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2.06 00:43
- 네, 2003년입니다. '2009 로스트 메모리즈'와 '예스터데이'가 나온 바로 다음 해구요. 런닝타임은 1시간 53분. 이번에도 스포일러는 마지막에 흰 글자로.
(사실 이 영화는 제목을 듣는 순간부터 망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포스터를 보는 순간 그 느낌은 x2.)
- 시작부터 검은 화면에 오골미 폭발하는 소녀 감성 자막들이 뜨며 보는 사람을 불안하게 합니다. 잠시 후 보이는 예쁜 바닷가 벤치에 앉은 젊은 남녀의 모습도 그렇구요. 다행히도 그게 실제가 아니라 유료 자연 체험 시뮬레이션이라는 걸 보여주긴 합니다만 아무튼 불안불안.
암튼 간단히 세계관을 정리하자면 그냥 블레이드 런너입니다. 핵전쟁 일어나서 지구 황폐해졌구요. 우주 식민지로 떠나자는 광고 흘러나오는 비행선 둥둥 떠다니구요. 경찰들은 바퀴 접히며 날아가는 자동차를 타고 다니고, 안드로이드 아닌 사이보그가 잔뜩 만들어져서 사방팔방에 쓰이구요. 얘들한텐 안전 장치로 짧은 수명이 설정되어 있구요. 그 와중에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거스르려는 전투형 사이보그가 설치기 시작하구요. 사이보그 범죄 전담 특수 부대인 'MP'의 전설의 요원이었다가 지금은 망가져서 엉망진창으로 살고 있는 요원이 주인공이구요... ㅋㅋㅋㅋㅋ 이쯤 되면 영향을 받은 영화가 아니라 그냥 허가 받지 않은 외전이라고 봐야겠네요.
(꺄악~ 스피너다!!!!)
암튼 그 요원님이 바로 유지태구요. 이 양반 삶의 목표는 술집 섹시 댄서로 일하는 사이보그 '리아'를 영원히 데리고 사는 겁니다. 그리고 그걸 실현하기 위해 동네 주민이자 매드 사이언티스트인 '닥터 지로'에게 줄 돈을 열심히 모으고 있어요. 그 과정에서 자기 동료들의 희생까지 쿨하게 감수할 정도로 완전히 썩었군요.
문제는 그 닥터 지로라는 양반이 제시한 사이보그 영생의 방법이라는 게, 살아 있는 멀쩡한 인간의 뇌에 사이보그의 기억을 덮어 씌우는 방식이라는 겁니다. 당연히 희생자가 필요하겠죠. 그래서 닥터 지로가 지목한 희생자는 '시온'이라는 성매매 여성. 유지태는 뭐 어쩔 배째라는 식으로 시온에게 접근해 수작을 거는데 시온은 자기에게 관심을 가지는 줄 알고 기뻐하구요.
하지만 그 와중에 갑툭튀 전투 사이보그 '싸이퍼'라는 녀석이 난동을 부리고 다니기 시작하는데 아무리 봐도 이 놈 하는 짓이 뭔가 수상쩍고. 당연히 그 일은 우리 유지태 요원님의 소박한(?) 계획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너무 격하게 따라한 게 아닌가 싶긴 하지만 뭐 그 전에 이미 일본에서 이걸 넘는 수준으로 막 베껴댄 터라... ㅋㅋ)
- '블레이드 런너'를 아주 대놓고 카피한 영화인데 비주얼은 괜찮지만 이야기가 완전 시궁창이더라. 라는 평을 당시에 들었던 기억이 있어요. 근데 비주얼은 뭐 2003년 기준 괜찮았던 게 지금도 괜찮을 리가 없겠고. 그 시절 시궁창이었던 스토리는 당연히 지금 보면 더 시궁창이겠지. 아마 '예스터데이'의 좋은 적수가 되지 않을까... 라는 아주 상식적인(?) 예상을 안고 틀었는데요. 아니 이게 예상을 많이 빗나가네요. ㅋㅋㅋ 미리 말하자면 꽤 좋은 쪽으로 빗나갔습니다.
(심지어 블레이드 런너 2049도 베꼈습니다!!!!!?)
