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니 듀게에 안올렸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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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가을에 오랜만에 고향을 내려가서 농사일을 거들어 드렸다.

대단한 일은 아니고 걍 텃밭에 심어놓은 고구마를 캐서

드럼통에 담아놓은 물에 고구마에 묻어있는 흙을 설렁설렁 씻어 내는 일이었다.

한 바구니 다 씻고 나서 두 번째 바구니를 짊어지고

고구마를 막 드럼통의 물에 담그려는 찰나,


두런두런 거리는 여자들의 웃음소리가 들려 왔다.

아마도 할아버지의 한약방에 약재 지으러 오신 손님분들 같았는데

마당을 잠시 둘러보러 나온 것 같았다.


힐끗 처다보니 세 명 중 한 명이 참 매력적이게 생겼다고 생각하려는 찰나에

그 매력적이게 생겼다고 생각한 처자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정확히는 내가 아니라 옆에 계신 어머니께.


"어머니 안녕하세요? 저 전에 말씀드린 덕산식당 딸 xxx에요.

한약 지으러 왔다가 어머니 보이셔서 인사 드리려고 왔어요."



...



맙소사.

덕산 식당이면.. 옆동네..

전에 어머니께서 나보고 선자리 들어왔다고 선 보라고 했던 그 처자네.

내 나이 서른 하나에 무슨 선이냐고 극구 만류 했던..


무심한척 고구마를 계속 물에 씻으며 귀는 쫑긋 세우고 듣고 있던 나에게

그 처자가 말을 건다.


"안녕하세요? 그 쪽이 지훈씨죠?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서울에서 일 하고 계신다죠?"


...


머쓱하기도 하고 뻘쭘하기도 해서 나는 그냥 웃으며 목례만 까딱 하고

다시 무심한척 고구마 씻는 일에 몰두했다.


근데 이 처자, 붙임성이 장난이 아니네.

나머지 두 처자들은 약방으로 들어가고 이 처자만 남아서 자꾸 말을 건넨다.

어머니도 뭔가를 눈치 채셨는지 마당 저쪽 건너편 수돗가에 건너가셔서

고구마 줄기 손질을 하고 계신다.


"지금 뭐 하고 계신거에요?"


'보면 모르남. 고구마 캐서 씻고 있잖아요.'


아무 이유 없이 뾰루퉁한 마음이 들어서

이야기도 안하고 묵묵부답 일만 했다.

부끄러워서였을까.


묵묵부답에도 불구하고 친근하게 말을 걸어준다.


"어머 고구마 씻고 계시네요? 저도 한 번 해봐도 되나요?"


...


그렇게 서로 조금씩 말문을 열어가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나이는 나보다 3살이 어리며 어렸을 때 같은 학교 다니며 날 몇 번 본 적이 있었다고.


난 전혀 기억에 없는데...


여튼 지금은 대학을 졸업하고 지방 공영 방송국의 아나운서를 하고 있다고 한다.


주로 그 처자가 취재 다니며 있었던 일을 도란도란 해주고

나는 맞장구를 치거나 궁금한걸 묻고 있었는데


어느새 할아버지의 한약방에서 다른 두 명의 처자가 양손에 약봉다리를 들고 나왔다.


이렇게 헤어지는건가?

...아쉽네.


그 때 그 처자가 다시 말을 건다.


"지훈씨 우리 커피숍에 가서 커피 한 잔 마셔요."


속으로는 정말 기뻤으나 괜히 미적거린다.


"옷 차림이 이래서..."


청바지에 옅은 하늘색 난방 차림. 군데군데 흙 묻은 자국이 있었다.


아무렴 어떠냐고 빨리 가자고 한다.

일도 거의 끝난김에 알았노라 말 하며

집 안에 들어가서 블레이져나 대충 걸쳐 입고 나왔다.


자신이 잘 아는 새로생긴 커피숍이 있다며 그 곳으로 나를 이끈다.


