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21 09:08
- 작년 영화인데... 개봉은 안 하고 vod로만 나왔습니다. 애초에 극장용이 아니었던 건지 코로나 때문에 vod로 직행한 건지는 워낙 듣보 영화라 정보가 없어서 모르겠고. 런닝타임 100분. 스포일러는... 뭐 그런 게 불가능한 이야기인 것인데요. ㅋㅋㅋ
(스필버그의 '듀얼' 생각나는 포스터이고 실제로 초반 분위기는 약간 비슷합니다.)
- 한 여성이 본인 차에다가 조그만 짐차(?)를 달고 어딘가로 떠납니다. 엄마랑 통화하는 걸 보면 근래에 안 좋은 일이 있었던 듯 싶구요. 울창하고 깊은 숲을 오밤중에 달리는데, 차 하나가 길을 가로 막고 서 있어요. 그리고 비교적 깔끔한 차림새이지만 배우 덕에 완벽한 레드넥의 포스를 풍기는 아저씨가 좀 도와달라는데, 주인공은 걍 겁을 집어 먹고 튀어요.
그러다 주유소에 잠깐 들렀는데 아까 그 아저씨를 또 만나고. 또 걍 부랴부랴 도망치고. 여기까진 주인공이 좀 너무한다 싶었지만 잠시 후 타이어 펑크가 나서 길에 차를 세우고 나서 보니 누가 칼로 타이어를 찢어 놨네요. 당연히 바로 아까 그 놈이 또 나타나고, 이번엔 본색을 드러내고 할 일을 합니다. 여자를 기절시키고 납치한 후 외딴 오두막 지하에 가둬 놓는 거요. 이제 어떻게든 여기서 탈출해야 하고, 쫓겨야 하고, 몸싸움 하다가 본인도 다치고 변태놈한테 데미지도 주고 하면서 둘이서 알콩달콩 남은 런닝타임을 채워주겠죠.
(제가 보는 미국 영상물의 레드넥 빌런 역할은 다 독점해버릴 기세의 우리 '마크 맨차카' 배우님.)
- 저어어엉말 소품입니다. 대사도 있고 뭔가 역할이란 게 있는 캐릭터는 주인공, 변태, 그리고 한 명 정도. 일단 납치 당한 후 부터는 그 숲에서만 이야기가 전개되므로 엑스트라도 필요 없구요. 뭐가 화려하게 터지고 이런 것도 전혀 없어요. 차 한 대 뒤집히는 정도가 최고 스케일 액션 장면이었던 듯. 거기에다 하룻밤&낮동안 벌어지는 일이라 등장인물들 옷 갈아입을 일도 없고 그렇네요. ㅋㅋ
그런데 숲을 배경으로 잡아 놓고 이걸 꽤 잘 활용합니다. 울창한 숲의 모습을 안에서, 위에서 잡아주며 스펙터클한 느낌을 주고요. 또 숲을 가로지르는 강이라든가, 한밤중에 내리는 비라든가... 이런 요소들을 활용해서 역시 제작비 덜 들이고도 때깔도 챙겨주고 주인공의 고생도 다양화해주고 그렇습니다. 소품이지만 나름 성실하게 머리를 굴린 영화에요.
(우먼 vs 와일드 & 싸이코)
- 이야기 전개는 그냥 너무 전형적이라서 별로 딱히 언급할만한 게 없어요. 잡히고, 풀려나고, 쫓기고, 충돌하고, 다시 쫓기고, 여차저차하다 최후의 일전. 뻔하죠. 그리고 말했듯이 다른 등장 인물들도 없고 인물 설정들도 아주 단순해서 특별한 드라마 같은 건 없습니다. 그저 살아남으려는 주인공의 몸부림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이야기인데. 앞서 말했듯이 변태가 등장하지 않는 장면에서도 자연을 활용해서 이런저런 고난을 안겨주는 등 나름 지루하지 않게 잘 짜여져 있긴 합니다. 역시 뭐 특별할 건 없지만요.
(대자연은 무료입니다 여러분!)