- 일단 핵심은 비주얼입니다. 이게 지금 봐도 썩 괜찮습니다? ㅋㅋㅋㅋㅋ 아니 정말 놀랐어요. 진지하게 '정이' 예고편 초반에 나오는 도시 모습이나 메카닉 묘사가 해상도 빼고 이 영화보다 나을 게 뭐가 있나 싶었거든요. 물론 '정이'의 비주얼이 훌륭한 수준이 아니긴 하지만 이건 20년 전 영화니까요.
물론 '블레이드 런너'를 비롯해서 다수의 일본 사이버 펑크류의 만화들, 몇몇 헐리웃 영화들의 레퍼런스가 지나칠 정도로 노골적이라는 문제가 있긴 합니다만. 그냥 기술적인 부분과 또 '어쨌든 보기 구린가 구리지 않은가'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이 '내츄럴 시티'의 비주얼은 정말 그 시절 한국 영화들 중에선 갑툭튀 군계일학이라 할만 합니다. 실제 제작비로는 '2009 로스트 메모리즈'나 '예스터데이'를 훌쩍 뛰어 넘었다고 들었는데, 그냥 돈을 더 쓴 것 뿐만 아니라 훨씬 효과적으로 쓴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늘도 열일 하시는 액션스타 정두홍님. ㅋㅋㅋ 이 영화 보고 다음 영화로 넘어갔더니 거기에도 또 나오시더라구요. 허허...)
(자알~ 생겼다!!!)
- 액션 장면은 뭐랄까... 일단 준수합니다. 잘 찍었어요. 다만 시작부터 끝까지 패턴이 좀 반복되긴 합니다. 어둑어둑한 좁은 공간에서 중화기를 쓰며 싸우는 MP들을 신출귀몰 무림 신공(...)으로 상대하는 사이보그. 계속 이런 구도로만 가요. 전투 장면 자체는 긴장감 살려서 잘 연출되어 있는데 ('에이리언' 시리즈의 전투 분위기를 많이 따라한 듯 합니다) 다양성이 없어서 아쉽달까. 뭐 그랬구요. 또 이게 많이 나오질 않습니다. ㅋㅋ 도입부에 한 번, 결말부에 한 번 찐하게 나오고 중간엔 걍 살짝 양념으로 들어가는 정도. 근데 그렇다면 이 적지 않은 런닝타임을 무슨 이야기로 채우냐면...
(이겁니다. 이런 영화에요!!!)
- 정말로 1도 공감이 안 가는 재미 없는 연애담입니다. ㅠㅜ
그러니까 주인공 R(유지태 캐릭터의 이름입니다)은 리아를 살리기 위해 시온을 희생하려 하고. 시온은 R에게 살짝 호감을 가진 채 험한 꼴을 겪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고. 이게 중심 스토리인데요. 일단 주인공이란 놈이 생사람 하나 잡아 가며 사이보그를 살리려 든다면 당연히 그렇게까지 하게되는 과정이나 사연 같은 걸로 공감을 얻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게 없어요. 보긴 봤는데 공감이 안 되는 게 아니라 그냥 존재하지 않아요. 그래서 관객은 아무 영문도 모르고 1도 공감이 안 되는 상태로 주인공의 그 집요한 뻘짓거리들을 봐야 합니다.
거기에다가 우리 리아 공주님은 한 술 더 뜨는데요. 이 분은 훼이크 주인공입니다. 대사도 거의 없고 출연 분량도 적으며 하는 일도 결말에서 한 장면 빼면 거의 없다시피 해요. 이게 어느 정도냐면, 전 결말 직전까지 그냥 유지태 혼자만 방방 뜨고 이 사이보그는 유지태에게 별 감정 없는 줄 알았습니다(...)
이러니 주인공이 뭔 짓을 하든, 둘이 어떤 위기에 빠지든 간에 정말 공감과 이입은 커녕 관심이 1도 안 생깁니다. 재밌는 이야기가 나올 수가 있겠습니까?
(니들끼리만 난리 치지 말고 같이 좀 슬프자. 응???)
- 그 외의 조연이나 빌런들도 마찬가집니다. 이 영화의 빌런인 싸이퍼에게서 로이배티와 같은 카리스마나 매력 같은 건 애초에 기대하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그래도 워낙 블레이드 런너 비슷하게 흘러가길래 막판에 뭐 한 장면이라도 기대를 했는데. 막판의 반전 하나가 그 실낱 같은 가능성까지 다 날려 버리고 끝까지 무매력 살인 기계로 남습니다. 덧붙여서 여기엔 조라와 프리스를 합친 것 같은 포지션의 여성 사이보그도 하나 나오는데, 나름 막판에 중요한 장면을 하나 맡긴 하지만 역시나 그동안 빌드업이 하나도 없어서 쌩뚱맞다는 기분만 안겨주고 끝이에요.