'어라? 내가 고향에 없는 동안 이런 곳도 생겼나?'

싶을 정도로 내 취향에 딱 들어 맞는 잔잔한 음악이 나오는 모던 바.


이 츠자 커피 한 잔 하자더니 커피는 생략이고 바로 맥주부터 시작하는 과감성까지.

홀딱 반해버렸다.


맥주를 시키고 안주가 나오는 동안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요즘 트위터를 시작했는데 너무 재미 있어서 푹 빠져버렸다며

자신의 스마트 폰을 보여주며 자신이 올린 포스팅들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둘이서 맥주 마시며 이야기를 잘 하고 있는데

입구에서 낯익은 얼굴 둘 이 들어온다.


재열이와 재철이. 둘 다 초, 중학교 동창 녀석들인데

오랫만에 보니 참 반가웠다. 못 본 사이에 얼굴이 많이 변했네.


잠시 실례의 말을 전하고 악수만 나누고 다시 자리로 돌아 오는데

처자가 같이 자리를 합석하자고 한다.


그래도 첫 만남인데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

이미 잔을 들고 친구들 자리로 옮길 채비를 마친 처자를 보며

나도 잔을 들고 친구들과 합석하게 되었다.


새로 만난 처자와 오랫만에 만난 친구들과의 융화는 생각보다 잘 되었다.


도란도란 이야기 하다가 친구들이 장난끼가 발동했는지

하나 둘 농을 던지기 시작했다.

친구들에게 그런 말 하지 말라고, 오늘 처음 만난 사이라고 이야기를 해도

한 번 시작된 농은 그칠줄을 몰랐고

급기야 처자의 심기가 불편해진듯한 눈치였다.


이대로 안되겠다 싶어서 지금 자리를 파하고

둘이 따로 나가려고 이야기를 하니 친구들이 또 조롱조로 비아냥 거렸다.


그리고 그 순간 그동안 참아온 처자의 심기가 폭발해버렸다.


처음 본 사람에게 너무 무례하시다고 말 하며

여기 계산은 자신이 한다며 카운터로 가버렸다.

극구 말리며 내가 계산을 한다고 해도 막무가내다.

더 말리면 화만 더 돋울것 같아서 친구들에게 목례 한 후

계산을 마친 그녀를 쫒아 나왔다.


밖으로 나오니 날이 이미 어둑어둑 해졌는데

방금 나간 처자의 모습이 보이질 않는다.


아뿔싸..


전화번호를 아직 못 받았었구나.


하다못해 무례했던 내 친구들을 대신해 사과의 말이라도 전해서 마음이라도 풀어주어야 하는데..


그 순간 아까 여기 들어와서 나눈 이야기 중 트위터 이야기가 떠올랐다. 

트윗으로 연락을 해서 찾으면 되겠다 싶어서

그 처자의 트위터 아이디를 검색하였는데..


그 처자가 1분 전에 올린 트윗을 보았다.


"지훈씨 정말 실망했음."

이라는 내용과 함께 첨부된 술집에서 긁은 카드 영수증 사진.


어안이 벙벙했다.


애초에 합석을 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라는 뒤늦은 자책을 하며

이렇게 끝나더라도 사과의 말이라도 전하자는 심정으로 

휴대폰을 드는 찰나 휴대폰이 손에서 미끄러져서 땅에 떨어지더니

그대로 빙글빙글 돌더니 쓰러지지를 않는 것이었다.


아! 이거 꿈이구나. 라는 생각이 드는 찰나와 동시에

아침 알람이 울리며 기상했다.


...


참나 나이를 하나 더 먹더니 별의 별 희안한 꿈을 다 꾼다 싶었다.

이런 epic dream은 오랫만이라 하도 어이가 없어서 실소하다 씻고 출근을 했는데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싱숭생숭한 마음만 한 가득이라 생각 나는대로 꿈의 내용을 글로 옮겨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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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침에 일어나서 꾸었던 꿈이에요.

러패에 썼다가 듀게에 퍼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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