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27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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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저는 한겨레 신입기자였어요. 거의 매일같이 대한문 앞에 차려진 대통령님 분향소를 나가 취재를 했고, 봉하마을도 수시로 내려갔지요. 어떤 분들은 제가 한겨레 기자(노무현 대통령이 한겨레신문 주주)라는 이유로, 저를 붙잡고 눈물을 흘렸어요. 당황스러웠어요. 저는 같이 눈물을 흘려드리고 싶었는데 눈물이 안나는 거예요. 왜냐면, 감정이 복잡했거든요. 전직 대통령이 비리 혐의 수사를 받다가 스스로 모든 책임을 지고 선택한 불행이기 때문에 눈물이라는 감정은 제게 솟구치지 않았어요.
봉하마을에 내려가 일주일 넘게 취재를 벌이다가 시간이 나서, 노 전 대통령이 산책을 자주 하던 마을 뒷산을 차분히 걸었어요. 대통령님과 작정하고 마음속 대화를 했어요.
'대통령님. 저는 당신을 되게 원망했어요. 어떻게 재임중에 그렇게 하실 수 있어요? 미국이 벌인 이라크 전쟁 따위에 왜 우리 젊은 장병들을 보내어 목숨을 위태롭게 했어요? 당신 때문에 저와 삼촌같이 지내던 허세욱 아저씨가 돌아가셨어요.(※한미 FTA 체결을 반대하며 분신 자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파업하면 왜 그렇게 잔인하게 탄압했어요? 왜 그렇게 공기업 민영화를 많이 해서 일자리를 불안하게 만들었어요? 그런데 대통령님. 솔직히 전 왜 당신이 밉지 않은지 모르겠어요. 저도 이런 제가 혼란스러워요. 부디 좋은 곳으로 편히 가세요. 후세대에게 사람사는 세상을 물려주는 건 이제 저희들 몫이 되었어요.'
이어 깨달았어요. 노무현 대통령은 그냥 전직 대통령이 아니라, 우리 사회 개혁 열망의 상징이자 총체라는 것을. 기대했던 게 컸으니 실망도 컸지만, 인물 그 자체로서 여전히 살아 숨쉬던 개혁의 상징이자 비빌 언덕이 사라졌으니 국민들이 크게 공허감을 느낀다는 것을. 노무현 대통령의 영정 사진 앞에 쏟아진 수많은 눈물의 본질을요. 우리가 함께 만들고자 했던 '사람 사는 세상'에 대한 가치가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상실감의 눈물이란 것을.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저도 기꺼이 눈물을 흘리면서 노무현 대통령을 보내드릴 수 있었어요.
이 모순적이고 복합적인 감정은 동시대를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쉽게 이해가 잘 안될 거예요. 지금 조국 법무 장관 혹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투영되어 있는 40대의 감정도 이와 유사하다고 분석하고 있어요. 단순히 조국과 문재인이라는 인물이 아니라, 이들에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과 희망을 투영하고 있는 거죠. '법무장관으로 조국 밖에 없어?' 이런 생각을, 40대라고 왜 안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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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밑에 김규항 글을 인용하는 걸 보고 탄식이 나요 조국 대란이 정말 크긴 크구나.. 언제적 3대 귀신이 아직도 소환되나? 저런 글 읽고 20-30년 살다간 김의겸 꼴 나요. 또 원래 그리 살던 사람에겐 아예 그런 위선자가 될 기회조차 없구요. 그런데 눈도 안돌려요..권력이라는 남의 치맛폭 속 관심도 없구요..
어이 김사장 아직도 영업 잘되시겠네 주기적으로 소환되는 깨이 값으로도 살만하겠다. 부러워 죽겠네. 우째 30년을 지나도 업그레이드란 게 없나? 예수를 좀 제대로 읽었으면 그나마 나아졌을 텐데 우짜겠나 그게 자네 깜냥이니...
2019.09.28 00:45
2019.09.28 06:34
2019.09.28 06:37
김규항의 글을 안 읽은 지 어언 십수 년이라, 이름을 대하니 확 나이 든 느낌입니다. - -
허재현 기자도 제겐 김규항 대열에 속하게 된 인물이라 이중으로 착잡하네요.
2019.09.28 09:06
제 나이가 김규항이랑 동갑입니다. 그래서인지 몹시 애정하기도 했고 심하게 다투기도 했지요. 우리들 대부분은 한 때 김규항이었고 지금은 대부분 아니게 됐어요. 그 변화의 이유를 그는 자기가 속해 있던 386집단의 타락이란 단일 요인으로 단순화합니다. 한 20년 전인가 그는 자기 책을 잘 사는 일부 20대 남성 집단에 대해서 스스로도 의아하게 생각한 적이 있어요. 그 놈들은 지금으로 치면 일베 비슷한 행태를 보이던 자들이었고 흔히 진신류라 조롱당하던 일부 사람들도 혼종된 괴상한 형태였습니다. 그는 그걸 의아하게만 느꼈지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마초 진보주의자"라는 이름을 듣게 되지요.
그에게 기회가 없었던 건 아니에요. "예수에 기대어 맑스를 넘어서"란 그의 관점은 생각컨대 바른 방향이 될 수도 있었어요.. 근데 거기서 멈춰버린 거죠. 개인의 기질이 그걸 막아버린 거고. 성찰이라는 좋은 도구를 남을 공격하는 수단으로만 쓴 결과입니다. 자기 호주머니에 칼 넣고 댕기면 무엇보다 자신이 먼저 찔리는 법이죠.그래서 그냥 김사장이 되고 만 겁니다. 이번에 제가 손석희를 손사장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처럼.
윤석열, 검사인줄 알았더니 검찰"주의자" 였고,손석희, 언론인인 줄 알았더니 언론"주의자"였어요. 어느 분야든 다수와 달리 행동하는 소수는 늘 있게 마련이고 때로 큰 성공을 거둡니다. 문제는 그 이후인데 자신이 성과를 이룬 그 분야나 시각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믿는 순간 그는 그의 선의나 진정성에도 불구하고 "주의자"가 됩니다. 불교적 용어로 쓰자면 상에 걸리는 건대 언젠가는 반드시 넘어지게 됩니다. 그가 예수를 제대로 못보았다고 제가 안타까와 하는 지점입니다.
허기자는 요즘 좀 위태해 보여요. 저번 글로도 어머어머하게 당하는 듯 해서요. 본인 문제도 있어서 이번엔 좀 빠져 있어도 되는 데 흠..좀 심각하게 걱정하는 중입니다.
2019.09.28 10:26
2019.09.28 10: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