그나마 봐 줄만한 캐릭터는 이재은이 연기한 '시온'인데요. 역시 별다른 배경 설명이 없긴 하지만 그래도 이 영화의 최고 경력 배우 이재은이 연기도 적절하게 잘 해주고, 또 워낙 시작부터 끝까지 격하게 박복한 캐릭터라 측은지심이라도 생기더라구요. ㅋㅋ 또 주인공을 갈구며 챙기는 옛 친구이자 동료인 '노마'와 그를 짝사랑하는 '아미' 같은 캐릭터도 나쁘지 않았어요. 다만 워낙 비중이 없어서...;
(어쨌거나 그나마 답답한 숨통을 틔워주던 우리 이재은님. 당시에 이미 데뷔 18년차!!!)
- '블레이드 런너'를 대놓고 베껴 만든 영화지만 보다 보면 이야기와 감성 측면에서 헐리웃 영화보단 일본 애니메이션의 영향이 훨씬 크게 느껴집니다. 어쩌면 그것도 흥행 실패의 원인 중 하나였을 것 같기도 해요. 한국 관객들 주류에게 먹힐 갬성이 아니거든요. 물론 이야기가 재미 없다는 게 근본적인 문제지만 그런 부분도 있어 보인다... 는 얘기구요.
암튼 분명 실사 영화인데도 애니메이션 같은, 그것도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장면들이 꽤 많아요. 주인공 R과 리아의 그 대책 없는 로맨스도 살짝 그런 느낌이고. 닥터 지로나 싸이퍼 같은 캐릭터는 생김새부터 성격까지 그냥 딱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그대로 꺼내왔다 싶었던. 또 등장 인물들 이름만 봐도 좀 그렇지 않습니까? R, 리아, 시온, 싸이퍼, 닥터 지로, 노마, 아미... 뭐 이름 하나하나는 그럴 수 있는데 이렇게 하나로 모아 놓으면 '뭡니까 이게. ㅋㅋㅋㅋ'라는 느낌이 좀 들기도 합니다.
(유지태는 그냥 평소의 유지태 연기를 무난하게 보여줍니다. 근데 저런 의상을 입혀 놓고 보니 강동원보단 이 양반이 '인랑' 실사판에 훨 어울렸겠단 느낌이.)
- 에... 뭐 더 할 말이 없습니다. 간단히 요약하면 시대를 선도한 비주얼로 엄청난 노잼 이야기를 들려주는 영화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저는 그럭저럭 잘 봤어요. '우왕, 2003년도 한국 영화가 이런 비주얼이 가능했구나!'라는 게 놀라워서 내내 그림에 집중해서 봤거든요. ㅋㅋ
그리고 뭐, 리아 역의 신인 배우 서린씨를 제외하곤 딱히 연기가 거슬리는 사람도 없었구요. (게다가 어차피 리아는 비중도 대사도 거의 없...)
뭐 이 정도면 기술적으로는 참 대단한 성취였고 연출도 기본은 충분히 갖췄다고 생각했습니다만. 뭔가 계산이 단단히 잘못되어 버린 극노잼 각본의 죄가 너무 컸습니다. ㅋㅋㅋ 당시 기준 순 제작비 80억을 들인 영화를 만들면서 이런 각본을 만들어 쓰셨다니 감독님 수고 하셨지만 좀 혼 나셔도 어쩔 수 없겠단 생각을.
많이 아쉽기도 합니다. 이게 이 정도 기술력으로 이야기도 재밌게 만들어서 대박을 쳤다면 한국 영화판이 좀 더 제 취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었을 것 같아서요.
하지만 과거를 뒤집을 순 없는 노릇이고, 전 그저 '생각보다 괜찮다'라는 느낌에 기분이가 나쁘지 않았습니다만. 여러분들은 안 보셔도 된다는 거.
끝입니다.
+ 이것저것 뒤적거려보니 후반부의 전투씬들이 같은 패턴 단순 반복이 되어 버린 건 이미 한참을 초과해 버린 제작비 때문이었다는군요. 새삼 안타깝구요.
