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4.12 23:42
오마이뉴스 - 카뮈의 <이방인>이 어려운 이유, 이것 때문이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76954&CMPT_CD=P0001
경향 - 김화영 교수의 카뮈 ‘이방인’ 번역에 이의 있습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1242009255&code=960205
몇 달 전부터 출판/번역계를 시끄럽게 하고 있는 이방인 번역 논쟁입니다.
한 '익명의' 번역자가 김화영의 '이방인' 번역이 완전히 엉터리라면서 블로그에 글을 연재했고
그러다가 얼마전 새 번역본을 내놓은 거죠.
이분은 '이방인' 번역이 첫 번역이라고 하고요.
(문제의 블로그. http://saeumbook.tistory.com/)
그 블로그에서는 논쟁이 계속되었지만 언론에서는 일방적으로 비판자(번역자/출판사) 측의 주장을 받아쓰던 중
불어 전공자가 아닌 로쟈의 반론 비슷한 글이 있었고
http://blog.aladin.co.kr/mramor/6966576
한겨레에 어제 (영역본과 일역본을 비교한) 에두른 방식이기는 하지만 처음으로 '김화영 비판자'에 대한 반론이 올라왔습니다.
한겨레 - 우리가 읽은 ‘이방인’은 엉터리가 아니었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632347.html
각론은 직접 읽어보시고 한겨레 기사의 입장은 대충 다음과 같이 정리됩니다. (로쟈 글에서 재인용)
이정서씨의 <이방인>도 숱한 번역본 중의 하나다. 그러나 이씨가 좀더 주목받는 이유는 ‘내 번역이 낫다’는 번역 논쟁에 그치지 않고 ‘권위자 김화영 교수의 번역은 엉터리다’라며 일종의 ‘문학권력 논쟁’으로 나아간 데 있다. ‘우리가 읽은 <이방인>은 카뮈의 <이방인>이 아니다…25년을 속아 온 번역의 비밀, 이제 진실이 모습을 드러낸다!’ 새움출판사의 마케팅 띠지 문구다. 이씨가 오역의 주체로 지목한 인물은 김화영(73) 고려대 불어불문학과 명예교수다. 카뮈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카뮈 대표작을 모두 번역해 전집을 낸 한국의 대표적인 프랑스 문학자·번역가다. 여러 권의 산문집을 낸 작가이기도 하다.(...)
이씨의 익명 논쟁 방식도 논란이다. 이씨는 본명과 과거 문학가로서의 경력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는 이름과 권위가 아니라 문장을 보자는 취지라고 이유를 밝혔다. 정혜용씨는 “창작 비평은 작품을 얼마나 깊이 읽는지를 다루는데 번역 비평은 어떤 번역의 나쁜 점을 지적하는 걸 먼저 한다. 그런 점에서 번역자에겐 늘 자기를 옹호하고 항변하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이정서씨가) 이름도 밝히지 않고 김 교수를 비판하는 것이 정당한 번역 비평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한겨레>가 전자우편으로 이씨에게 재차 학벌 등을 제외하고 번역가나 작가로서의 배경을 추가 설명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이씨는 적절치 않다며 거절했다.
정혜용씨는 “이씨의 논쟁은 ‘번역도 문학’이라는 점을 독자에게 알린 점에서 재밌는 현상”이라고 긍정적 측면을 짚었다. 번역가들의 노력은 창작에 버금간다. 번역이 지식 생태계에 끼치는 영향도 크다. ‘인권’ ‘사회’ ‘국회’ 등은 모두 메이지유신 당시 일본이 발명한 번역어였다. 그 번역어로 한국인은 사고하고 말한다. 프랑스어 번역문학계에서 이번 논쟁이 건설적인 번역 논쟁이 되기를 희망하는 이유다.
굳이 새 번역서를 사보지는 않았습니다만, 저 블로그의 김화영 비판글을 몇 개 봤는데
경력에 비해 종수는 많지 않지만 (10여년간 열댓권) 그래도 오래 불어 번역을 해왔고 앞으로도 할 사람으로서 참 답답하더군요.
(굳이 '제가 볼 때는' 같은 말을 달지 않겠습니다.)
당연히 저 익명 번역자의 비판 중에 옳은 것도 있습니다. 김화영이 잘못한 게 있죠.
