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정의로운 목소리

2019.09.26 22:18

Sonny 조회 수:955

가난에 대한 어느 남초 커뮤니티의 글이 여기저기서 회자되고 있더군요. 저는 그 글을 제대로 읽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해당 커뮤니티에서, 그가 강남역 살인사건에 대해 쓴 글을 당시 읽었기 때문이죠. 그는 그 사건에 대해 여자의 공포를 이해하지만, 남자도 남자만의 공포가 있다는 글을 올렸습니다. 아주 정성스럽게 본인의 경험을 곁들이고 온갖 고뇌를 붙여서요. 저는 그와 지독한 키배도 몇번 했었지만 그 때마다 저는 프로불편러 아니면 트집쟁이로 싸몰렸었습니다. 저도 그를 어쩔 수 없는 진보메일로 분류했었습니다. 그 다음부터 저는 그가 무슨 글을 쓰고 댓글을 쓰든 구석이 부숴져있는 담벼락을 보는 기분이 듭니다. 그를 기억하다보니 또 다른 댓글도 생각나네요. 여자들의 생리통이 아직도 이렇게 만성적인 이유는 남자가 생리통을 겪지 않아서 그렇다는 남성중심적 의학계를 비판하는 글에, 뇌부터 고쳐야 한다는 댓글을 달았던가...

그는 제게 "좋은 글을 쓰는 남자"의 표상입니다. 통찰력이나 문장력에는 저도 늘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젠더이슈만 가면, 그는 해묵은 아저씨처럼 굴곤 했습니다. 그 때는 정말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왜 알 거 다 알고 뻔히 보이는 현실을 저렇게 애써 부정하며 안티 페미니즘의 선봉에 설까. 그는 아니라고 하고 싶을 겁니다. 하지만 그는 올바른 페미니즘을 찾는 수많은 남자들과 별로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다른 분야의 지식과 통찰력이 아무리 정교해도, 젠더 이슈에서는 기어이 나무위키 수준으로 전락해버리는 그를 이제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는 정말이지 정의당 같은 인간입니다. 저는 저런 남자들이 계급투쟁에 얼마나 절실한지는 알아요. 그건 진짜입니다. 그런데 희한하게 여성이슈만 그 투쟁에서 쏙 빠져있을 뿐.

그 글이 얼마나 훌륭할지 저는 논평할 계제가 안됩니다. 그러나 감정적으로 그의 글을 중립적으로 읽는 게 불가능합니다. 그러면서 감히 생각해봅니다. 왜 여자들은 남자를 용서하지 못하는지 알 것 같다고. 여성을 비켜나가는 남자의 정의롭고 훌륭한 목소리에, 저는 욕지기부터 올라옵니다. 아주 많은 남자들이 세계 전반에 대한 사색과 분석은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 세계의 절반을 채우는 여성의 현실과 이를 왜곡하는 의견에 대해서는, 놀라울 정도로 무관심합니다.

그냥 기분이 좀 이상하네요. 제 기분과는 무관하게 좋을 글이겠지만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32866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51912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62312
110072 유머사이트 오늘의 유머가 유해사이트로 지정되었군요. [14] MK 2012.10.18 3764
110071 구미에서 불산누출 2차 피해가 확산 중입니다 [5] 유우쨔응 2012.10.04 3764
110070 계란 우동 [5] 가끔영화 2012.10.01 3764
110069 [바낭] 종로에 파파이스가 생겼습니다 + 청문학원 앞 매운 떡볶이는 어디로? [18] 정독도서관 2012.07.10 3764
110068 지금 팥빙수 먹으면서 닥터진 보는데 [11] 오명가명 2012.05.26 3764
110067 뉴욕 김미커피 Gimme Coffee [2] beirut 2012.01.09 3764
110066 [사회뉴스]박원순시장 폭행한 후 박모 여인한 말은? [13] EEH86 2011.11.15 3764
110065 (상담요) 모르는 여성분이 집 앞에서 기다리고 따라다니는데, 저도 두근두근하면 스토킹은 아닌거죠? [26] 걍태공 2011.10.28 3764
110064 김새론 폭풍성장 [5] 사과식초 2011.11.28 3764
110063 강호동씨 아직 공식적인 얘기는 없네여 [10] 감동 2011.08.12 3764
110062 [조카 이야기] 아이가 그동안 도도한 척해야 했던 이유를 듣고. [19] 폴리리듬 2011.04.07 3764
110061 항아리 짬뽕 [2] 메피스토 2011.01.18 3764
110060 카키색이란 무슨 색인가? [15] Johndoe 2010.12.14 3764
110059 요즘 수리 [8] 가끔영화 2010.10.01 3764
110058 세바퀴 ;p [17] run 2010.08.07 3764
110057 냄비를 자꾸 태우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18] underground 2016.06.22 3763
110056 구자범 사건 [8] 잘살아보세~ 2015.02.23 3763
110055 한국 자영업자들이 어렵나 보네요 [12] 바다모래 2015.02.05 3763
110054 리들리 스콧 감독의 일본 들여다 보기 - 블랙레인(1989) [4] 무비스타 2014.03.04 3763
110053 끝나지 않는 타이타닉,잭과 로즈 같이 살수 있었다 [14] 가끔영화 2012.10.09 376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