++ '유령'의 호평과 히트에 힘 입어 이 영화를 만드신 민병천 감독께선 이 영화의 폭망으로 인해 사실상 연출을 놓으셨군요. 이후 필모그래피가 2011년에 나온 '코코몽 시즌 2 - 음식을 남기지 말아요' 하나 뿐입니다. ㅠㅜ 아쉬운 마음에 이 분의 또 다른 대표작이나 한 번 다시 봤네요.
이제 보니 영화에서 '노마'로 나온 윤찬 배우가 민병천 감독과 여기에서부터 인연이 있었던 거였군요.
1996년, 그것도 영화도 아닌 뮤직비디오이다 보니 cg고 뭐고 다 좀 그렇고 내용도 별 임팩트가 없습니다만. 1996년이었으니까요. ㅋㅋ 당시엔 큰 화제였죠.
+++ 해외에서 덕후들에게 은근히 인기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한글 검색보다 영어 검색이 짤도 조금 더 많고 화질도 나아요. 해외 출시 디비디 커버 같은 것들도 막 나오고 그러네요. 근데 정말로 '은근히'만 인기 있었던 듯.
++++ 그래서 스포일러입니다.
알고 보니 모든 게 '닥터 지로'의 음모였습니다. 영화 초반에 사살된 '싸이퍼'가 쌩뚱 맞게 부활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알고 보니 그게 개연성 오류가 아니라 떡밥이었던 거죠. 싸이퍼의 시체에 지로가 자신의 기억을 옮겨 부활했던 것이고. 닥터 지로의 목표는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 영생을 하는 것이었는데, 아무 몸으로나 옮겨탈 수 있는 게 아니라 유전자 조건이 맞아야 해서 싸이퍼의 몸으로 정부 데이터 베이스에 침입해서 찾아낸 다음 몸 후보가 바로 '시온'이었던 것. 그래서 R에게 리아를 살려준다는 뻥을 쳐서 시온을 잡아 오게 시켰던 거죠.
결국 싸이퍼는 마지막엔 그 정체를 드러내고 시온을 직접 납치해서 사이보그 생산 공장을 향합니다. 거기에서 자기 기억도 시온에게 옮기고, 또 내친 김에 그 공장의 사이보그들을 전부 자기 동료로 만들어서 인간들을 아작내버릴 계획이구요.
시온의 수명 종료일 날이 밝은 후에야 이 사실을 알게 된 R은 절망해서 그냥 리아를 데리고 우주선 타고 떠나려고, 가는 길에 리아가 죽더라도 뭐 다른 할 수 있는 일도 없으니 그러려고 했는데. (이거 생각해보니 '블레이드 런너' 극장 상영판 엔딩이네요 ㅋㅋ) 대합실에서 우주선을 기다리던 중에 싸이퍼를 제압하려 출동하는 노마의 간절하고도 절망적인 무선 연락을 듣고는, 결국 리아를 남겨 두고 친구를 도우러 떠납니다.
MP 대원들을 이끌고 사이보그 공장에 도착한 노마는 피터지는 혈투 끝에 싸이퍼가 공장 사이보그 전원을 전투 사이보그로 만드는 걸 막고, 또 시온의 몸으로 갈아타는 것도 일단은 저지합니다만. 확실한 마무리를 위해 공장 자폭 장치를(이런 게 왜 있는데;;;) 가동하구요. 부하들을 모두 대피 시킨 후에 혈혈단신으로 납치된 시온을 구하러 갑니다. 하지만 그 전에 이미 가동을 시작해버린 전투 사이보그들을 상대로 혼자 처절하게 싸우다가 중과부적으로 결국 사망... 하려는 찰나 타이밍 좋게 우리의 주인공이 나타나서 목숨을 구해주겠죠.
그리고 최종 스테이지 돌입. R과 노마가 번갈아가며 싸이퍼에게 탈탈 털리다가 마지막으로 머리를 굴린 노마의 작전으로 싸이퍼는 폭사. 하지만 노마도 죽고요. 이미 중상을 입은 R은 시온에게 '꼭 리아를 찾아가줘'라는 유언을 남기고 시온만 밖으로 탈출 시킵니다. 그래서 공장 폭발과 함께 R은 사망. 그리고 시온이 찾아간 리아는 수명이 다 되어 망가져버리기 직전에 스스로 머리에 박힌 메모리칩을 뽑아 자살을 한 상태였네요.