김화영 판에 수십개의 오역이 있다면 아무리 권위있는 영역본이라도 수십개의 오역이 있겠지만 모든 번역에는 오역이 있다는 일반론을 펼칠 생각은 없습니다.
그래도 틀린 건 틀린 거죠. 욕먹을 건 욕먹어야 하고요.
하지만 저분이 저렇게 쌍심지를 켜고 비판하는 구절 중 상당수는 쉽게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는 것을 자기가 절대 옳다고 주장하고 있고 특히 몇몇 부분은 비판자의 불어 실력이 의심스러울 정도더군요.
얼마 전 40대에서 60대까지 중견 불어 번역자분들 모임에 간 적이 있는데 이 얘기가 나왔습니다. 그 중 몇 분이 저 블로그를 가보셨던데 다들 비슷한 말을 하시더군요. 번역 경험도 없고 불어도 못한다고.
물론 이해합니다. 처음으로 번역서를 내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직역주의, 원문지상주의에 빠져있고 실제 어학/번역 실력은 형편없고 (평소에 그 언어를 아무리 잘 해도 번역을 위한 어학 실력은 경험이 축적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면서도 자기가 최고인 줄 알게 마련이니까요. 저만 해도 첫 번역서 내고 몇 년간은 명번역이라는 식의 자뻑에 빠져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두 번째 번역서가 나올 무렵 첫 책의 재판이 나와 다시 보는데(약 4년후) 수정할 엄두가 안 나는 수준이더군요. 오역은 거의 없었지만 말도 안 되게 딱딱하게 해놨더라고요. 그래도 당시 작업중이던 두번째 책에 대한 자뻑은 있었는데 책 나오고 석달쯤 보니까 역시 개판이었습니다. 지금은? 자뻑이 절대 오지 않습니다.^^
이런 논쟁이 있는 것 자체는 좋은 일입니다. 기존 번역본 중에 엉망인 게 한둘이 아니니까요.
저도 몇몇 번역에 대해서는 '쓰레기'라는 말을 참지 않거든요.
특히 문학이든 철학이든 전공자의 번역이라는 것이 갖는 위험성은 늘 존재합니다. 텍스트의 반복된 독서가 이해를 심화하는 부분도 있지만 여러 곳에 맹점을 만들기도 하거든요. 저자에 대한 체계적 관점 때문에 특정 구절의 결을 못 보는 일도 흔하고요.
하지만 (적어도 제 전공인 불어 번역을 보면) 90년대에 비해 명망있는 출판사에서 나온 번역의 평균 수준은 확연히 올라갔고 지금 와서 옛날 번역을 트집잡는 건 좀 비겁합니다. 그 사이에 번역자-편집자-시스템이 동반성장을 했거든죠. 90년대 초반 이명세 영화보다 지금 평균적 영화의 때깔이 좋다고 해서 이명세를 무시할 수는 없잖아요. 비록 번역자에 대한 대우는 여전히 터무니없는 수준이고, 유명 번역자 중에도 문제가 심각한 경우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전반적으로 굉장히 좋아졌고 점점 좋아지고 있는 건 분명합니다.
물론 김화영은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고 '이방인'은 자주 손을 봐서 다시 내놓는다고 하고 있으니 비판을 면할 이유는 없지만 그래도 저렇게까지 해야했나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김화영의 번역 스타일을 딱히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교수 번역자 중에는 언어권을 떠나 특급으로 통하고 있지만 성역급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고요. 하지만 그래도 그만하면 굉장히 잘 하는 분이죠.
작년에 일 관계로 민음사에서 나오고 있는 프루스트 번역본(외대 김희영 교수)과 몇 년 전 '현대문학'에 연재했던 김화영(고대) 교수의 프루스트 번역을 상당 부분 원문과 비교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국일미디어에서 나온 김창석 번역(요즘 세대에게는 도저히 읽을 수 없는 말투지만 탁월하고 정확한 번역입니다.)이 존재했기에 가능한 일이겠지만 두 분의 번역을 읽는 작업은 정말 즐거웠습니다. 스타일이 완전히 다른 두 번역자가 한국어로 번역하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프루스트의 문장을 무리없이 소화해서 자기 색깔대로 제시하고 있었거든요. (물론 김화영 교수는 연재가 중단되었고 출간이 되지 않고 있으니 앞으로 프루스트 번역의 정본은 민음사본입니다. 완역에 칠팔 년 이상이 소요된다는 게 문제지만.) 아쉬운 부분이 없는 건 아니지만 제가 한두 구절을 더 정확히 할 수 있다고 해서 나머지 수천 구절을 그 수준으로 할 수 있는 건 아니죠.
