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06 03:47
1746년의 방면 명령The Order of Release, 부분도, 존 에버렛 밀레이, 1852
1746년은 재커바이트 반란이 최종적으로 진압된 해입니다. 명예혁명으로 폐위된 제임스 2세를 복위하고 다시금 스튜어트 왕조가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웨일즈)의 왕위를 차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반란의 시작이었지만, 사실 1688년부터 산발적으로 일어난 이 난이 최종적으로 진압된 것은 수 십년이 지난 1746년에 이르러서였습니다. 물론 이 오랜 기간 내내 스코틀랜드에서 전쟁이 일어났던 아니고요. 계속 어느 지역에서 난이 터지면 진압되고 그러다 다시 터지면 진압되고 그런 식이 반복되었죠. 그러다 마침내 1746년의 진압을 끝으로 이 전란은 바로 매듭을 짓게 된 것이었구요.
거의 100여년의 시간이 지나서 밀레이가 이러한 소재로 역사화를 그리기 시작한 것은 1852년에 이르러서였습니다. 사실 역사화라면, 기존의 양식을 그대로 따른다면 조각같은 인물상과 함께 뭔가 장엄하고 대단한 구도와 함께 역시 뭔가 강한 정치선전을 가져야 함에도 밀레이는 전혀 그런 방식을 취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는 일상의 가족 구도를 선택해서 이 반란의 종언을 그려냈죠. 이는 밀레이가 속한 라파엘 전파 형제회의 유파적 특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이들은 당시 주류 미술이었던 아카데미 미술에 강한 거부감을 나타냈고 당시 아카데미가 최고의 장르로 추구하던 역사화에서 일반적으로 보이는, 조각같은 인물상과 뭔가 큰 교훈을 가진 노골적인 정치선전을 혐오했습니다. 그래서 밀레이는 일상의 소재로 이 역사의 순간도 일상의 풍경으로 만들어낸 것이죠.
일상의 소재와 일상의 풍경을 사진처럼 정밀하게 그려내는 방식은 근대적인 자연주의와도 맥이 닿는 것으로, 밀레이는 작품의 현실감을 높이기 위해 주변의 인물을 모델로 삼았는데, 그 때문에 그의 친구이자 미술이론의 스승이기도 한 문필가 존 러스킨의 아내 에피 그레이가 이 작품의 모델이 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근대적 자연주의 양식을 따른다고는 하지만 밀레이는 고전적인 코드도 그대로 작품에 적용했는데, 화면에 개가 등장한 것과 아내가 머리에 베일을 쓴 것 그리고 그녀의 발이 맨발인 것을 들 수 있죠.
(개는 부부간의 성실함을, 아내의 맨발은 그녀가 신처럼 신성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 이는 고대 그리스 미술에서 유래한 양식입니다 - 베일은 성모 마리아의 신성성을 상징하죠)
그런데, 사실 이 그림의 일화를 생각해 본다면, 이런 코드는 정말 대담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죠. 이 그림에 등장하는 가족은 스코틀랜드의 명사도 아니고, 역사에 이름을 남긴 무슨 대단한 일을 한 사람들도 아닙니다. 이들은 그저 수 십년 동안 스코틀랜드 전역을 휩쓸었던 반란에 끌려들어간 딱한 민초들일 뿐인데, 그런 현실을 반영하듯 저 그림의 일화도 사실 잔혹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죠.
일화는 이렇습니다. 반란 현장에서 체포되어 감옥에 갇힌 남편에게, 뜻밖에도 그의 아내가 남편의 사면을 명하는 방면서를 가지고 찾아옵니다. 석방된 남편은 감격하여 아내를 포옹하고 아내는 남편의 등 뒤로 방면서를 경비병에게 보이고 있죠. 그 집의 큰 강아지가 옆에서 반가운 듯 꼬리를 치고 있고, 참 정겨운 풍경이긴 한데....실은 이 남편은 그냥 석방된 것이 아닙니다. 바로 그의 아내가 남편을 구하기 위해 높으신 분에게 성상납을 했죠.
