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9.01 13:36
The Road, 2009
존 힐크트 감독, 비고 모텐슨, 코디 스밋 맥피.(언론에 소개된 이상의 스포일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생각보다 좋았습니다.
이 영화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역시 부자 역할의 두 배우였을 텐데 두 사람의 호흡이 좋아서 이들에게 상당히 이입하게 됩니다. 오랜 길거리 생활로 인한 외모의 더러움도 좋았으며(?) 파괴된 세계에 둘 뿐이라는 절절함도 잘 다가왔습니다. 또 중요한 것이 재앙 이후의 폐허가 된 풍경입니다. 이 풍광 자체가 배우들과 비슷한 비중이라고 생각하는데 원경, 근경 다 잘 표현되어 있어요. 잿빛 가루가 내려 앉은 듯한 들판에 하루가 멀다하고 비가 내리고 문명의 흔적 기간시설은 다 파괴되어 있습니다. 사람 흔적 없는 망한 세상을 그럴듯하게 구현했고 볼만 했습니다.
세상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이유는 명확하게 안 나와요. 집에 책이 있어서 분량도 얼마 안 되고 읽은지도 오래 되어 이참에 다시 읽으려고 찾았는데 어디 구석에 들어가 있는지 안 보이네요. 본격 뒤지기는 귀찮아서 관뒀습니다만 여튼 책에도 제 기억에 대재앙의 원인을 꼭 집어 말하진 않았습니다. 망가진 상태를 보면 아마도 여러 발의 핵 폭탄의 사용 때문이 아닐까 싶었어요. 생존자들은 자연에서 먹을 것을 취할 수 없는 상태에서 시간이 흐르고 비축한 것이 없어지자 서로를 사냥해서 먹기도 합니다. 그러니 이곳에서 가장 위험한 존재는 사람입니다. 가장 위험에 처하게 되는 존재는 이런 최악의 종말적인 상황이 아니라도 언제나 그래왔듯이 무리 짓지 못한 여자나 아이입니다.
부자는 길을 걸으며 항상 인기척에 신경을 쓰고 어쩌다 얻어걸린 지하 식품 저장고도 사람의 소리가 멀리 들리는 듯하자 꿀같은 시간에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버리고 나옵니다.
이런 세상에서 마음의 불씨를 꺼트리지 않으려는 부자의 이야기입니다. 아버지의 아들 사랑이야 말이 필요 없고요, 콜라 한 캔을 발견하고 처음 먹어 본 맛에 흥분하면서도 아버지와 나누어 마셔야 한다는 아들의 사랑스러움이 찡하지만 전체적으로 굶주림과 싸우고 크고 작은 사건들 속에서 구사일생하는 것이 영화의 내용이라 아래 사진에서 보시는 것처럼 이 부자의 개고생하는 장면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러니 이 영화는 요즘 기분이 많이 업되어(?) 좀 차분해 질 수 있는 영화 한 편 보고 싶으시다면 적절한 선택이 될 것 같습니다. 안 그래도 울적한데 우울한 영화는 싫다시면 피하시....아니다 이열치열이니 우린 아직 희망이 있음을 확인하시기엔 좋을 것도 같아요. 나쁜 상황에 있지만 엄청엄청 나쁜 상황을 보며 기운을 내보는 것이지요. 아직은 푸른 하늘을 확인할 수 있고 미세, 초미세 먼지 없는 맑은 공기를 호흡하는 날도 있고 가스와 전기와 휴지를 사용할 수 있음을. 아마도 맥카시 영감님의 의도 중 하나도 그게 아닐까 싶고요.(이분은 인간이 만든 세상은 기본적으로 말세라는 생각이 작품에 깔려 있지만요) 그리고 너무 늦지 않게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야 되겠지만요.(이미 너무 늦었다는 연구도 막 나오는 거 같더군요...)
부자 역할 두 배우를 좋아하신다면 보시면 좋겠습니다. '파워 오브 독'의 코디 스밋 멕피, 어릴 때 참 귀여웠네요. 잠깐이지만 알만한 배우들이 여럿 얼굴을 비춥니다.