물론 비판을 할 때 꼭 비판대상의 수준이 되어야만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자기도 번역자로서 책을 낸다면 상황이 좀 다르죠.
문제 삼지 않은 다른 구절에 대한 이분의 번역을 보면 허술한 게 보이거든요. (실제로 이게 첫 번역서라고 합니다)
설사 지적한 부분이 전부 옳다 해도 책 전체로 통계를 내보면 이분의 오역이 훨씬 많을 겁니다. 기존의 번역들을 보면서 했음에도 말이죠.
무엇보다 비겁한 건 오역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이걸 무슨 문학권력 같은 쪽으로 몰고간다는 점입니다. 자기는 거룩한 성전을 수행중이고 자기를 비판하는 사람은 기득권에 빌붙은 사람이 되는 거죠.
예컨대 "로쟈의 명성과 권위 (...) 그렇다면 김화영의 이 오역의 시발은 어디서부터일까? 사실 나는 알고 있다. 그건 로쟈도 알고 있었을지 모른다. (...) 무슨 소린가 하면, 김화영 교수 역시 자신의 스승인 이휘영 교수의 번역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라는 점을 말이다.(...) 이 나라의 도제 시스템이 만들어낸 학문 체계라는 것이 얼마나 허약한지..." 같은 말이 그렇죠.
저도 로쟈는 크게 신뢰하지 않지만 그 사람이야 말로 남의 번역 씹기로는 일가를 이룬 사람 아닙니까? 로쟈를 비판하면서 왜 명성과 권위를 언급하는 건지.
게다가 분명 도제 관계로 인한 문제는 심각합니다만 그건 '스승이 번역을 했으니 새 번역을 할 수 없다'이지 '새 번역을 하면서 스승의 오류를 바로잡을 수 없다'는 아닙니다.
사실 가장 안타까운 건 저 익명의 번역자분입니다. 젊은 혈기에 흥분하는 것도 이해가 되지만 (저도 학부 때와 석사 때는 이 땅의 번역서들을 죄다 쓰레기 취급하고 다녔거든요) 10년쯤 후에 번역과 불어 실력이 좋아진 다음에 이 일을 돌아보면 얼마나 부끄러울까요. 신원이 끝까지 비밀로 부쳐진다 해도 결국 자기 인생의 핵심적 사건이 말 그대로 Much Ado About Nothing이라는 걸 깨닫는다면 말이죠.
사실 이 논쟁에 관해 게시판에 한 마디 하고 싶은 마음은 전부터 있었는데 요즘 바빠서 구체적인 분석을 할 틈이 없고 (그래서 이렇게 두루뭉실한 인상비평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보다 업계에서 이 논란을 그냥 노이즈마케팅 정도로 간주하고 있는 분위기여서 그냥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한겨레의 기사를 보고 결국 몇 자 적게 되었네요.
덧글.
(꼼꼼히 대조한 뒤 실명으로 글을 써서 프레시안 북스 같은 곳에 보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습니다만 하필 너무 바쁜 시기인데다 결정적으로 까뮈를, '이방인'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지라 귀찮네요ㅠ.ㅠ 제가 무슨 권위있는 중견 번역자도 아니고.)
덧글 2.
지금 저 블로그에는 주요 비판글 대부분이 비밀글로 돌려져 있습니다. 궁금하신 분은 책을 사서 보시길.
2014.04.13 01:05
2014.04.13 01:13
김화영 번역은 '현대문학'에 연재되다 중단되었고 연재된 분량도 중간중간 빠진 게 있습니다. 원래는 전권 완역을 할 계획이었는데 갑자기 완역 기획이 너무 많아져서 손을 뗀 걸로 알고 있습니다.
현재 완역본은
1. 김창석(능성출판사-정음사-국일미디어) : 수십년 동안 유일했던 최초 완역본. 우수한 번역이지만 문체 때문에 젊은 세대에게는 쉽지 않음.
2. 민희식(동서문화사) : 2010년 완역. 노코멘트하겠습니다.
3. 이형식(펭귄) : 출간중.
4. 김희영(민음사) : 출간중. 정본이 될듯.