이 그림이 공개되었을 때, 가족의 정겨운 풍경 뒤에 서린 이 한 많은 사연은 당연히 대중을 시끄럽게 했고 그 여파는 이 그림에 그려진 인물과 관련된 대형 사건으로 한바탕 더 큰 난리가 나게 됩니다.
그림의 모델인 에피 그레이가 남편 존 러스킨을 상대로 이혼 소송을 낸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혼 사유라는 것이 정말 놀랍게도, 그들 부부가 지난 6년의 결혼생활 동안 실질적인 부부관계를 전혀 갖지 않았다는 것이었죠. 중세 이래의 민법 상 유럽에서 결혼이란, 두 사람의 실질적인 부부관계가 있어야만 성립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 아내의 주장에 남편 러스킨이 사실을 인정함으로써 - 법원은 이들 부부의 '혼인무효'를 선언했고 에피는 자기가 원한대로 남편과 헤어져 친정으로 돌아갔습니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당시 기준에서는 충분히 시끄러울 만한 일이었는데, 그 이듬해에 더 큰 일이 터집니다. 바로 에피가 화가 밀레이와 결혼을 한 것이었죠!
밀레이와 에피의 결혼이라니! 전남편의 친구이자 제자이기도 한 밀레이와의 관계 때문에 눈이 휘둥그레진 대중은 이 얘기 때문에 시끌벅적 난리도 아니었죠. 게다가 대체 두 사람이 언제 사랑에 빠졌을까...궁금해 하는 사람들에게 바로 딱! 저 그림이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그렇죠. 그 두 사람은 이 그림을 그리면서 - 화가와 모델로 가까이 지내면서 - 급격히 서로에게 빠져들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에피는 자기가 모델로 서는 주인공의 일화를 들으면서 어떤 생각을 했던 걸까요? 감옥에 갇힌 남편을 위해 희생하는 아내 역할을 하면서 자기의 이상한 결혼 생활에 극도의 회의감을 느꼈던 걸까요? 아니면 새로운 사랑에 빠지면서 현실의 상황을 뒤집어 버려야겠다는 용기를 얻었던 걸까요? ( 진실은 본인들만이 알겠지만, 그림 스토리 보다는 그 그림 그리는 젊은 화가에 대한 사랑 때문에 자기 인생을 다시금 돌아보는 계기가 됐던 건 분명해 보입니다.)
여튼 1855년, 근엄한 빅토리아 시대에 터진 이 스캔들은 어찌나 그 여파가 컸던지 -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크림 전쟁( 나이팅게일로 유명하죠 ) 소식도 한동안 묻어버릴 정도였다네요.
하지만 그런 소동도 서로를 사랑하는 두 사람을 어쩌지는 못하죠. 밀레이와 에피는 이후 두 자녀와 함께 일생 행복한 부부로 지냈습니다. ( 물론 주변 사람들이 많이 괴롭히기도 했지만...특히 빅토리아 여왕...-_-;;) 밀레이의 화가로서 경력도 별 문제없이 탄탄대로를 걸었구요.
결혼이란게 두 사람만 행복하면 되는 것이죠.
2015.12.06 04:13
2015.12.06 05:49
2015.12.06 04:13
첫 링크의 경우 사이트 악성코드 경고가 뜨네요.
