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18 00:17
서해에 있는 작은 섬이예요.
대천항에서 배로 한시간 반이면 도착하는 곳인데 장구를 닮아서 이름이 장고도라고 합니다. 길쭉하게 생기긴 했다만 장구같지는 않던데 말이죠.
여름 휴가철이 지났지만 아직도 낮이면 땀이 살짝 솟는 날씨인데다가 햇볕도 쨍하니 맑아서 좋았습니다. 일박에 8만원을 받는 방치고.. 잠자리는 불편하지, 주방시설은 열악하지.. 주위에는 아무것도 없고 심지어 회 한접시 먹을 식당조차 없는 작은섬인데 이런데를 누가 오고 뭐하러 오나 싶을 것 같기도 한데.
오히려 그 불비하고 부족한 여건속에서 새록새록 재미가 있더군요.
의외로 나무가 풍부한 섬 주변을 산책도 하고 땀이 솟은 이마를 훔치다가 바다를 보면 숭어떼가 튀어오르고.. 방파제에서 낚시를 던지면 작은 망둥어 비슷한 것들이 물기도 하는데다 광활하게 빠지는 뻘에는 온갖 생명들이 잔치를 벌이더라구요.
이틀만에 섬에 적응한 아내는 다음에도 또 오자고 하는데.. 그 손에는 박하지라는 민꽃게가 대롱대롱 들려있습니다. 익숙하게 잡을때까지 시간은 걸렸지만 도시에서 볼 수 없는 생명들이 넘실대는 바다는 그 자체로 놀이터요 힐링의 공간이었어요.
처갓집이 낙도 혹은 심심 산골이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끔씩 가져 보았어요. 도시에서 나고 자라 똑같은 풍경에만 익숙해져 있던터라 말이죠. 어쩌면 처갓집은 아니지만 서해의 작은 섬 하나가 마음에 품어 두었다가 가끔씩 꺼내보는 휴식의 장소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게시판은 조국 법무부 장관 문제로 여전히 시끄럽고 사우디 정유시설을 폭파한 드론이 예멘의 소행인지 이란의 소행인지를 두고 또 복잡한 모양이던데.. 그 아웅다웅 시끄러운 사람들 다 모아다가 뻘밭에서 바지락이나 캐게 하고 싶네요. 마음이 좀 유순하고 푸근해 지게 말입니다.
아직도 배를 타면 세월호 생각이 납니다. 그 안타까운 생명들의 명복을 빌고 싶은 밤이네요.
2019.09.18 02:22
2019.09.18 08:54
하루키 선생 글은 담백한데 씹을수록 묘한 맛이 난단 말이죠.
2019.09.18 08:07
세월호의 ptsd는 전국민적인 거지요. 제 형제 중에 아직도 배를 못 타는 사람이 있어요. 보통의 도시 사람은 배 탈 일이 별로 없으니 생활에 큰 문제는 없겠지만
바닷가 출신이고 바다를 좋아해서 잠시 방문하는 목적으로는 퍽 좋아합니다. 어느 쪽으로 돌아앉아도 바다가 보이니까요. 갈 기회는 잘 없지만요. 다만 섬의 무시무시한 물가는(물자를 들여오는데 추가 비용이 들테니 왜 그러는지 이해는 하지만서도) 별로 좋아할 순 없습니다. ㅠㅠ
2019.09.18 08:55
이번에 간 섬은 지하수도 맛있고 둘레길도 제법 좋았고 갯벌이 광활해서 더 좋더군요. 먹을걸 바리바리 싸갔더니.. 딱히 살인적인 물가를 느낄 기회도 없었어요. 불편한 잠자리가 제일 거슬렸는데.. 다음에는 자충식 에어매트라도 들고 가면 해결될 문제이긴 합니다.
섬이라는 공간이 주는 경험은 그 섬이 얼마나 큰지 얼마나 아름다운지에 상관 없이 모든 섬들이 다 특별하죠. 심지어 ‘비행기’보다 평범하지도 일상적이지도 않은 배라는 교통수단을 이용해야만 하는 하고 섬으로의 여행은 바로 그 배에서부터 시작되는 것도 특별하죠. “당연한 얘기지만, 섬은 어디 다른 곳에 가는 길에 훌쩍 들르듯 방문할 수 없다. 작정하고 그 섬을 찾아가든지, 아니면 영영 찾지 않든지. 둘 중 하나다. 중간은 없다.”. - 무라카미 하루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