2014.04.13 12:36
오~~ 자고 일어났더니 이런 좋은 정보. 정말 감사드려요. 그런데 무언가 쉽지 않다고 하니 1번 판본을 향한 도전의식이. .... ㅎㅎ 어쨌든 4번 민음사 번역본~ 읽어야겠군요.
2014.04.13 13:20
여기서 핵심은 완역된 민희식 판본에 대해 절대 노코멘트 하겠다는 저의 강력한 의지입니다.^^
2014.04.13 01:10
2014.04.13 01:48
민음사 이방인(김화영 번역)을 읽고 작품에 감탄하여 나가떨어졌거니와 이 소설의 정수 내지 매혹적인 특징들도 저에게 다 파악&흡수됐다고 느꼈던지라, 이 논쟁에 그냥 '뭐래니?' 하게 되네요(....) 뭐 원작으로 읽으면 번역의 미비함이 들어올 수도 있겠으나, 김화영의 이방인으로도 소설을 감상하기에 충분하다 봐지네요.
2014.04.13 01:57
참,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햇빛 때문에 죽인 게 아니라 정당방위였다'라는 저분의 유명한 주장이 이상하다는 겁니다. 아랍인이 칼을 뽑고 햇빛이 칼에 반사되어 뫼르소의 눈을 괴롭힙니다. 그 다음부터 한참 동안 아랍인/칼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계속 반과거 시제거든요(행동이 아닌 지속, 묘사의 시제). 대치상태에서 칼을 든 사람이 움직이지 않고 있는데 어떤 심적인 동요가 와서(이 부분부터 행동-사건의 복합과거 시제) 먼저 총을 쏜 겁니다.
물론 저분의 지적들 중 옳은 부분도 분명히 있습니다. 지적사항 중 애매한 게 많아서 탈인 거죠.
2014.04.13 02:36
2014.04.13 03:54
음 세상은 넓고 참으로 많은 사람이 있군요... 저 출판사 책 중에 재밌게 읽은 게 있어서 조금 관심이 있었는데, 저분 활약 덕분에 이미지 완전 버리네요.
2014.04.13 10:22
2014.04.13 12:53
82cook엔 언니들~거리면서 트롤짓하는 남자들이 많습니다. 여초사트같지만 성비는 반반인 걸로.
2014.04.13 13:16
2014.04.13 02:43
전 김창석 번역 좋던데 요즘 세대가 아닌 건가요;ㅅ;
이방인은 방곤 번역으로 읽었습니다만, 저분 블로그 글 읽어보니 번역자의 해석이나 스타일 차이로 볼 수 있는 부분을 죄다 오역으로 단정지어서 좀 민망하더군요.
2014.04.13 02:57
2014.04.13 02:59
ㅠㅁㅠ
2014.04.13 03:03
2014.04.13 05:55
2014.04.13 06:43
이번 논쟁도 그렇고 근 10년간 이뤄진 문학계 비판을 보면 안타깝다는 느낌이 많이 듭니다. 목소리만 컸지, 디테일이 엉망이라, 다 허수아비 때리기 오류밖에 되지 못 했으니까요. 넘겨짚기 무리수가 남발되고, 풍문처럼 떠도는 말을 주워 담아 떠드는 형국밖에 되지 않고 있죠. 이번 논쟁도 마찬가지고요. 우선 정말 썩어 있는 부분을 건드리려면, 이너서클 안으로 들어가 그걸 봐야 하는데, 어쨌든 그 안으로 편입되는 과정에서 작게든 크게든 수혜 집단의 비호를 받을 수밖에 없고, 썩은 부분을 도려내려면 자신에게 은혜를 베푼 은사에게 칼을 겨눠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정작 비판할 거리가 있는 사람들은 입을 다물고, 변두리만 맴도는 그 속사정을 잘 모르는 분들이 비판을 하다 보니 어그로 끌기라는 결과밖에 나오지 않는 거 같네요.
그리고 그 모든 걸 감수하려 해도 어차피 독자들은 문학에 관심이 없고, 그저 문단구조 때문에 싹수 있는 글쟁이들이 외면받냐고 묻는다면, 딱히 그 정도는 아닌 거 같으니(문단구조에 문제가 없어서라기보다는 그냥 이 바닥에 재능 있는 글쟁이가 희귀한 존재라서 그렇습니다. 돈이 안 벌리니까 들어오더라도 곧 떠나죠), 비판 동기조차도 모호해져 버리죠. 딱히 문학계만 유독 썩었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닌 거 같고, 그냥 딱 한국사회 수준 정도인 거 같기도 하고요.