- (돈은 없지만) 때깔 괜찮고, 기술적으로 흠 잡을 데 없으며 이야기도 무난하지만 전반적으로 그냥 다 무난무난하기만 한 가운데... 칭찬할 부분이 있다면 일단 배우들입니다. 주인공 역을 맡은 줄스 윌콕스란 분은 전 모르는 분인데 괜찮습니다. 걍 적당하게 현실적인 느낌을 주는 미모랄까요. 이게 딱히 '여전사'가 활약하는 이야기도 아니고, 평범한 느낌이 중요한 캐릭터인데 외모상으로도 어울리고 연기도 무난하게 괜찮았어요. 나름 좀 비현실적 느낌의 마지막 사투도 악에 받친 표정과 연기 좋았구요.
그리고 중요한 게 그와 합을 맞춰야 하는 빌런님이신데... '오자크', '아무도 살아서 나갈 수 없다'의 그 분이 또 등장하셔서 아주 적절한 연기를 보여주십니다. 특별히 카리스마 쩔거나 특별히 악마 같거나 그럴 필요가 없는, 그냥 만만한 여자들 쥐어패고 나쁜짓 하는, 그러면서 자기는 뭐 완전 세고 강한 척하는 현실적 변태남 캐릭터거든요. 연기 아주 적절했습니다. 요즘 이 분 자꾸 여기저기서 보여서 이러다 정들지도... ㅋㅋㅋㅋ
(특별히 연기력 뽐낼 건 없는 역이지만 무력하고 불쌍한 상황부터 꼭지 돌아 갸아악! 하고 달려드는 상황까지 자연스럽게 잘 해내셨습니다.)
- 뭐 더 길게 말할 게 없네요 진짜.
저엉말로 아무 야심 없는 작품입니다. 저예산, 뻔한 스토리, 뻔한 캐릭터를 갖고 뻔한 영화를 만드는데 다만 그걸 나름 탄탄하게 만들어보려고 애쓴 작품 정도.
너무 극단적인 폭력 장면으로 부담 주는 건 없으면서 대체로 긴장감도 적절하고 마지막 장면의 카타르시스 같은 것도 좋구요.
영화의 완성도 자체는 상당히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인간적으로 스토리가 너무 무난하기만 해서 영화의 존재감이 없다는 게 아쉽습니다.
감독이 언젠가 더 괜찮은 각본과 기획, 더 많은 예산을 만났을 때를 기대해 보겠어요.
+ 감독의 이름이 존 하이암스. 어라? 하고 확인해보니 피터 하이암스 아들 맞네요. 아들 크로넨버그도 그렇고 요즘엔 또 이렇게 뭘 이어받는 게 유행인가요. 조니 뎁 딸도 배우 활동 열심히 하는 중인 것 같고 리들리 스콧 딸도 영화 하나 만들었고. (더 이상은 안 만든다고 합니다만) ㅋㅋ
암튼 아빠 이름을 오랜만에 들으니 갑자기 아빠가 만들었던 '타임캅'이 보고 싶어졌어요. 뭔 얘길지 궁금했는데 어렸을 때 못봤거든요.
++ 참고로 장르와 스토리상 어쩔 수 없이 주인공이 당해야할 폭력은 나름 최저 수준을 유지합니다. 이것도 요즘 트렌드 같아요. 여성이 고생하는 스릴러 영화들에서 여성이 당하는 피해를 과도하게 잡지 않는다. 그러니까 여성 캐릭터 착취를 피하는 게 요즘 이런 스릴러/호러 영화들 경향이죠. 결말도 다 비슷비슷하게 '사이다' 엔딩이구요.
근데 이게 처음엔 좀 신선하고 바람직하게 좋아 보였는데, 또 대부분의 영화들이 비슷비슷해지니 그것도 좀... 그렇네요. 뭐 보고 나서 찜찜하고 더러운 기분 안 남는 건 참 좋습니다만.
+++ '아무도 없다'라는 번역제는 나름 적절한 것 같은데 제가 근래에 봤던 '아무 일도 없었다'가 생각나서 그냥 좀 웃기구요.
원제는 심플하게 그냥 'Alone' 인데 같은 해에 나온 'Alone'이라는 제목의 호러/스릴러가 두 편이 더 있어요. 'You're not alone'도 있던데 이제 'We're all alone'만 나오면 될 듯.
