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델의 증명'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서평은 아니고요. 이 책 읽고 제가 괴델의 증명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예전에 괴델 어쩌구 하는 글을 듀게에도 썼고 다른 분들이 댓글로 그 이해가 틀렸다는 말도 남겨주셨는데 그 때는 이해하지 못했죠. 다시 그 글 읽어보니 창피하더라고요. 그러면 이제 나는 괴델의 증명에 대해 완벽한 이해를 얻었냐, 아니죠 어림 없죠. 저는 그 기본이 되는 기호논리 같은 데 전혀 지식이 없는걸요. 운이 좋으면 나중에 제 실수를 또 깨닫는 정도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괴델의 증명을 읽고 나서 떠오르는 어설픈 영감을 제 논리의 근거로 할용하고 싶은 욕구를 참을 수가 없어요. 

 

예를 들어, 18세기 뉴턴을 읽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처음 접한 시인이 있다고 칩시다. 그 과학적 발견에 깜짝 놀라 새로운 시각을 얻고 이런 식으로 외칠 수 있겠죠.

"사람들이여 뉴턴에게 귀기울이라. 세상 만물이 서로를 끌어당기는 것이 우주의 법칙이다. 그러니 우리 모두는 얼마나 서로가 서로를 간절히 가까이 두고 싶어하는 존재인가!"

이런 비유까지는 괜찮겠죠? 그런데 그 시인이 정색하고 인간이 사회적 존재라는 글을 게시판에 쓰며 뉴턴을 들먹거리면, 그 시인이 뉴턴을 잘못 이해했다고 봐야겠죠.

 

만약에 누가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를 읽고 회사 회의 시간에 이런 말을 하면 어떨까요.

"우리 회사가 모든 걸 확실하게 파악하고 움직이겠다고 하는 건 아무 것도 안하겠다는 말과 똑같습니다. 불확정성의 시대라고요!"

 

역시 비유라는 걸 알지만, 어쩌면 저 논리의 일부분이라도 하이젠베르크가 증명해 줬다고 믿고 싶은 마음이 조금 들기도 해요. 제가 만유인력을 이해하는 것보다 훨씬 낮은 수준으로 불확정성의 원리를 이해하고 있어서 그럴 거에요 아마.

 

 요새 EBS에서 정의란 무엇인가 하버드 강연 하거든요. 그거 보면서 어떤 가치체계든 몇 개의 원칙을 공리로 두고 끝까지 밀어붙이는 식으로 세상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가 없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공리를 통해 사고하되 항상 그것을 다시 조망하는 지혜라는 애매한 개념이 있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요. 그런데 괴델의 증명을 읽고 나니 마치 괴델이 제 주장을 지원해주는 듯한 생각을 품게 된다는 거에요. 옳은 명제가 있더라도 정합한 공리 체계가 그것을 증명할 수 없을 수 있다. 상위 개념을 가져다 와서 봐야 한다 뭐 이런 부분에서요. 이렇게 생각하는 거, 근본부터 잘못된 걸까요? 


상대성 이론이니, 양자역학이니, 비트겐슈타인이니 이런 것들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면서도 자꾸 듣다보면 왠지 아는 것 같은 기분이 들잖아요. 거기서 뭔가 영감이랄까 세상을 보는 틀을 얻은 것 같은 기분도 들 때가 있고. 실제로 영감은 줄 수는 있는 건데, 그걸 기반으로 어떤 논지를 펼쳐나가고 싶은 욕구는 참아야 하는 건지. 그럼 거꾸로, 비전문가가 저런 것들에 대해 시간을 내어 일부라도 이해해보려 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도 들고, 그러네요. 횡설수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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