마지막 장면은 좀 의아합니다. 책에선 미리 변죽을 좀 울렸던 기억인데 영화는 끝 장면이 뜬금없고 너무 쉽게 간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게 좀 옥의 티 같습니다.
저는 왓챠에서 봤습니다.
종말이 다가오긴 다가오는 것일까요. 부쩍 이런 영화나 책을 자주 마주칩니다. 얼마 전에 읽은 김영하의 '작별인사'도 기계와 인공지능 시대의 도래로 인간의 전멸을 다루더라고요.
2022.09.01 13:47
2022.09.01 13:58
항상 이래저래 웃음을 안겨 주시네요. 감사합니다 ㅎㅎ
영화에서도 콜라 장면을 인상적으로 처리하고 있었어요. 둘이 한 모금씩 하는데, 참 소중한 발명품이라는 생각이 마구 나게요.
2022.09.01 14:39
아니 작가가 무슨 코카콜라 주최 문학상 받은 고마움에 집어넣은 장면이라는데 우울하다 하시면 ㅋ
2022.09.01 23:20
아니 그 장면보다 그냥 이야기 자체가 우울하잖아요. ㅋㅋㅋ 그 얘기였습니다.
2022.09.01 13:56
2022.09.01 14:00
영화의 결말은 마구잡이로 그냥 믿어야 되는 걸로 돼 있어서 좀 그랬어요. 파키스탄 영상 저도 봤는데 말문이 막히더라고요.
2022.09.01 14:11
2022.09.01 15:15
좀 그렇죠?
저도 어두침침한 영화지만 되풀이 보기 어려운 느낌이 안 들고 다시 보기 하고 싶은 영화였어요.
근데 전에도 그랬던 기억이 나는데 Sonny 님 댓글이 메인게시판 창에서 카운트가 안 되는 것 같던데 왜 그럴까요.(지금은 됩니다)
2022.09.01 17:39
2022.09.01 19:56
메인게시판 창에서 댓글 수 변화가 없는데 글에 들어와 보면 Sonny 님 글이 있었습니다. 잠시 뒤에 수영 님 댓글이 달리니 그제서야 같이 댓글 수가 맞게 올라갔습니다. 전에도 한 번 이러는 걸 본 적이 있어서요.
2022.09.01 20:10
2022.09.01 20:27
무슨 말인지 계속 이해가 안 되고 있어요. 예상수 님과 상관없이 수영 님 댓글 올라오니 댓글 수가 맞아들어가던데요? 그런 이유라면 지금은 왜 맞는가요
2022.09.01 21:01
2022.09.01 21:03
2022.09.01 21:37
그렇군요. 댓글 수가 오락가락하는 이유를 이제 이해했습니다. 끈질긴 추가 설명 감사 ㅎㅎ
2022.09.01 17:44
2022.09.01 16:27
제일 암울한 포스트 아포칼립스 영화가 아니었나 싶어요. 그 지하실에 가둬놓고 조금씩 먹는다는 설정은 아직도 소름끼치고 그 어머니랑 아들?이었나 어떤 패거리에게 순식간에 희생양이 되던 장면도...
2022.09.01 19:53
원작 자체가 그랬고 그 느낌을 잘 살린 영화였어요. 말씀하신 장면 비롯해서 시각적으로 힘을 주는 면도 있었지만 저는 만족스런 감상이었습니다.
2022.09.01 21:13
저도 참 암울한 영화구만 하면서 봤던 기억이 있어요. 비슷한 시기에 북 오브 일라이나 나는 전설이다같은 영화를 봐서 더 그랬던것 같고요 ㅎㅎ 저도 끝장면 감상에 동의합니다.
2022.09.01 21:41
암울암울한데도 볼만했던. 끝 장면을 위해 앞 부분에 좀 보완된 장면이 있었다면 좋았겠습니다.
저로선 정말 매우 드물게도 소설을 읽고 영화는 안 본 경우입니다만. ㅋㅋㅋ
소설을 읽고 가장 강렬하게 기억에 남은 건 세상에서 가장 우울한 코카콜라 PPL 소설이구나... 라는 거였습니다.
엄청 마시고 싶어지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