2014.04.13 08:00
2014.04.13 09:56
아 그리고 한겨레 기사 중 보면, [본업을 '회사 경영'으로 밝힌 이씨는 번역에 나선 계기에 대해 중학생 딸이 김화영 교수의 <이방인>을 읽고 '무슨 소린지 모르겠고 재미도 없다'고 했다 밝혔다]라고 나오는데, 중학생이니 그럴 수 밖에요; 전 30살 넘어 이방인(김화영)을 읽었는데, 읽으면서 나이들어 이걸 접하니 다 쏙쏙 빨아들여지는구나 싶어 다행이다 생각했어요. 물론 굉장히 지적이고 문화적으로도 접한게 많은 10대들이야 어릴때 명저를 읽어도 숙- 받아들이겠지만요.
2014.04.13 12:18
2014.04.17 10:51
누가 오역이 많고 적고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어느 한쪽이 중급 어휘/초급 문법 실력도 없어서 독해가 안 된 상태예요. 이방인은 원어나 영문판으로 직접 읽은 사람이 국내에도 몇만 명은 될 텐데 어디서 약을 팔아;
햇빛에 관해선 까뮈 본인이, 살인 장면에서 가장 중요한 건 햇빛이고 재판 장면에서 가장 중요한 건 죽는 한이 있더라도 사소한 거짓말도 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자세라고 이미 해설했어요. 그걸 까뮈의 유령을 직접 만났다며 그분 혼자 뒤집으려고 하는 거고요.
마리/레몽도 그분 혼자의 망상이에요. 레몽은 고정된 직업도 없이 여친 집에 얹혀 살면서 심심하면 여친 두드려 패다가 경찰 출동까지 시키는 양아치인데, 그분 혼자 레몽은 양아치가 아니라 고상한 인간이라며 elle를 그년이라고 번역하면 안 된다고 날뛰더니 고상한 인간이기 때문에 원문에서 명백한 레몽의 거친 언행들을 고상한 언행들로 의역한 뒤, 이런 의역을 못 했으니 김화영이 작품 이해를 못 한 거라고 까는데, 정작 레몽이 고상한 인간이라는 건 어떻게 알 수 있는지는 설명 안 하는.
마찬가지로 마리도 상중인 남친한테 때와 장소를 안 가리고 섹스를 요구하는 생각없는 여자라 법정에서 뫼르소한테 불리한 증언을 술술 부는 건데요. 그분 혼자 마리는 정숙한 여성이므로 원문을 그대로 옮기면 안 되고 이리저리 뜯어고치고 틈틈이 김화영 까고, 왜 정숙한 여성으로 봐야 하는지는 자기가 초월번역한 문장들 늘어놓고 '보라, 얼마나 정숙한 여성인가' 하는 식의 순환논리.
정작 이 바닥에서 김화영이 까이는 건 너무 표현이 고풍스러워서 현대 국내 독자들한테는 레몽의 양아치 캐릭터나 마리의 백치미 캐릭터가 잘 안 드러난다거나 하는 종류의 문제들 때문이죠(마치 프랑스 사람들이 한드 학원물 보면서 '왜 한국 일진들은 마약도 안 하나요?' 하는 느낌). 1980년대까지만 해도 elle를 그년이라고 번역하거나, 뫼르소가 저 여자가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고 반복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던 건 사실이고, 1940년대 소설의 문체를 살리기 위해 어느 정도 고풍스러운 표현을 고집하겠다는 게 원로의 입장이라면 인정해줄 수 있는 범위이긴 해요. 가독성만 고려하면 차라리 베스트트랜스판 같은 걸 도서관에서 빌려 읽으시는 편이 낫습니다.
2014.04.13 12:48
시니스터 /
저도 비판글이 비공개 처리되기 전에 꽤 봤고 이분의 불어/번역 실력에 대한 현재의 판단은 그때 내린 겁니다. 문제는 지금 비공개 처리가 되어 기억만으로 구체적으로 따질 수 없고 현재 공개처리된 부분은 샘플이 너무 적다는 거죠.
