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0.08 23:36
신재영의 [맨홀]은 제가 여러 이유로 기대했던 영화입니다. 일단 제가 꾸준히 팬질을 하고 있는 두 배우인
정유미와 김새론이 자매로 나옵니다. 그리고 소재 자체가 흥미를 끌었지요. 하수도 속에 사는 연쇄 살인마. 그
살인마에게 잡힌 동생을 구하려는 언니. 가까운 곳에 있지만 낯설기 짝이 없는 이 공간만 제대로 활용해도
온갖 것들이 다 나올 수 있습니다.
영화를 보니 제가 기대했던 수많은 것들이 진짜로 있었습니다. 무시무시한 지하세계로 이어진 마법의 문과도 같은
입구, 거울나라의 앨리스처럼 동생을 구하러 맨홀 속으로 들어가는 정유미의 모습과 같은 것 말이죠.
정유미와 김새론을 제외한 배우들도 캐스팅이 좋은 편이었고 세트 디자인은 훌륭했습니다.
무엇보다 영화를 지배하는 무성영화적 분위기가 맘에 들었죠.
하지만 이것들이 제대로 묶여있지가 않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만들어졌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맨홀]은 산만하고 중심없는 영화입니다. 거의 이상할 정도죠.
간단히 요약하면 [맨홀]은 미로를 그리려 하다가 그 미로 속에 빠져버린 영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좋은 영화의 재료가 될 수 있는 수많은 것들이 입구와 출구가 있는 거대한 울타리 안에 들어있습니다.
이제 벽을 쌓아 이들이 최대한 그럴싸하게 연결되는 길을 만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최종 디자인을 보지 못한 채 닥치는 대로 벽을 쌓다가 그 안에서 그만 길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그러는 동안 영화는 서스펜스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됩니다. 주인공과 악당이 그 때 반드시
그런 행동을 해야 할 이유를 찾는 것 말이죠. 영화를 보면 설정과 논리의 이상함에 당황하게 되는
장면이 한 둘이 아닙니다. 왜 저 사람은 달아나지 않는 거지? 왜 저 사람은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지 않는 거지? 왜 저 사람은 어색하게 저 자리에 서 있다가 잡히는 거지? 척 봐도 선택할 수 있는
길이 대여섯 개 정도 보이는데 각본이 시킨다고 해서 그 중 한 가지만 느릿느릿 고르는 사람들을
보면 짜증이 날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배우가 좋아도 마찬가지예요. [맨홀]은 이상할 정도로
뻥 뚫려있고 출구가 사방에 보이는데도 주인공이 최악의 길을 가는 그런 미로입니다.
쓸모없는 것이 너무 많은 영화이기도 합니다. 이들이 벽의 역할을 하고 있는지, 벽 속에서 헤매는
사람들 역할을 하는 건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아마 만든 사람들도 제대로 모르겠죠. 하여간 너무
많은 사람들이 나오고 너무 많은 일들이 벌어지며 그 중 대부분은 쓸모가 없습니다. 특히 조달환이
연기하는 형사는 존재 이유가 없습니다. 아무래도 정보 전달 역할을 하는 모양인데, 애당초부터
우리가 설명을 통해 알아야 할 정보 자체가 없어요. 만약 정유미 팬이 아무런 예술적 의도 없이
오로지 정유미와 김새론이 나오는 장면만 편집해도 지금보다는 나을 거예요.
각본 탓일까요? 편집 탓일까요? 둘 다일 수도 있겠죠. '아, 이런 상황을 의도한 것이군'이라고
생각을 해야 간신히 말이 되는 장면들이 너무 많아서 편집의 문제가 더 많이 보였지만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야할지 몰라 쩔쩔 매는 각본의 문제점도 만만치 않았죠. 하지만 현장이 더 엉망이어서
결과물보다 나은 각본을 망쳐놨고 편집으로도 구할 수 없을 만큼 쓸만한 소스가 별로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좋은 점. 정유미와 김새론이 나옵니다. 둘은 자매입니다. 심지어 수화로 대화를 합니다.
하지만 이건 연기가 아닌 페티시의 영역입니다. 그 이상을 연기하려면 캐릭터와 드라마가 있어야 하는데
영화는 이걸 제대로 주지 못해요. 여기에 대해 잘 모르고 그에 대한 막연한 상만 가지고 있을 뿐이죠. 아쉬워요. 둘은
연기스타일에서부터 이미지에 이르기까지 초현실적일 정도로 잘 어울리는 커플입니다. 이렇게 낭비하긴
아까워요. 다른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14/10/08)
★☆
기타등등
1. 정유미의 교복 장면이 회상에 나옵니다. 없는 게 나았습니다. 두 자매의 감정을 그리기 위해
넣은 모양인데, 그걸 설명하기 위해 사연이 필요한가요? 게다가 계산이 이상해요. 김새론의
나이를 고려해보면 기껏해야 그건 1년 전입니다. 그렇다면 영화 속 정유미는 아직 십대란
말인가요?
2. 김새론을 [아저씨]의 아역으로 생각하는 감독은 늘 실망스러운 결과물을 내놓습니다.
[맨홀]도 예외가 아니에요. 심지어 이 영화에 나오는 몇몇 장면이나 설정은 당황스러울 정도로
정도로 [아저씨]와 비슷해요.
감독: 신재영, 배우: 정경호, 정유미, 김새론, 조달환, 이영유, 서현우, 다른 제목: Manhole
IMDb http://www.imdb.com/title/tt4034380/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17863
2014.10.09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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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10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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