R과 리아의 유품을 함께 장례 치르듯 묻어준 시온이 머리 위로 날아가는 거대한 우주선을 바라보며 미소 짓는 걸로 엔딩입니다.
2023.02.06 01:35
2023.02.06 01:56
사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ㅋㅋㅋ 일단 '정이'보다 미술적인 면에서 훨씬 나아요. 그게 비록 여기저기서 빌어온 이미지들이었다고 해도 암튼 보기엔 훨씬 나아서 리마스터링하고, 거기다 최신 기술로 살짝 붓칠(...)을 해주면 꽤 볼만한 그림이 될 것 같습니다만. 애초에 망한 영화를 그렇게 소생 시킬 이유가 없겠죠.
저도 저 자신이 '블레이드 런너' 팬이긴 해도 어차피 흥행은 쫄딱 망했던 영화를 왜 자꾸 레퍼런스 삼아 영화를 만들었을까. 했는데, 생각해보면 그 시절에 이런 영화를 의욕에 넘쳐 만들어 보겠다고 나선 사람들이라면 어차피 오타쿠 스피릿이 넘치는 사람들이었을 것 같고. 그렇다면 충분히 그럴 만도 했겠다... 라고 납득했습니다. ㅋㅋ 상도의는 많이 부족한 사람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만, 뭐 그 분들이 정말 '재밌는' SF를 만들겠다고 노력했어도 특별히 더 좋은 작품이 나오진 않았겠죠.
'지구를 지켜라'는 저도 좋아하는 작품이고 말씀대로 참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는데요. 이런 '내츄럴 시티' 같은 류의 시도도 충분히 의미가 있었던 것 같아요. 요 며칠간 이것저것 챙겨보며 씹기도 많이 씹었지만 그런 망작이나 괴작이라도 피땀 흘려 만들던 사람들의 열정 같은 게 어렴풋이 느껴지는 기분이기도 하구요. 그래도 재미 없는 건 재미 없는 거지만요(...)
2023.02.06 01:39
사실 당시 기대하던 SF 영화가 한 편 있었는데, <데우스 마키나>라고 ㅋㅋ
http://m.cine21.com/news/view/?mag_id=11679
설정은 양산형인데, 배우들이 SF에 어울린다 생각해서 살짝 기대했었죠.
근데 이 영화는 촬영 중 엎어졌죠. 나왔어도 망할 확률이 높았다고 봅니다만.
2023.02.06 01:48
검색해보니 재밌는 글이 있네요.
https://www.kmdb.or.kr/story/74/1682
<데우스 마키나>를 중심으로 당시 한국 SF 블록버스터를 회고하는 글인데, 영화계 안쪽 시선은 저랬구나, 웃으면서 봤습니다.
이 영화의 빌런은 배우 이영진이었다고..
2023.02.06 01:58
마침 저도 바로 윗 댓글 보고 '데우스 마키나' 검색하다가 같은 글을 읽으며 웃고 있었습니다. 특히
"그런데도 그 시대가 그리운 이유는 정말이지 모두가 영화를 막 만들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대기업이 시나리오 한줄 한줄 빨간 펜으로 검사하던 시절에는 절대 나올 수 없는 괴작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어디로 향하는지 누구도 모르는 영화적 에너지의 시대였다. 맞다. 바로 그 시기 때문에 지금 한국 영화계가 이렇게 된 거다. 그런데도 그 시기가 그립다니 이거 참 사람이 경망스럽기 짝이 없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리운 건 그리운 거다."
이 부분이 되게 와닿네요. 글쓴이의 진심도 느껴지구요. 뉘신가 하고 확인해보니 김도훈이군요. 이 분이라면 충분히 이럴만 하시단 생각이. ㅋㅋㅋ
2023.02.06 07:16
2023.02.06 11:12
그게 제작비 문제로 몸으로 때우는 액션 밖에 할 수 없었던 거라고 하더라구요. 뭔가 기획한 건 더 있었는데 다 사장됐다고. ㅋㅋ
2023.02.06 09:00
2023.02.06 11:13
'천장지구' 당시에 엄청 화제도 되고 인기였죠. 유명한 장면들 여기저기서 많이 따라했던 것도 기억 나고... ㅋㅋ 20세기 멜로 갬성이었던 것 같아요. 이 영화도 그렇구요.
