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포) [탈주]의 구교환을 보고

2024.07.11 17:04

Sonny 조회 수: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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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교환의 군인 역할은 벌써 몇번째일까. 그가 처음으로 대중에게 눈도장을 찍었던 건 [반도]의 서대위 역할이었다. 서대위에게는 부대를 호령하는 카리스마 대신 만성적인 불안과 우울이 더 도드라졌고 뭘 할 지 모르는 예측불가성이 있었다. 그 다음에는 [모가디슈]에서는 북한쪽 태준기 참사관을 연기했다. 태준기는 남한사람인 우리가 상상할법한 북한사람의 꼬장꼬장함과 울분이 있었고 그래도 제 식구를 챙기는 인정과 마지막을 향해 돌진하는 패기가 있었다. 이제 남한의 청년들이 모두 열광하는 드라마 [디피]의 호랑이 열정 한호열이 있다. 그의 뺀질거림과 적당한 타협이 얼마나 근사했는지는 생략하기로 한다. 그리고 네번째, 구교환은 [탈주]에서 북한국 부위부 소좌 리현상을 맡았다.

구교환이 군인 역할을 많이 맡았다는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가 군인 역할을 반복해서 맡는데 그것이 늘 신선하다는 것이 훨씬 더 핵심이다. 한명은 우울증 환자, 또 한명은 성실한 공무원, 또 한명은 도리를 아는 뺀질이, 또 한명은 고뇌하는 사냥개다. 그 어떤 캐릭터에서도 그의 능글맞음과 예민함은 늘 발견되지만 그것이 결코 동어반복으로는 느껴지지 않는다. 군인을 추적한다는 같은 업을 맡고 있음에도 한호열에게서 타의적 근면함이 있다면 리현상에게서는 계급적인 응징욕구가 느껴진다. 다른 캐릭터들이 그렇듯 구교환의 군인 캐릭터도 계속 "변주"된다.

그가 맡은 캐릭터들에는 왜 이렇게 군인이 많을까. 그것은 그 캐릭터들과 뜻하지 않게 인연이 닿은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군인이라는 캐릭터가 구교환의 연기를 더 빛나게 하는 역설적 장치처럼 느껴진다. 군인은 본래 규율에 종속되어있고 다른 직업보다 부자유가 훨씬 더 많을 수 밖에 없다. 그것은 군인이란 직업이 본질적으로 폭력을 다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이 배우 구교환의 무언가를 계속 자극하는 설정은 아닐까. 자유롭고 싶고, 때로는 일탈도 하고 싶은데 그것이 근본적으로 억눌려있는 상황에서 그는 종종 캐릭터를 통해 폭력을 터트리곤 한다. 그래서 구교환의 군인은 늘 보는 사람을 긴장시키곤 한다.

군인에 종사한다는 것은 자신의 부자유를 담보로 곧 규율에 종속되는 과정이다. 동시에 그 결과물인 권력으로 타인을 복속시키려하는 게 군인이다. 모두가 얽매여있어야한다는 이 부조리를 자해하듯이 그려내면서, 거기서 탈출하려는 과정의 스트레스를 이렇게 표현하는 다른 배우가 또 있을까. 군복을 입은 채 웃고 있는 얼굴, 굳은 얼굴 뒤로 문득 스쳐지나가는 그 억압의 스트레스가 가끔씩 예리하게 빛난다. 아마 [탈주]는 군복을 입은 구교환에게 가장 온전한 권력과 제일 강한 부자유를 동시에 쥐어주고, 자해하기 직전의 그 에너지를 분출시키는 그런 영화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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