소드 하나를 기반으로 만든 리메이크 만화 [PLUTO]의 애니메이션화 작품입니다.
사실 아톰이란 이름은 한국에선 21세기 들어서 반쯤 잊혀진 셈인데,
(물론 2003년의 리메이크 판이나 미국 CG애니 아스트로 보이도 있고, 아동 채널에서 진짜 아동용 아톰 애니가 나오기도 했습니다만 그건 진짜 논외고…)
이 작품은 비교적 근래에 나온 리메이크 작품 기반의 애니메이션이라, 아톰을 몰라도 상관없는데 아톰을 알고 보는게 낫긴 할거란 생각입니다.
PLUTO의 각색자 우라사와 나오키는, 드라마는 계속 흥미를 유지할 수 있도록 나름 잘 짜지만, 실제 내용의 완급이나 흐름에 있어서는 사람마다 평가가 달라질 작가라 생각합니다.
저 자신은 우라사와의 대표작 급인 마스터 키튼이나 20세기 소년이나 재미있게 본 편이지만,
아톰의 주요 에피소드 중 하나를 리메이크한 PLUTO는 도중에 때려치워서, 이번에 애니메이션으로 완결을 본 셈인데,
생각보다 요즘 일본의 '무지한 젊은이들'에게 어필하는 '양비론' 작품이어서, 데즈카 생존 상태에 나왔었으면 욕 먹기 좋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다만 이것이야 말로 지금 나오는 게 "타이밍 안 좋네" 싶을 물건이었습니다.
요즘 분위기 생각하면 너무 시사적이고 정치적인 이야기를 전반적으로 무난 이상의 높은 작화 수준을 유지하면서 공을 들여 만들긴 했는데,
내용적으로는 원전이나 데즈카 작품들에 공통적인 주제 그대로 반전(反戰)을 주장하는 물건이지만, 정작 미국에 해당하는 가상 국가나 작품의 주요한 기반이 되는 적대세력인 중동계 국가 모두를 아울러 까는 양비론이거든요.
최강급 힘을 지닌 로봇들이 개인의 뻘스런 욕망 때문에 무의미하게 싸워야만 했던 원작 아톰의 '지상 최고의 로봇' 편에서 이어지는 반전이란 주제는 플루토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원전보다 훨씬 음모론적인 설정과 로봇 개별에 얽히는 비극적 드라마과 결론에 이어지는 과정 자체는 좋았음에도 중간중간의 미묘한 비꼬임이나 미국 역할의 국가 원수가 벌이는 뻘짓을 보면 요즘 정치적 사안이 떠올라 편하게 볼 수 없었습니다.
그저 자기 국가의 이익 때문에 세계에서 중요한 위치인 로봇들의 파괴를 결정하는 정치인들의 어리석음이 과하게 드러나면서, 풍자라는 영역을 넘어서 좀 기분 나빠 보일 정도까지 간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전쟁과 테러가 이어지는 요즘 기준으로 보면 풍자나 정치적인 이야기를 넘어서 거의 우화적인 영역에 가는데, 인간과 로봇의 기준과 차이에 대한 (소위 인간과 로봇의 정체성 어쩌고 하는 코드의 내용들) 부분도 상당히 심각한 주제지만 적당히 일본스러운 수준에서 끝나버립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21세기 들어서도 "아톰 더 비기닝"이라고 아톰을 만든 텐마 박사와 코주부박사로 유명한 오챠노미즈 박사가 젊었을 때 이야기를 다룬 프리퀄 만화가 나오고 애니화도 되었습니다.
이 "아톰 더 비기닝" 쪽이 애니메이션으론 평범하지만 '못 보던 이야기'를 보는 거 자체가 좋았고, '제타 마르스'의 카메오 출연이라던가 팬서비스에는 PLUTO보다도 더 충실한 편이어서 개인적으론 이 쪽도 좋았는데,
그래서 PLUTO 애니가 나빴냐 하면, 개인적인 만족도는 사실 '그어살'보다도 조금 더 좋았습니다.
밤에 틀었다가 철야로 8화 완결까지 한번에 다 봐버렸으니까요.