2015.12.06 05:51
2015.12.06 10:17
요즘 세상에도 저 정도 스캔들이면 두고두고 호사가들 입방아에 오르내리겠습니다. 아내가 싫었던 건지 결혼생활이 싫었던 건지 뒤늦게 자신이 무성애자나 동성애자라는 걸 깨달은건지 (이 수준낮은 호기심이라니) 존 러스킨의 진심이 궁금은 합니다
2015.12.06 10:30
러스킨 본인은 여러가지 얘기를 했는데( 그 중 대박이, 당시 이상형으로 여겨졌던 그리스 조각과 진짜 사람 몸이 달라서 극도로 혐오감을 느꼈다고요…) 어떤 사람들은 이 얘기를 듣고 저 인간 소아성애자 아니냐 하기도 하지만 ( 구체적으로 사람 몸에 난 털들이 싫었다고 발언했거든요. 물론 머리카락 빼고…) 제게는 마치 성관계 자체가 하기 싫다는 걸로 들렸습니다. ( 이후로 10살 난 소녀를 사랑했다고 하는데, 정작 그 소녀에게 청혼을 한 건 10년 뒤, 그녀가 성인이 된 뒤라서요;; 물론 소녀 부모의 반대로 무산됐습니다만. )
그래서 저 양반은 무성애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구먼요. 그런데 무성애자들도 이성과 로맨틱한 관계를 상상하거나 사랑도 가능합니다. 다만 그게 '머리'로만 가능한 것이라 문제란 것이죠―,.― ( 저도 최근에 알게된 것이라 놀랍더군요@_@ )
2015.12.06 11:06
2015.12.06 15:08
2015.12.06 21:19
2015.12.06 22:21
2015.12.06 12:04
부인의 풀 네임이 "유페미아 '에피' 찰머스 그레이"라더군요.(...길다...o_o) 이 스캔들은 2014년에 다코타 패닝 주연으로 '에피 그레이'라는 영화도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에피와 결혼한 밀레유는 무려 슬하에 8남매를 두며 행복하게 살...긴 했지만 대가족 부양 + 에피의 사치스러운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해 엄청 바쁘게 일해야 했다는 얘기도 있더군요. 1860년대 이후 귀족들의 초상화 & 상업적인 작품을 많이 그린 이유도 가족 부양을 위해서였다고...=_=;;
2015.12.06 14:55
2015.12.06 15:24
사교계에서 왕따당하다시피 했으니 드레스나 보석을 매일같이 사들이진 않았겠지만, 태생이 귀족 집안 아가씨니 평소에도 먹고 입고 쓰는 건 고급으로 쓰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거기에 8명이나 되는 자식들을 고급스럽게 먹이고 입히려면, 막 사치부리지 않더라도 왠만한 수입으론 택도 없었겠죠 >_<;;
2015.12.06 17:20
2015.12.06 17:51
다른 사람과 혼동하신건 아닌지요. 에피 그레이 집안은 변호사와 투자가로 성공한 전형적인 부르주아인데다, 선대에 작위를 가진 귀족 조상이 있다한들, 작위를 물려받지 않은 한 귀족이 아니거든요. 게다가 자녀가 많아서 양육비로 살림살이가 어려운 것과 아내가 사치가 심해서 남편이 돈 벌러 다니기 급했다는 건 전혀 다른 얘기지 않나요?@_@
참고로 밀레이는 20대 초반의 화가 생활 초년에도 그림이 성공을 거두어서 첫 작품부터 꽤 기록적인 가격으로 작품들이 팔려나갔거든요. 이런 성공은 그의 생애 전반에 계속됩니다만. 이 사람이 돈 때문에 상업적 그림을 그렸다는 얘기도 지금 처음 듣거든요. ( 생애 후반에 젊은 시절 그가 그토록 혐오했던 아카데미 미술 경향으로 기울어진 건 순전히 밀레이의 보수적 성향 때문이었구요. 애초에 라파엘 전파 형제회 자체가 반동적 성격을 지닌 보수파이기도 했지만.)
게다가 저 시절 여자가 사치스럽다는 얘기는 새 드레스와 보석이 계속 필요한 파티광들한테나 하는 얘긴데, 앞서 말씀드렸지만 에피는 결혼 이후 40년간 상류사회에서는 왕따 신세였거든요. 대체 어디서 남편이 돈 벌어다 바쳐야 할 정도로 사치스러웠다는 얘기를 들으셨는지요? 작년 개봉한 영화에 그렇게 나오나요?@_@
2015.12.06 12:08
저는 밀레유 그림 중에 이 그림이 참 좋아요. 밀레유에겐 아가씨들을 참 예쁘게 그리는 엄청난 능력이 있습니다 +_+
2015.12.06 14:56
2015.12.06 12:57
2015.12.06 14:57
2015.12.06 18:21
아....재밌는 글 잘 읽었습니다!
2015.12.06 18:26
상관없는 얘기지만 저희집 개는 입대후 백일만에 휴가 나온 남동생을 벌써 잊어버렸는지 모르는 사람 보듯이 생까버렸지요. 오랜만에 만난 가족 알아보는 것도 머리 좋은 개만 가능한가봅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