2021.10.21 10:00
2021.10.21 10:46
아니 이 영화를 보신 분이 계실 줄은!! 전 올레티비 vod로 봤는데 진짜 아무 정보 없이 공포 영화 카테고리를 쭉 훑다가 그냥 포스터 이미지가 괜찮아 보이길래 아무 생각 없이 틀었거든요. 무플 예상하고 쓴 글인데 이렇게 보시고 달아주는 댓글이 달리니 매우 행복합니다. ㅋㅋㅋㅋ
맞아요 참 별 거 없이(?) 잘 만들었더라구요. 뭐야 이거 너무 뻔한데 뭐 특별한 거 없어? 이러면서도 걍 즐겁게 시간 보냈습니다. 특히 마지막 결전 직전에 주인공이 하는 행동이 맘에 들었어요. 내가 이 싸움에서 지든 이기든 어쨌든 넌 끝장이야... 라는 느낌이 좋더라구요. 하하.
릴리 콜린스는 '맹크'로 존재감을 인식하고 호감이 생겼는데 ('옥자'에선 잘 기억이...;) 불행히도 '에밀리 파리에 가다'가 제가 좋아할 성격의 시리즈가 아니어서 아직 안 봤네요. 장르 편식이 이렇게 해롭습니다 여러분!
2021.10.21 12:02
전 로이배티님을 만나뵌적도 없고 안다고 말할수도 없지만, 쓰신 리뷰들 읽어보면 저랑 취향이 대략 90% 비슷하다고 생각되는데, '에밀리 파리에 가다 즐감하신다에 500원 겁니다. 롬콤의 외피를 걸치고 있지만 미국에 적대적인 프랑스 회사에 파견나온 미국 처자의 고군분투 살아남기 이야기입니다. 해외 생활하면서 느낀 몇년 동안의 고독과 이해한지 못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기 위해, 상대를 알아가고 상대에게 내가 누군지 알아가게 해나가는 잘 만든 드라마에요. 좀 천진난만한 감이 없지 않지만 롬콤에서, 그리고 이 처지의 천진난만한 얼굴에서 그 정도 긍정성이 없이 어찌 한 시즌을 끝까지 달리게 하겠습니까?
2021.10.21 15:13
ㅋㅋㅋ 사실 전에 듀게에서도 좋게 평한 글 여럿 봐서 찜은 해 둔 상태이긴 합니다. 근데 근래에 올레tv 영화 목록을 다 훑으며 작성해 둔 리스트 때문에... 뭐 언젠간 보게 되겠죠. 로맨스도 싫어하지는 않아요. 호러 스릴러를 더 좋아할 뿐.
이게 한국에서는 왓챠로 풀렸군요. 여기서는 넷플에서 한 2주전쯤 풀렸는데, 한글 자막이 없어 한국 넷플에 안 올라갔으리라 짐작했어요. 그래서 로이배티님께 리뷰 요청을 못했는데, 이렇게 보시고 리뷰 올려주시니 그저 고맙게 덥썩 받아 읽었습니다.
제가 집중력이 약해 영화를 한번에 안끊고 못보는데, 이 영화 의외로 히든 젬이었어요. 몰입해서 쭉 보았습니다. 저 레드넥 아저씨 전 이미 정들어 팬입니다. 발성이 되게 좋아요. 웅얼웅얼 궁시렁 걸리는데 이상하게 잘 들리는 목소리. 그래서 팬심에 저 분에 몰입하느라, 열쇠를 구멍에 남겨놓고 가지 말란 말이다 외치기도 하고 나무기둥에 튀어나온 못보며, 파상풍 주사는 맞아놓고 이 나쁜 짓을 하는가 염려도 해주고, 감자튀김 씹어가며 재밌게 1시간 반 보냈습니다.
2세 연예인 하니 '에밀리 인 파리스'의 릴리 콜린스 제가 예전부터 미는 배우요. 필 콜린스 딸인데, 어찌 하나도 안닮은... 봉준호의 옥자에서부터 거참 눈썹 희한하네 하며 챙겨보는 배우인데, BBC 드라마판 레미제라블에서 퐁틴 연기하는거 보면서 팬심 굳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