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귀에 벌레가 들어간 것 같다고 글을 올렸었어요.
화장실에 있던 쌀벌레를 잡다가 갑자기 사라졌는데 그 뒤..쌀벌레의 저주처럼 귀에서 부우웅거리는 날갯소리가 들리더라고요.

그런데 이게 참 긴가민가 했어요. 왜냐하면 불규칙적으로 바람소리는 들리는데 어떤 자극도 없었거든요.
귀안이라면 상당히 예민하게 움직임이 느껴질것 같은데 어떤 통증도, 가려움도, 몸짓도 없었죠.
그저 제 귀안에는 부우웅대는 소리 뿐.

빛을 쐬보고, 면봉을 후벼보고, 샤워기로 물을 뿌려보고 해봤어요.그러나 달라지지 않더라고요.

아침에 일어나니 바람소리는 여전히 들리는데 그 주기가 상당히 더뎌졌다고 느꼈죠. 귀안에서 죽고 있던걸까요?


크게 일상에 지장은 없었지만 행여 벌레가 진짜 있어서 안에서 썩기라도 하면 큰일이 될것 같아 점심때 잠깐 이비인후과에 갔답니다.

조금 젊은 여성 의사선생님이셨는데. 마치 아이를 다루는 것 같은 말투가 좀 독특했어요.
"에구! 그러셨어요! 어디, 어디 봐요!"

귀에 가는 현미경을 대고 쭉 넣고 후비시는데..벌레고 뭐고...앞쪽 모니터 가득 펼쳐지는 귀 벽의... 달라붙은 귀지들 
때문에 몸들바를 모르겠는거에요.ㅜ.ㅜ 원래 다 저러나? 내 위생상태가 유난히 좋지 않은건가?ㅜ.ㅜ
벌레고 뭐고 뿌리치고 나가고 싶은 심정..너무 부끄럽더라고요. 그 와중에도 귀청소를 좀 하고 갔어야 했을까...ㅜ.ㅜ

저는 차마 화면을 보지 못했는데 갑자기 의사선생님이 그러셨어요.
"에구머니나! 진짜 곤충같은게 있는것 같은데요?"

그리고 알콜을 귀에 주입하는데...살아있는지 죽어있는지 존재하는지 알수도 없던 그것이 처연한 몸부림을 쳤어요! 
격렬한 날개짓소리가 머리를 울리도록 웅웅웅웅..

"선생님. 아우..미치겠어요...귀에서 발버둥을 치는데요?"
"그래요? 기들려봐요! 마취제를 좀 넣을께요. 구멍이 너무 좁아서 끄집어 내기가 힘들어요. 여기 주사 좀 준비해주세욧!"

경쾌하고 발랄한 의사선생님은 그리곤 이런저런 얘기를 하셨어요.
"자, 힘들어도 더 고개를 갸우뚱해봐욤. 어깨는 좀 내리시고...제가 병원하면서 벌레 들어간것 같다고 오신 환자 중에서 진짜 벌레 들어간 환자는 두번째에요. 
원래 자기 귀지가 안에서 덜렁거리거나 다른 이물질인 경우가 많거든여."
"선생님. 얘가 너무 요동을 쳐욤.엉엉.기분이 너무..괴상해요."

마취제를 투입하니까 그 녀석 숨통의 마지막 발작이 핸드폰 진동떨리듯 부르르르르...시작되었다가 사그러들었어요.
여전히 아프진 않은데..누가 귀에 대고 슬며시 바람을 넣는것처럼 야릇하더라구요.

그리고 다시 선생님은 다량의 알콜을 제 귀에 주입했다가 썩션으로 모두 뽑아내고 다시 내시경으로 속을 보여주셨죠.
동굴같은 귀안의 끄트머리에 하얀 고막이 보였어요. 헉. 고막이 저렇게 귀 끝에서 노출되어 있는거구나. 제 고막과 처음 조우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자..이제 좀 씌원하세요? 데헷? 다 빠진것 같아요."

벌레가 무엇이었는지조차 볼수 없었어요. 알콜에 한껏 젖어서 쏙 빨려들어갔기 떄문에.
의사샘은 제가 고려하지도 못했던 부분에 대해서도 성찰을 하셨어요.

"환자분이나 벌레에게나 모두 불행한 일이되었네요. 에구. 벌레는 괜히 거기에 들어가서 나오지도 못하고 비참하게 되었네요.."
  
마취제와 알콜이 귀를 푹 적시고 있어서 벌레가 빠진건지 뭐한건지도 느낄 겨를이 없었어요.
어쨌든 치료를 받고 나니까 이젠 그 날개짓 소리가 더이상 들리지 않더라고요.

조금 경악스러웠던건 의사샘이 안도를 찾으며 해주셨던 얘기에요.
저 말고 벌레가 들어갔던 첫번째 환자.
그분은 귀에 바퀴벌레가 들어가 있었대요..
물론 바퀴벌레도 다양한 크기가 있을테니..작은 사이즈라면 귀에 들어갈수도 있을지 모르지만..종잇짝처럼 얆은 쌀벌레에 비해 바퀴벌레는..
갑옷같이 단단한 외피를 두루고 있잖아요?..

걔가 들어가서 고막 가까이에서 귀를 들쑤시고 있는 느낌은 도대체 어떤걸까..갑자기 궁금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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