2023.02.06 10:58
지금 돌이켜보니 닷컴 버블, 신용카드 버블, 2002월드컵, 노무현 당선 등이 다 뒤엉켜서 영화계도 영향을 받았나 싶네요. 저는 이 시절 영화 중에 아유 레디(2002)가 퍼뜩 떠오릅니다
2023.02.06 11:14
뭐 그런 영향들도 있었고 '접속'에서 '쉬리'로 이어지는 한국 영화 부흥 분위기에 힘 입어 눈 먼 돈이 영상 사업 쪽으로 마구 흘러들어오던 시기였죠. 덕택에 괴작들도 엄청 나오고...
2023.02.06 11:24
2023.02.06 11:36
그게 아무리 스토리 개판인 영화라도 그걸 요약해서 보면 꽤 그럴싸해 보이는 효과가 있더라구요. ㅋㅋ
그리고 이 영화의 스토리는 개판이라고 하면 좀 안 어울리고, 그냥 대체로 재미가 없는데 재미 없는 쪽이 핵심이라서 비중을 팍팍 실어주고 그나마 괜찮은 부분은 대충 짧게 건성으로 넘어간달까... 좀 그런 식이에요.
2023.02.06 12:32
블레이드 러너 아류작이면 배티님이 매우 매우 엄격하게 평가하실 줄 알았는데 그래도 비쥬얼 같은 측면에서 생각보다 의미가 있는 작품인가보군요. 저는 포스터만 보고 나머지는 싹 다 무시했던 작품이라 이 글을 읽고 예고편을 한 번 재생해봤는데 정말 기대이상이네요. 2003년에 이정도면 한국영화 SF 화면빨로는 나름 역대급 아닌가 싶고 ㅎㅎ
하지만 역시 자세한 스토리나 설정들을 보니 굳이 호기심에 보고싶은 생각까지는 들지 않는군요. 제작시기 감안을 해야겠지만 정말 거슬리는 부분들이 많아요. 그냥 스토리만 별로인 거라면 모르겠는데 아무래도 2020년대를 사는 관객의 관점에서 저런 게 거슬리면 몰입도에 영향을 크게 줄 수 있으니까요.
정이는 스킵하신다더니 보긴 하셨나봐요. 본편 전개가 구린 건 그렇다쳐도 도대체 세계관 설정은 뭐하러했는지 속편이나 스핀오프를 쭉 이어가려고 계획이 잡혀있는 것도 아니라면 정말 쓰잘데기 없죠. 그냥 근미래 황폐화된 지구 정도로 하면 끝인 것을...
2023.02.06 15:59
사실 제가 여전히 블레이드 런너 빠돌이이긴 해도 그 영화를 지금 이 시점 기준으로 본다면 좀... 그런 구석이 많거든요. ㅋㅋㅋ 비주얼과 분위기 면에선 여전히 독보적인 작품이지만 다른 측면에서 볼 땐 뭐 그렇게까지? 하하. 그리고 비주얼은 정말 대단해요. 예고편의 그 비주얼이 영화 속에서도 지속됩니다. 다만 이야기가 문제일 뿐. 그리고 SF적 측면에서 보다 그냥 스토리 측면에서 보나 지금은 많이 낡아서 추천할 생각까진 안 들구요.
정이는 트레일러만 봤습니다. ㅋㅋ 처음 공개됐을 때 보고, 이 영화 보고 나서 다시 한 번 봤는데 아무리 봐도 이 영화의 비주얼이 정이보다 못하지가 않아요. 이 영화도 대단하고 정이도 대단(?)하고... 암튼 그렇게 트레일러를 다시 보니 더 보기 싫어져서 아마 영원히 안 볼 듯 하네요.
2023.02.06 14:09
자료를 찾아보니 유지태는 이해 이영화랑 거울속으로 올드보이가 같은해에 개봉했네요 하긴 이때 유지태가 영화계에서 좀 인기가 많았던걸로 기억해요 주유소습격사건 가위 동감 리베라메 봄날은간다같은 흥행작에 출연했으니 인기가 많을만 하네요 요즘 이배우는 뭐하나요
2023.02.06 16:01
당시 '업그레이드 한석규'란 별명 비슷한 게 붙어 있었죠. 뭔가 연기 스타일이나 인상이 비슷한데 이 쪽은 젊고 체격 좋고 외모도 좀 더 낫다며... ㅋㅋ 마침 유지태 뜰 때가 한석규에겐 살짝 하락기이기도 해서 그런 얘길 들었던 듯.
