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에 칸막이님이 써주신 글을 잘 보았습니다. 매우 잘 정리되고 논점이 명확한 글인 것 같습니다. 주장하려는 바 또한 명확하고요.

칸막이님께서는 군가산점 같은 제도의 요구가, 그것을 대신할만한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라고 진단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만약 그 대안이 마련된다면, 군가산점과 같은 제도의 요구를 거부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대안만으로는 군관련 형평성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는 점을 밝히면서 논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칸막이님은 글에서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에 대한 정의가 우리 현실에서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보다 더 근본적인 정의가 지켜지지 않고 있고 그게 문제의 시작인 듯 합니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에서는 돈이 많은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일반적으로 여겨진다고 가정하죠. 따라서 우리는 가장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는 이건희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저더러 '너 이건희 시켜줄께'라고 한다고 칩시다. 그런데 저는 이건희가 아무리 행복한 사람이라고 해도, 돈이 많으면 귀찮은 일이 많을테니 이건희처럼 되는 것이 싫다고 그 누군가의 제안을 거절할 수 있을겁니다. 하지만 그 누군가는, 아니 그래도 행복한게 좋은거니까 넌 이건희 해야 돼, 너 이건희 시켜줄께, 라며 절 이건희처럼 만들어준다면, 저는 저의 자유가 침해되었다는 이유로 그 누군가의 행동이 정의롭지 못하며 윤리적으로 옳지 못한 행동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겁니다. 요는 무엇이 되었든 징병제에서는 국가가 강제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현체제와 같은 징병제에서는 그러한 자유의 억압이 특정한 조건을 만족하는 사람들에게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게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국방의 의무라는 것을, 신체의 자유가 구속되는 방식으로 지고 있느냐 아니냐라는 것이 문제의 핵심인 것 같습니다. 이게 왜 결정적인 문제가 되는지 우리의 상식적인 직관에 호소해보도록 하죠. 현재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의무복무와 관련된 형평성 문제는 성별차이에 집중되어 논의되고 있으니, 형평성의 문제를 성차에 의한 것으로 처리하는 방식으로 논점을 흐리지 않기 위해 다른 사례를 상정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SF적인 상상력을 빌어, 여성과 남성의 구분이 없는 달팽이 나라에서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는 상황을 생각해보죠. 달팽이 나라 A와 B는 마주보고 있으면서 서로를 위협합니다. 그래서 A나라는 전쟁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강제로 어떤 기준에 만족하는 달팽이들은 병사로 만들어버리기로 했습니다. 어떤 기준이냐하면, B 나라와 상대적으로 인접해있는 A나라의 지역인 a에 살고 있는 건강한 달팽이들은 강제로 병사로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a지역 외에 a'지역과 a''지역에도 많은 달팽이가 살고 있지만, 그들이 a 지역까지 와서 병사가 되는 것보다는 그들은 생산활동에 집중을 하고 a 지역의 특정한 달팽이들만 병사가 되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인 상황이라고 합시다.  병사가 된 달팽이들은 일정기간 동안 국가의 명령과 부름에 복종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A국가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여유가 있는 나라라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병사가 된 a 지역의 달팽이들에게 정당한 보수를 지급한다고 합시다. 하지만 그들이 정당한 보수를 지급받는다 하더라도, 병사가 된 달팽이들은 전혀 만족하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국가의 통제를 받는데, 국가의 다른 지역인 a'이나 a''에 사는 달팽이들은 그렇지 않거든요. a지역의 특정한 달팽이들이 어떤 희생을 감수하면 A 나라 모든 달팽이들이 그에 따른 수혜를 입는건 자명합니다. 따라서 a 지역의 달팽이들은 a'이나 a''에 사는 달팽이들은 얻지 못하는 어떤 것을 국가에 요구하려고 할 것입니다.    