4)의 경우 예컨대 서울대 교수가 무슨 책을 번역했으면 서울대 출신이 그 책을 다시 번역하기 어렵다는 식의 불문율이 90년대 후반까지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김현이 번역한 '몰로이'를 문지에서 다시 내는 걸 보면 그런 게 거의 깨졌다고 봐야죠.
반면 일단 후학이 다시 번역을 했다면 과거의 오류를 (틀린 걸 알면서도) 권위 때문에 답습할 리는 없습니다. 새 번역을 내는 게 두려운 것이지 번역 자체가 달라진 것을 두고 일일이 대조하며 읽어서 '이 애송이가 스승의 번역을 감히 고쳤다'고 말할 정도의 일을 걱정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번역비평이라는 게 자리잡은지 채 10여년도 안 되고요. 익명 번역자는 김화영이 (모르고 실수한 것도 있겠지만) 알면서도 이휘영 선생이 오역했으니 그걸 안 고친 게 많을 것이라면서 도제관계를 들먹이는 건데 학계와 업계에 동시에 발을 걸치고 있는 제가 볼때 그 부분은 넌센스입니다. 단언컨대 그 부분은 도제관계의 영향력이 개입될 영역이 아닙니다.
만약 번역자가 아니라 학자로서 선배가 제안한 번역어를 수정하려 한다면 그건 두려울 수 있습니다. 자기 지도교수가 '가로지르기'라고 번역한 걸 학술논문에서 '횡단성'이라고 적기는 껄끄러울 수도 있죠.(요즘은 그런 것도 별로 없습니다만) 하지만 번역을 해서 일단 책을 내기로 했다면, 그것도 철학책도 아닌 소설책에서 이런 걸 신경쓸 까닭은 전혀 없습니다.
욕정을 느꼈다는 부분은 말투가 고풍스럽다는 것은 동의합니다. 하지만 70대 번역자의 옛 작업이 고풍스럽다고 폄하하는 건 어불성설이죠.
문제는 저 익명 번역자가 그 표현이 성적 욕망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는 건데요. 원문의 desirer 동사는 사람을 목적어로 받을 때는 노골적으로 섹스를 원하는 표현입니다.
(네이버 불한사전)
2. 성욕을 느끼다, 몸을 탐하다
Elle le désirer, mais ne l'aime pas. 그 여자는 그의 몸을 탐한다. 그러나 그를 사랑하지는 않는다
익명의 역자처럼 우리말로 '원했다'라고 해도 성관계를 암시하기는 하죠. 하지만 그 정도라면 까뮈가 다른 표현을 썼을 겁니다. 반대로 '그 여자를 따먹고 싶다'라는 표현이라면 더 강한 속어적 표현을 썼을테고요(baiser 따위). desirer는 비속어가 아닌 한에서 의미가 굉장히 뚜렷한 표현입니다. 저라면 '나는 그 여자와 자고 싶었다' 정도로 하지 '나는 그녀를 원했다'로 하지 않습니다. 물론 '원했다'라고 해서 오역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걸 가지고 난리를 치는 순간 번역자의 불어실력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죠.
그리고 햇빛 부분은 그냥 전세계적 통설이 틀렸다고 혼자 주장하고 있는 겁니다.
제가 기억나는 걸로는 영어로 대충 It annoyed me 정도에 해당하는 표현을 김화영이 '나는 그것에 짜증이 나서' 하는 식으로 옮긴 걸 이 사람은 '그것은 나를 거슬리게 해서'라고 한 게 있습니다. 이 부분은 김화영을 특별히 문제 삼지 않고 자기 딴에 더 나은 번역이라고 그렇게 한 건데, 경험있는 번역자라면 특별한 상황이 아닌한 물주구문을 저렇게 직역하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이런 식으로 비판하기 위해 인용한 단락만 봤을 때 특별한 비판없이 자기가 바꾼 부분들의 번역이 후지다는 겁니다.
즉, 설사 이 사람의 오역 지적이 대체로 근거가 있다고 해도 '이방인' 급의 책을 번역할 역량은 없다는 거죠. (물론 이방인의 불어가 굉장히 쉽기는 합니다만, 편집자들은 이런 고전의 번역을 듣보잡 역자에게 맡기지 않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번역서이든 꼼꼼히 뒤져보면 흠이 숱하게 있습니다. 그걸 지적하는 건 학부생도 할 수 있는 거죠.
