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8.27 15:45
1. 뒤늦게 티비 시리즈 '한니발'을 띄엄띄엄 보고 있어요. 이 시리즈는 글렌 굴드의 골드버그 베리에이션을 떠올리게 하지요. 윌 역할을 맡은 휴 댄시를 보면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느끼게 됩니다. 단정한 얼굴에 단정한 몸. 삼십대로 보이는 그 몸은 삶 그 자체로 가득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보는 범죄현장은 죽음으로 가득합니다. 시체들을 늘어놓은 모양도 기묘합니다. 마치 알렉산더 맥퀸의 드레스나 HR 기거의 에일리언 그림을 보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삶과 죽음의 이 허무한 아름다움은, 바하의 엄정한 음률 속에서 마치 하나인 것처럼 보이죠.
https://youtu.be/Cwas_7H5KUs
2. 한동안 알렉산더 스카스고드에 빠져서 이 사람 작품을 찾아봤습니다. 생각보다 작품이 많이 없어요. '타잔', '트루 블러드', '애프터매스', '제너레이션 킬', '빅 리틀 라이즈', '더 킬 팀', '리틀 드러머 걸', '틴에이지 걸의 일기', '허밍버드 프로젝트', 'What Masie Knew' 정도. 몇 개 없죠. 더 빠졌다가는 스웨덴 어 배울 뻔 했습니다.
3. 드뷔시의 아라베스크입니다. 한 시간 짜리예요.
2019.08.27 16:32
2019.08.31 18:09
<한니발>은 저도 뒤늦게 봤는데 적어도 시즌1은 정말 아름다웠어요. 윌에게서 삶을 느꼈다는 겨자님의 감상과 어쩌면 같은 것일지도 모르지만 저는 윌에게서 죽어감을, 한니발에게서 죽음을 느꼈어요. 두 사람을 둘러싼 주변 인물들도 마치 모두 죽어가고 있거나 이미 죽은 것 같죠. 그래서 결국 이 드라마 전체가 삶보다는 죽음에 관한 것 아닌가 싶다가도, 애비게일을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았어요. 이 드라마에서 삶이란 마치 애비게일 한 명에게만 주어진 것처럼 느껴졌어요.
윌과 한니발, 두 사람을 성별을 초월한 동반자로, 서로에게 들어맞는 단 하나의 퍼즐 조각으로 보는 해석이 많았는데, 그렇게 본다면 애비게일은 두 사람의 자녀일 테죠. 평범한 사람들이 모두 살아가는(=죽어가는) 동안 자녀를 양육하거나, 또는 그렇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우리 모두는 죽어가고 있거나 이미 죽은 것이고, 그 결과물(자녀든 다른 사람이든)만이 살아 있는 것이겠죠.
이곳은 원래 영화게시판이었다는 것을 환기시켜 주는 게시물이 반가워서 덧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