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20 04:50
아베의 사학 스캔들을 다룬 것으로 알려진 영화 <신문기자>가 국내 개봉해서 봤습니다. 일본에서 이런 사회비판적 영화는 매우 드문 형편이니, 영화의 질을 떠나 일단 존재에 의미를 둬야 할 거에요.
피디 말로는 직접적인 압박은 없었는데 분위기상 느껴지는 압박은 있었다고 하고요. 미디어에서 일체 다뤄주지 않았고 비교적 적은 관으로 개봉했는데, 그래도 입소문으로 40만명 이상 관객이 든 모양입니다. 올해 일본 영화 누적 순위 보니까 20위권 안에서 제대로 된 장르 영화는 거의 하나도 없던데 (애니, 애니 실사, 아이돌 주인공의 로맨스, TV드라마 연장판, 아니면 마블 영화..) 그런 시장에서 나름 선전한 듯..
알려지기로는 일본 여배우들이 부담을 느끼고 모두 거절해서 심은경에게 한국인 혼혈 설정으로 배역이 갔다고 하는데, 프로듀서가 직접 밝힌 바로는 심은경이 좋아서 섭외했고 다른 여배우는 고려 안했다고 하네요.
영화는 사학 스캔들과 함께 유력인사에 대한 미투 사건, 공무원과 십알단을 동원한 여론조작, 민간인 사찰, 관계자의 석연치 않은 자살, 내부 고발자의 고뇌 등, 우리에게도 전혀 남의 나라 일처럼 보이지 않는 일련의 사건들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정보를 독점한 권력을 상대해야 하는 언론인의 고뇌, 종이신문을 읽지 않는 시대의 신문기자의 역할 등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합니다.
어떤 부분까지가 사실이고 그렇지 않은지 잘 몰라서 궁금한 면도 있더군요. 이를테면 사학재단 가케학원이 수의학부 신설을 허가 받았는데 이는 50여년만의 허가이며, 이사장과 아베 총리가 친해서 특혜 논란이 있었다고 하는데,영화에서는 여기에 정부의 계획과 자금이 들어갔고 화학무기 실험용일지도 모른다는 암시까지 나아갑니다. 그리고 고위 공무원인 남주인공도 정말 그런 내부 고발자가 존재한 건지도 궁금하고.. 외국인이 <변호인>을 봤을 때 그 군의관은 실존인물인지 어떻게 됐는지 등등 궁금해지는 게 이런 기분일까요..
영화로서의 전체적인 완성도는 아쉽습니다. 심은경의 캐릭터도 혼혈이자 미국에서 자란 설정이라, 나름 사연은 있지만 역시 외부자로 남는 듯한 느낌도 있었고요. 실제 모델이 된 여기자의 끈질김이 잘 전달되지 않은 건 아닐지.. 크레딧 올라가고 마지막에 뭐가 있다는데, 저 포함 달랑 4명이서 관람한지라 왠지 문 옆에 서있는 직원에게 미안해서 끝까지 못 앉아 있었어요.. 별점은 6/10점.
택시운전사, 1987, 도가니, 터널 등 한국에서 사회성과 오락성이 수준 높게 결합된 영화가 만들어지는 게, 생각보다 국위선양(?)에 큰 역할을 하는 것 같더군요. 민주적인 의식 수준과 표현의 자유도, 그걸 담은 영화 자체의 퀄리티 등. 특히 한류의 영향이 큰 아시아권에서는 민주주의가 아직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니.. 홍콩 시위대가 1987을 길거리 상영 하기도 하고요. 근데 홍콩은 아무래도 한국이랑 상황이 영 다른 곳이라서 큰일입니다. 날이 갈수록 더 안 좋은 소식들만 들려오는군요.
2019.10.21 09:21
2019.10.21 22:17
사실 한국도 돌이켜 보면 지난 십여년 간 창작을 자유롭게 하기엔 만만치 않은 환경이었던 것 같은데.. 문화예술계의 블랙리스트가 존재하던 게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니까요. 그래도 그 동안 만들어진 영화들을 생각해보면 놀랍다는 생각이 듭니다. 창작자들의 용기나 실력도 있어야 하지만, 결국 그런 사회파 영화들이 지속적으로 만들어질 수 있었던 건 관객이 들고 흥행이 되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즉, 국민 전체의 의식 수준이 받쳐주었기에 가능했다고 봅니다. 장사가 안되면 못만들어지는 거니까..
2019.10.21 13:34
영화 만듬새는 영 아니었나 보네요. 이런 사회고발류의 영화일수록 완성도가 더 뛰어나야 하는데 아쉽네요. 그런 의미에서 1987 완성도는 대단했던거 같음..
2019.10.21 22:32
전체적으로 차분하고 평면적인 다큐 톤이라서.. 그냥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몰입감이 떨어지는 느낌이었어요. 영화 장르의 장점이 그닥 드러나지 못한 점이 아쉬웠는데, 그래도 첫 술에 배부르기 어려웠을거라 생각해봅니다. 1987은 정말 몇 번을 봐도 띵작 오브 띵작.. 픽션과 논픽션, 오락성까지 황금비율로 섞은 완성도와 화려한 배우진의 열연. 갓준환 감독이라 부르고 싶어요.
2019.10.21 14:57
이거 보고 싶은데 동네 상영관에는 애매한 시간대만 걸려있어서 보기가 힘드네요.
여담이지만 일본은 사회에 대한 불만이나 변혁에 대한 생각은 갖고 있으면서도 그걸 굉장히 손쉽게 처리하고 싶어하는 정서가 있죠.
데스노트처럼 방구석에서 노트에 낙서하는 걸로 사회를 바꾼다던가...
페르소나 5처럼 이세계 공간으로 들어가 악당들을 개심(세뇌)시켜서 사회를 바꾼다던가...
사회비판을 담은 창작물에 항상 달리는 '이것은 픽션입니다'같은 걸 보면 사회에 불만은 있으면서도 그걸 직접적으로 드러내서 영향을 미치는 것에는 주저하는 듯한 그런 느낌이 있어요. 이 영화는 어디까지 갔을지 궁금합니다.
2019.10.21 23:06
일본인들을 '갈등 피하기 전문가'라고 평한 걸 본 적이 있는데, 느낌이 확 와닿아서 웃었던 기억이 나네요.ㅎㅎ 이 영화는 시작할 때 픽션인지 아닌지 밝히는 메세지는 못본 것 같아요. 다큐를 제외하면 그래도 이만큼이나마 직접적인 영화는 일본에 없었지 않나 싶습니다.
듣고 보니 아시아권에 사회적 메시지를 강하게 내는 대중 오락물이 드문 것 같기는 하네요. 인디 영화들 같은 경우엔 꽤 흔해 보이지만 그마저도 못 만드는 중국 같은 나라도 있고(...) 그나마 괜찮은 나라에 살고 있다고 생각해도 되는 부분일까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