게다가 이건 일본 TV 애니메이션의 25분 짜리도 아니고, 미국 TV드라마 시리즈의 50~55분 짜리의 긴 물건이라 실제 분량을 치면 8시간이고 일반 TV애니메이션 16화 정도라, 요즘 1쿨 13화 애니들 보다 좀 더 길고 충실합니다.
다만 요즘 한국 사회 분위기를 보면 이건 정말 편하게 볼 수 없는 물건이라 매우 거시기하네요.
테러는 계속되고 증오는 연속되는데, 증오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는 돼지는 인형 같은 창작물 속 정치가들이나 힘이 있는 기득권들보다도 못하단 말이죠.
- 그리고, '스콧 필그림' 애니판 PV와 오프닝 영상이 공개되서 봤는데,
서양 만화 원작이지만 일본 애니메이션 쪽 일본인 스텝들을 많이 데려와서 만드는 물건인데, 실제 오프닝 퀄리티는 그렇다 치고, 오프닝 주제가가 일본어… 입니다.
원작자는 캐나다 쪽이고 미국이나 유럽에서 팔린 만화 원작의 애니판이라 일단은 서양 애니 취급해야 할 물건인데, 일본어 주제가가 나오고 있으니 기분 묘하더군요.
필리핀 버전 볼테스 레거시에서 필리핀 사람이 일본어로 부르는 주제가보다 이 쪽이 더 거부감이 느껴지는 게 신기할 지경이었습니다.
머 일단 원작 내용을 다 살리긴 할 것인가 좀 궁금한데, 그 와중에 실사판 배우들을 성우로 쓰는 건 나름 팬들에 대한 어필이겠습니다만,
하여튼 오프닝만 보면 "괜찮을까~ 이대로 괜찮을까~" 상태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머 나오면 보기는 보겠지만 이건 진짜 예측하기 두려워지네요.
원작도 사실 무뇌 직전의 요즘 젊은이들의 공허함 등등을 그냥 날것으로 던진다는 유치찬란한 묘사여서 영화보다 애니메이션이 더 어울리긴 했는데, 정작 영화가 먼저 나왔죠…
애니가 잘 나오면 좋겠지만, 제가 바라는 방향은 아닐 것 같은 게 아쉽네요.
= 요새 이런저런 일이 밀리고 있어서 삶이 팍팍한 기분인데 이것저것 보는 것들이 다 팍팍한 기분만 만들고 있습니다.
정치적 사회적으로도 결코 안정은 바랄 수 없는 위기 상황인데, 우리 위에 서있는 돼통령이 사이비와 극우스러운 부류에 휘둘리며 설치고 있는 꼬락서니가 [플루토]의 국가들이 하는 꼬락서니와 비교해도 구리단 말이죠.
현실은 난감함을 넘어 답답함에 그저 한숨만 나오는데, 창작물조차도 편하게 볼 수 없는 현재는 더더욱 난감할 뿐이네요.
연말이 얼마 안남았는 데, 다들 힘든 23년이었지만 "줄일건 예산이 아니라 윤의 임기"라고 입 안에서 되새기면서 계속 버텨야 하겠네요.
:DAIN.
2023.11.01 12:17
2023.11.01 13:54
홍보상으로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동명의 책을 읽고 찌릿한 감정이 있어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 책은 그 원본으로 영화 속에도 나오고요. 참고로 책 내용과 영화 내용은 전혀 다릅니다.