물론 자기가 번역을 하고 싶으면 하면 됩니다. 출판사와 커넥션도 있다면 못할게 없죠. 하지만 단순한 번역비평이 아니라 '번역자'로서 번역비평을 할 때는 훨씬 큰 책임이 따르는 법입니다.
예전 프루스트 생전에 그의 작품의 영어 번역이 시작되었는데요. 번역자는 경력이 풍부한 1급 불어번역자였습니다. 그런데 프루스트의 팬을 자처한 한 인물이 그 번역이 엉터리라면서 프루스트에게 숱하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결국 저자 사후 기존 번역자도 죽으면서 마지막 권을 그 사람이 번역했는데, 몇몇 부분은 저자의 의도를 훨씬 잘 살렸지만 (말 그대로 열혈팬이었으니) 대부분의 구절에 대한 번역은 끔찍한 수준이었다고 하죠. 이번이 딱 그런 케이스입니다.
마리/레몽 부분은 제가 본래 책의 내용이 기억이 나지 않아 당장 답을 드리긴 어렵습니다.
2014.04.13 13:14
그리고 첫 문장 'Maman est morte' 역시 '돌아가셨다'가 아니라 '죽었다'라고 했다고 김화영을 까던데, 이것도 좀 어이없죠. '죽었다'와 '돌아가셨다' 둘 다 가능한 건 당연합니다만 그 문단의 의미구조가 명백하게 격식차린 양로원 측의 사망통보 문구와 아무 느낌 없는 철저히 중성적인 뫼르소의 서술문으로 대비되는데 뫼르소가 이 말을 직접화법으로 다른 사람에게 하는 것도 아니고 서술자로서 서술문을 발화하는 것이니 오히려 존댓말이 어색하죠.
2014.04.13 13:29
원래 남의 번역 보면서 트집 잡는 건 쉽죠. 그래도 전체를 번역해서 책까지 냈으니 나름 인정해야겠지만, 몇 권만 더 번역해 보면 생각이 많이 바뀔 것 같습니다. 앞으로 번역을 더 하게 된다면,10년 뒤에 autechre님 예상대로 정말 부끄러울 것 같아요. 물론 이걸로 번역 그만두고, 10년 뒤에 '내가 정말 제대로 된 번역을 냈는데, 인문학 기득권들의 음모 때문에 묻히고 엉터리 번역이 아직도 쓰인다'며 소주 먹으면서 화내고 있을 지도 모르겠네요.
2014.04.13 13:37
아. 이런 일이 있었군요. 흥미로운데요.
조금 결이 다른 이야기이지만 -- 저는 좋은 번역에 대해 번역자의 모국어(감성)에 대한 이해와 구사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는 편입니다. 비문학에서는 번역실력 그 자체를 많이 따지거나 직역-의역 논란 여부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옮긴이 당사자가 모국어, 주로 한국어를 어떻게 학습했고 이해하고 있는지, 이것이 저에겐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더라고요. 그런 면에서 거론한 사람들의 문체는 여전히 한문투-일본어문장투-영어번역투로 점철되어 있어서 높은 점수를 주긴 어렵네요. 그렇다고 순한국어투를 쓰자는 건 물론 아니고요. 적어도 이방인 정도면, 중학교를 졸업한 사람이면 알아먹을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닐까요. 그러나 우리 번역의 문화는 그렇지 않은 것 같네요. 아직은요. 번역하시는 분들, 해당 언어 공부도 좋지만 한국어 공부부터 좀 하시고 한국어 이해부터 좀 하셨으면 하는 게 소박한 바람입니다. 중고등학교 졸업한 사람이면 이해할 수 있는 한국어로 옮겨주세요. 제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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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어쨌든 이러한 번역에 관련한 논쟁이 많은 것은 즐거운 일인 것 같습니다. 굉장히 중요한 문제 아니겠습니까. 말씀드렸다시피 해당 외국어를 모르는 사람 입장에서 책을 읽고 싶다면 어쩔 수 없이 번역본을 보게 되는 건데, 잘 번역이 된 건지 아니면 외계어로 된 건지 알 수가 없으니 일단 믿고 보는 거 아니겠어요. 운이 안 좋다면 보고자 한 책이 아닌 다른 책을 보게 되는 것일 테고요.
그리고 덕분에 프루스트 번역본 그 두 개가 좋다는 정보는 얻게 되네요. 감사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