 

 

신체적 자유에 대한 통제가 노동에 대한 대가보다 더 본질적인 군 복무 형평성의 요소이다라는 저의 주장의 근거로 저는 군복무와 공익근무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제시하고 싶습니다. 의무복무로 인해 국가에 강제로 봉사(말이 좋아 봉사지 실질적으로 노역이죠)하는 사람들은 군인말고도 더 있습니다. 공익근무요원이 그들이죠. 자 그러면 군인과 공익근무 요원중에 누가 더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지 따져봅시다. 월급자체는 공익근무요원이 더 많습니다. 제가 얼마전 아는 친구의 얘기를 들어보니 점심값, 차비등 해서 그 친구는 20만원 중반대의 월급을 받으며 공공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병장 기준 월급은 9만원이니 월급만 놓고 보면 군인들이 공익근무 요원에 훨씬 비해 노동에 대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노동에 대한 대가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공익근무가 훨씬 열악한 상황에 놓여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군인들에게 식비나 주거비용, 기타 생존에 필요한 비용은 원칙적으로 따로 들어갈 필요가 없습니다. 저는 해군에서 복무했고 도서지역에서 근무를 했는데, 진짜 과장이나 거짓됨 없이 집에서보다 밥을 더 잘먹었습니다. 심지어는 휴가나왔을 때 학교식당에서 밥을 먹으려니 짜증이 날 정도더군요. 실제로 해군은 한끼당 식비가 육군보다 높게 책정되어 있으므로 어찌보면 이는 당연한 현상입니다.(맛있는 밥 먹고 싶은 군미필자분들은 해군지원하세요~)  하지만 돈을 안내고 먹었으므로 제가 그 밥을 공짜로 먹은것일까요? 아니겠죠. 상식적으로 봤을 때 저는 군대에서 노동을 한 대가의 일부로 식사를 제공받은 것 같습니다. 밥 뿐 아닙니다. 군대가면 치약도 주고 칫솔도 주고 구두약도 주고, 해군의 경우에는 멋진 구두에다가 예쁜 빵모자, 폼나는 세일러복도 줍니다.(세일러복 입고 싶은 미필자분들도 해군지원하세요~) 그래도 물론 제가 한 노동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긴 하지만 저는 군대에서 한 노동의 대가를 저런 식으로 받으면서 군복무를 한 셈입니다. 하지만 공익근무자들은 어떨까요? 식비와 차비를 제외하고, 순수하게 그들이 노동을 한 대가로 받는 돈을 금액으로 따진다면 군인보다 턱없이 열악한 조건에서 근무를 하는 셈입니다. 실질적으로 공익근무요원들은 그들이 하는 노동으로는 생계를 꾸려갈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군인 봉급 현실화, 군가산점 도입등에 대한 논의는 많이 들어봤어도, 공익근무자들의 봉급 현실화 혹은 공익근무자 가산점 도입에 대한 논의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다같이 국가에 의해 강제노역을 하는 상황에서 이런 식의 차이가 일어나는 것은, 총을 들고 철책을 지키는 일이, 지하철에서 시민의 안전과 편의를 도모하는 일보다 더 가치있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심정적으로 군인들이 처해있는 상황, 특히 보통사람들과 같은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상황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군가산점도입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군인들의 급료 인상같은 방식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핵심적인 대안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월급이 적은 것에 불만을 가진 것이 아니었거든요. a 지역의 달팽이들이 바라는건 a'이나 a''지역의 달팽이들이 받지 못했던 특혜입니다. 특정한 집단의 사람들이 대의를 위해 희생을 했으니, 그 집단의 사람들만 누릴 수 있는 특혜를 받는 것이 형평성의 측면에서 올바르다는 것이 저들의 입장입니다. 사실상 군인들의 급료 정상화가 실질적으로 군인들에게 더 이득이 된다고 해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국가의 차원에서 a 지역의 특정한 달팽이들을 특별한 취급을 받고 있는건 맞으니까요.

 

 

제 생각에 군 관련 문제의 경우 형평성을 확보하는 최선의 그리고 유일한 방법은 모병제 뿐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머지 대안들은 어디까지나 그 형평성 문제를 축소시키는 방편일 뿐이지 우리와 같은 상황에서는 결코 문제를 해결시킬 수 있는 방안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 전까지는? 모르겠어요. 물론 군 관련 노동에 대한 대가는 현실화되어야 하겠지만 그것이 해결된다고 해서 군가산점과 같은 논의의 효력을 무력화 시키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 요구를 축소시킬 수는 있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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