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16 22:47
무언가 저항의 의미로 공개적인 장소에서 삭발하는 이벤트는 언제부터 시작된 걸까요?
신체발부 수지부모에서 온 거라면 지극히 유교적인 전통인 거 같기도 하고
그렇다면 동아시아에서만 통하는 이벤트가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2019.09.16 23:07
2019.09.16 23:23
2019.09.17 01:05
2019.09.17 14:33
머리야 밀어도 어차피 다시 나는거 아닌가요? 전 삭발이 그렇게 비장한지 모르겠어요. 머리자르면서 줄줄 울고 그러는거 정말 싫어요.
토착왜구들이 유교잔재에 저항하고 황국신민임을 드러내고자 삭발을 했던 역사가 있긴 있었죠.
요즘 자유당의 삭발 챌린저에 대해 ‘약자의 투쟁’을 희회화 한다고 나무라는 분들도 게시던데요.
1980년 이후 삭발투쟁을 가장 많이 한 집단은 노동운동 진영입니다. 학생운동은 1990년대 중반에 몰락하면서 거의 사라진것에 반해 노동운동쪽에선
요즘도 일단 집행부가 되면 삭발은 기본이죠. 그 시절에도 이미 신체발부수지부모 따위는 애시당초 안중에도 없었어요.
그냥 결기를 드러내기 위한 이벤트였어요. 단식은 정말 비장한 투쟁방식이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고 투쟁주체의 건강에 치명적인 위험성이 있으며
선동성이 약한 편이라서 80년대 운동현장에선 학교나 공장이나 단식보단 삭발이 선호되던 편
1970년대 그 엄혹한 시절에도 삭발투쟁이 있었는데 여성 노동자들이 삭발투쟁을 한 이유중 하나가 (당사자 분들께 직접 들은 이야기)
머리채가 잡혀서 끌려 나가지 않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자한당 애들이 1970년대 여성노동자들의 삭발투쟁 정신을 이어 받았을리는 없고 1980년대의 삭발투쟁의 선동성에 대한 ‘로망’이 있었을거 같아요.
그래서 ‘약자들이 하는’ 이라며 자한당의 삭발투쟁을 정색하고 비난하는 것에 별로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1980년대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삭발투쟁은 울타리 안의 사람들에게는 투쟁심을 고취 시키는 선동력이 킹왕짱이지만
울타리 밖의 사람들이 봤을때는 혐오감을 주거나 비웃음을 주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1980-90년대 학생운동에서도 과대표처럼 가장 기층에서 학생들과 대면해야 하는 활동가가 삭발하려고 하면 선배들이 뜯어 말겼고
주로 총학생회장이나 집행부 혹은 좀 갑툭튀 성향의 단대학생회장이 삭발)
즉, 당대표가 머리 깐건 지금 자한당 당내 사정이 매우 혼란스러운 반증이 아닌가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