유지태는 그동안도 영화 열심히 찍었고, 근 몇 년간은 주로 드라마 쪽에서 활동하구요. 가아끔 영화 감독도 했고. 뭐 이래저래 열심히 잘 살고 있는 듯 합니다.
2023.02.06 16:08
이런 영화가 있었군요 ㅋㅋㅋ 이거랑 정이는 한번 볼까 싶습니다 ㅎㅎㅎ
2023.02.06 16:34
혹시 정말로 보신다면 저얼대로 요즘 기준으로 보시면 안 되구요. ㅋㅋㅋ 20년전 한국 영화판에서 불타올랐던 덕후님들(...)의 열정을 느껴보자. 뭐 이런 시각으로 보신다면 저만큼은 괜찮게 보실 수도 있을 겁니다. 하하.
2023.02.06 19:52
이 영화 언제 나오나했습니다 ㅋㅋㅋ2000년대 SF 괴작 중에서 매트릭스의 향기가 제일 진하게 나는 작품이 아닌가 하네요 ㅋㅋㅋㅋ 이거 비디오로 빌려보는데 너무 졸리고 재미없어서 막 반성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 내가 한국영화를 이렇게 무시하고 있구나!! 어서 집중해!! 하면서...
이재은씨 참 예쁘군요
2023.02.07 00:05
전 블레이드 런너 + 일본 아니메들 느낌을 워낙 강력하게 받아서 오히려 매트릭스 생각은 별로 안 했습니다. ㅋㅋ
이야기 자체도 지루하고, 또 그걸 뭔가 '서정적 분위기'로 표현해 보려다가 그냥 졸리게 풀어내버린 한계가 있어요. 졸리셨던 게 정상입니다.
그렇죠? 저도 보면서 계속 그 생각을 했어요. 이재은이 내가 기억했던 느낌보다 훨씬 그냥 예쁜 분이었구나... 하구요.
2023.02.06 21:11
자폭장치 있는 공장이 도시 안에 있었던 것 같은데... 그걸 보면서 어떤 미친 건축가가 도시 한가운데 있는 기업 건물에 대규모 폭발장치를 설치하나 하고 키득거렸던 듯합니다.
민병천 감독은 나중에 TV에서 공룡다큐로 대박이 났는데 그게 '공룡대탐험'을 카피한 거였죠. 그걸 보고 이분은 그냥 외국에서 하는걸 우리도 해낸다는 성취감에 만족하는 분이구나 싶었습니다.
2023.02.07 00:07
위치도 위치지만 이게 뭐 악의 소굴도 아니고 군사 시설도 아닌 그냥 공장인데 왜 때문에 자폭 장치를 설치해 놓고 그걸 또 경찰들이 알고 있는지... 라는 생각에 저도 웃었습니다. ㅋㅋ 이야기를 쓴 사람들이 뭔가 현실적인 사고가 덜 됐던 것 같아요.
'한반도의 공룡' 말씀이군요. 그거 나왔을 때 처음엔 잘 만들었다고 화제 되고, 잠시 후엔 근데 그게 해외 다큐 베낀 거더라... 고 화제가 되고 그랬던 기억인데. 민병천이 만든 거였다는 건 지금 돌도끼님 댓글 보고 처음 알았습니다. 그렇네요. 그런 보람으로 일하시는 분이었나봐요. 하하.
4k 리마스터링하면 <정이>보단 때깔이 훨 나을 듯요.
결국 00년대 한국 SF 영화들은 <블레이드 러너>, <아키라>, <공각기동대>, <매트릭스> 아류였던 거지요.
근데 이 영화들이 <매트릭스> 빼곤 모두 개봉 당시 흥행이 망했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거기에 SF 기반도 없던 00년대 한국 영화판에서 아류작을 만들었으니 흥행은 물론이고 비평적으로도 망하는 게 당연한 수순이겠죠.
같은 해 나온 한국 SF 걸작 <지구를 지켜라>가 특별한 이유이기도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