2023.11.01 15:15
'나는 이렇게 살았다'~라는 식의 자기 이야길 하는 작품으로 보면 "나는 과거를 시골 집에 두고왔다. 너희는 이거보고 극장 나가서 뭐할래?" 라는 정도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웃음)
2023.11.01 12:44
2023.11.01 15:13
요즘 러시아와 이스라엘 전쟁 벌이는 꼴을 보면 본의 아니게 예언적인 이야기가 되긴 했는데, 현실에서 중요한 7대 국가나 거대한 정치 세력이 일순간에 사라지는 거대한 음모가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정말로 국가나 민족의 '감정' 때문에 세계구에 피해를 끼치는 게 더 큰 악이 아닐까 싶어지는 논쟁거리가 되어버리는 셈인 거죠. 본질적으로 피해자 입장에서 증오를 버릴 수는 없지만 감정을 무시하거나 현실적으로 복수나 보상이 의미가 없어진다 생각하면 거대한 탁상공론이 되는 거고요. 그래서 그냥 최선을 선택하고 그 결과에 따른 피해를 감수하는 선택을 하는 기계의 차가운 시선과 입장으로 인간을 재단하라고 비꼬인 작품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2023.11.01 14:22
하야오 영감님 영화들을 그리 좋아하지 않아서 요 작품에 큰 관심은 없는데, 한국 흥행이 되게 잘 되고 있는 건 신기하더군요. 그냥 영감님 좋아하는 사람들이 보러 갔다기엔 과하게 좋던데, 경쟁작들이 좀 약한 것일려나요.
플루토는 원작을 좋아해서 그런지 리메이크 만화책은 보다가 말았어요. 크게 바꿨단 느낌은 안 들었는데 그냥 그 시절에 제가 나오키 스타일에 좀 질릴 때라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애니메이션 나올 걸 보고 이걸로 완주해볼까... 했는데 평가가 애매하군요. 허허. 좀 더 고민 해보는 걸로!
2023.11.01 14:32
2023.11.01 15:10
경쟁작이 약하다고 할 수도 있고, 아마 이 영감의 다음 작품을 보기 힘들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되니, 극장에서 체험할 수 있는 마지막일 가능성을 생각하면 뭐… 퀄리티는 높지만 재미가 있냐면 '이젠 질렸어' 라고 말하지 못하는 게 팬이란 거겠죠.
플루토는 우라사와가 자기 스타일로 꽤 바꿨다고 해야겠죠. 결과물은 퀄리티는 잘 나왔지만 데즈카의 원작과 다른 길을 가서 다른 주제를 그리고 다른 결론에 도달하긴 했다고 밖에… ㅎㅎㅎ
2023.11.01 15:27
아 플루토는 보시는 쪽을 추천합니다. 요즘 정세 생각하면 본의 아니게 예언, 까지는 아니어도 의미 있는 이야기긴 하고, 애니 자체는 충분히 퀄리티는 잘 나왔습니다. (액션은 생각보다 작지만 뭐) 위선도 선이다~라고 말하기엔 너무 멀리 온 이야기고 정치적 묘사가 강한데 이게 미국이나 한국에선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좀 궁금한 문제작 아닌 문제작이 되어 버렸어요.
2023.11.01 15:04
스콧 필그림 원작 자체가 일본만화의 영향에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주연 배우들도, 감독도 지금은 나름 대성했는데, 그대로 모인다니... 기분 참.
2023.11.01 15:17
원작은 섬나라 스타일을 흉내내긴 했지만 무뇌한 서양남을 그 나름 잘 소화했다 보는데, 애니판은 표현은 미국 카툰 스타일을 따라왔지만 그걸 일본 애니 풍으로 그려내는 과정에서 괴이한 혼종 느낌이 더 강해질까 싶은 정도네요.
2023.11.01 16:16
스콧 필그림 넷플 애니판 기다리고 있는데 오프닝 주제가가 아예 일본어라니 좀 놀랍긴 하네요.
'지나고 보니 초호화 캐스팅'의 대표적인 작품인데 출연진이 전원 복귀라고 해서 그것만으로 크게 기대하고 있습니다. 막상 영화 개봉당시 가장 잘나갔던 마이클 세라가 이후 커리어가 미미하네요. 올해 최고 흥행작 바비에서 나오길래 반가웠습니다.
2023.11.01 21:46
BECK이라고 음악 소재의 일본 애니 뮤직비디오를 패러디한 스콧 필그림 애니판의 뮤직 비디오가 돌고 있는 지경이라, 돌고 도는 혼돈 같은 뭔가를 보는 기분이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최소한 영어 가사를 쓰는 노래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네요.
머 결과물이 나와봐야 알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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