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28 00:29
포스터가 망쳤다는, 혹은 시대를 너무 앞서 갔다는 비운의 명작 <김씨 표류기> 봤습니다. 국내에서 흥행 실패한 것에 비해 오히려 해외 한국영화 팬들로부터 재평가 된 영화라고도 하더라고요. 이해준 감독의 2009년 작품으로, 그의 데뷔작 <천하장사 마돈나>가 그랬듯, 소외된 비주류에 대한 따뜻하고 유머러스한 시선이 느껴지는 영화였습니다.
(아, 개인적으론 <천하장사 마돈나>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건 김윤석 배우입니다. 이 영화에서 처음 봤는데 배우가 아니라 진짜 주정뱅이 폭력배를 데려다 놓은 줄.. 너무 리얼해서 충격 받음..)
‘남자 김씨’ 정재영은 사채 빚을 못 갚아 한강 다리에서 뛰어내립니다. 눈 떠보니 저세상이 아닌 한강 밤섬.. 죽지도 못한다고 자책하며 물속으로 다시 뛰어들어 보지만, 허우적대다 겨우 고개를 내밀면 수영도 못한다고 다그치던 어릴 적 아버지의 모습. 또 허우적대다 숨 좀 쉬려고 보면 이번엔 토익 700점 밖에 안되냐고 다그치는 면접관들의 모습. 또 그 다음엔 무능력을 질책하던 구 여친의 모습. 그리고 그런 그를 유혹하던 ‘해피 앤 캐시'까지.
여차저차 결국 죽는 것도 잘 되지 않은 김씨는, 무인도(?)에서 일단 살아 보기로 결심합니다.
'연이자 6프로, 주택청약적금 7년 만에 드디어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룹니다.
오리가 나를 품습니다.
나는 미운 오리 새끼입니다.
백조가 아닌 백수가 된 그냥 미운 오리 새끼.'
놀랍게도 그런 김씨를 지켜보는 한 사람이 있었으니, 은둔형 외톨이인 ‘여자 김씨’ 정려원입니다. 나름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본받을만한 부분이 있는 히키입니다. 기상과 취침시간, 식사량에 있어 일정하며, 제자리 걸음으로 하루 만보 운동량을 채웁니다. 정해진 시간에 가상 세계로 출근하여 자기 계발에도 힘씁니다. 싸이월드(아.. 추억의ㅋㅋ)를 꾸미며 그 안에서는 자신이 되고 싶은 사람이 되는 거지요.
그녀의 바깥으로 향한 유일한 취미 생활은 달 사진 찍기로, 어느 날 그 사진기로 남자 김씨의 밤섬 자연인 생활을 포착하게 됩니다. 변태 외계 생명체로 추정되며 짜장면에 큰 관심을 가진 것으로 보이는 그에게, 여자 김씨는 메시지를 보내 보기로 중대 결심을 합니다. 종이 귀퉁이에 조그마하게 적은 그녀의 메시지는, 꼭 오노 요코의 설치미술 작품 속 ‘YES’를 연상하게 합니다.
도시 속 섬에 갇힌 외톨이들, 그들이 서로를 알아본 것처럼, 나를 문 열고 뛰어 나가게 해줄 희망도 어딘가에는 존재할까? 동화 같은 구원의 손길은 없을 지라도, 짜장면 한 그릇의 희망은 작지만 위대하게 늘 우리 주변에 존재하겠지요. 흔한 B급 코미디 같은 포스터 때문에 오해받고 말았지만 <김씨 표류기>는 현대인들에 따스한 위로를 건네는 영화입니다. 근데 이동진 평론가가 ‘잘 만든 단편 하나와 평범한 단편 하나를 연이어 보고난 느낌(6.0/10)’이라고 한줄 평 했더군요. 음..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마무리가 약한 느낌이었던 걸까요..
2019.09.28 00:41
2019.09.28 00:51
이상하게 재밌는ㅋㅋㅋ
2019.09.28 01:24
2019.09.28 13:44
2019.09.28 11:05
정말 재미있다고 사람들에게 추천했던 기억이 있네요.
정려원의 생활이 부러웠어요. 히키코모리의 생활이라 할수 있겠죠.?
2019.09.28 13:50
네. 방에서 한강 보인다고 정려원은 금수저 히키라는 분석도 있더라고요.ㅋㅋ 십년 전엔 아직 우리나라에 히키코모리 개념이 보편적이진 않아서 영화가 망했다고도 그러고.
2019.09.28 20:50
2019.09.28 20:57
저는 짜파게티하면 환상의 커플요
2019.09.29 0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